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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이라크2-종교전쟁] “신이시여, 저들을 죽이소서”

 

 

종교적 편견 속에 정교 분리 원칙마저 깨버린

미국과의 동맹으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이집트) 사람이요, 이름이 하갈이라.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해…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도망하였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을 만나 가로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하갈이 나서서 베르셰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물이 다한지라 모자가 마주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하갈이 샘물을 보았더라.” (<구약성서> 창세기 16장, 21장)

 

 

»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랍인 조상 하갈과 이스마엘의 고난 모습. 유대인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사라에게 쫓겨난 모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물을 발견해 살아난다

 

 

‘하나님’으로부터 갈라진 세개의 종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미국이 기독교 국가이자 뿌리가 유대- 기독교라는 이유로 증오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사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의 하나님은 그들의 신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며… 부시 대통령은 유권자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대통령직을 임명받았다. 나는 군대의 상관으로부터 명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윌리엄 보이킨 미 국방부 정보담당 부차관)

 

마호메트가 <코란>을 구술할 때 아랍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신의 언약을 받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퍼져 있었다. 마호메트는 이 암묵적인 인식을 교리로 발전시켜 ‘문자’로 표현해 이슬람 경전을 완성해낸 셈이다. 유대인이 기록한 구약의 창세기를 계속해서 따라가보면 이스마엘은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 쏘는 자가 된다. 그리고 바란 광야에 살 때 애굽 땅 여인과 결혼하게 한다.

 

아브라함이 죽자 이스마엘은 사라에게서 낳은 이복동생 이삭과 함께 아비를 헤브론에 장사지냈다. 나중에 아브라함의 손자가 역시 아브라함의 손녀이기도 한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하는 등 이스마엘과 그 후손의 역사적 혈통의 실체는 유대인의 기록인 구약에서도 확립돼 있다.

 

유대교는 구약을 근거로 유대인이 아브라함의 정실 사라의 계보를 따라 독점적인 언약의 민족을 이룬다고 ‘직렬적 정통성’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이슬람교는 역시 이 구약을 바탕으로 ‘하나님’라든가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언약받은 민족으로서 아랍인의 정체성을 제시하는 ‘병렬적 정통성’을 주장한다.

 

이와 별도로 유대교의 폐쇄적 성격을 깨고 새로운 세계종교의 지평을 연 그리스도교도 주역으로 등장해 중동 지역의 복잡다기한 종교 구조를 획정하고 있다. ‘하나의 하나님’으로부터 ‘세개의 종교’가 갈라진 것이다.

 

역사에서 이 갈라진 종교는 다시 여러 요인에 따라 자기분열을 계속한다. 먼저 그리스도교는 가톨릭과 그리스정교로 갈라진 뒤 근세에 이르러 새로이 개신교가 생겨난다. 비록 개신교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세력을 얻을 수 없었지만, 현재 다시 여러 종파로 갈라진 채 이 지역에 재상륙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이슬람교 역시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라진다. 유대교는 서기 70년 무렵 로마에 대한 반란의 실패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겨나거나 흩어진 유대인이 1900여년 뒤 다시 이 지역으로 무더기로 몰려오면서 새로운 종교지도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런 종교상의 분열 양상이 오늘날 중동을 전쟁의 불길 속으로 밀어넣는 제1요인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종교는 단순히 갈라진 채 수동적으로 놓여 있는 경우란 좀처럼 없다. 자기 논리(또는 교리)에 따라 외부적으로 능동적인 대립과 갈등의 주체로 기능하면서 다시 내부적으로 자기분열도 멈추지 않는다. 그 결과 중동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 더 첨예하게 모든 종교와 종파가 자기 이외의 모든 종교와 종파와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 서기 680년 벌어진 카르발라의 비극. 마호메트의 손자이자 사위인 알 후사인 알리가 이곳에서 피살되면서 이슬람교는 그를 추종하는 시아파와 반대세력인 수니파로 갈리게 된다.

 

 

 

» 1204년 제4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기 위해 출발했지만, 전과가 없자 엉뚱하게도 동방정교회의 중심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무자비하게 약탈했다.

 

 

미국의 정체성은 ‘유대-기독교’일까

종교적 대립 양상에 더해 2차적으로 민족적·정치적 요인이 결합해 상황을 훨씬 폭발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라크만을 예로 들더라도, 민족적으로 다수파인 아랍 민족을 비롯해 쿠르드인, 터키계인 투르크멘, 이란계 페르시아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다시 정치적으로는 이슬람 급진파부터 세속주의적 바트주의 정치 노선, 서구형 민주주의파 등 잠재적 갈등요인이 적잖게 내재해 있다.

 

이해하기 쉽게 이 도식을 단계화해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1단계: 유대교 vs 이슬람교

2단계: 유대교 초정통파 vs 이슬람 시아파

3단계: 유대교 초정통파 정착촌 건설론자 vs 이슬람 시아파 급진 테러리스트

 

현재 이라크전은 미군의 침입과 진주에 따라 자주 대 외세라는 1차적 모순을 전면화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 변화에 따라 종교적·민족적 정치 체제의 요소가 언제든지 1차 모순을 대체하는 더 폭발적인 단계로 진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중동의 종교가 늘 서로를 적대시하고 상대를 박멸 대상으로 보았던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서로 공존하고 평화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이 엄청나게 많다.

 

 

 

» 부시 미국 대통령. 부시는 완고한 근본주의 기독교로서 이슬람에 대한 미국의 공세를 주도하고 있다.(사진/ AFP연합)

 

서기 30년 무렵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은 중동 지역의 종교지도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순교는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의 중동 및 유럽 확산을 결정지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적대심을 높여주었다. 이 반유대인 감정(anti-semitism)에 따라 유대인들은 중동 지역과 유럽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 유대인은 이슬람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입지를 확보한다. 이슬람교 국가가 유대인을 ‘책을 가진 백성’으로서 관대한 대우를 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초기 마호메트가 유일신을 같이 섬긴다는 배경에서 유대교도와 그리스도교도에 다른 종교에 비해 특혜적 대우를 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윌리엄 보이킨 미 국방차관의 논리는 현재 미국 지배세력의 인식과 전략이 얼마나 이라크의 역사적·실체적 진실과 동떨어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보이킨은 기술적으로 교묘하게 미국의 정체성을 ‘유대-기독교’로 규정하고 있다. 속임수로 논리 비약을 꾀

       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이라크의 후세인 체제는 물론 이라크 전체 민중까지도 급진파로 규정해 적대적 공격을 합리화하려 한

       다.

셋째, 정교 분리 원칙을 깨버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슬람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왜

       곡하고 있다.

종교전쟁 주재하는 신의 진정한 뜻은?   이런 점을 종합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가설이 가능해진다.

1. 이런 발언이 나온 시점이 2003년 10월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는 이라크 전쟁 자체의 승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

    라 2004년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

2. 더 본질적으로 이라크 전쟁을 벌인 미국의 목적이 더 근원적인 것, 즉 이라크 나아가 중동 지역의 원유 자원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겨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는 한국군의 추가 파병은 결국 한국이라는 시스템을 중동발 종교전쟁과 중동발 테러리즘의 사정권 안에 직접적으로 밀어넣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적 행동 통일을 선택한 뒤 우리에게 밀어닥칠 대가가 무엇인지 그 실체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의 선택이 과연 옳은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미 실효 없는 논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우리의 생존 기반으로서 ‘에너지 라인’이 너무나 길고 험난한 곳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써 그것을 잊고 행복한 과거만이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낙관론은 종교전쟁이라는 대양에 침몰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총과 무기를 든다. 자신이 죽이려는 자도 자신과 같은 뿌리를 가진 신에게 기도드리는 데도 처참한 죽음을 향한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전쟁을 주재하시는 신의 진정한 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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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코란은 어떻게 기록됐나

 

종교와 문자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주요 종교는 모두 문자를 전제로 한 경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느 의미에선 오직 종교나 문자를 가진 집단만이 역사의 주도권을 갖거나 장기간 생존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논지도 설득력을 갖는다. 종교와 문자는 민족의 생존을 위한 ‘와룡’이나 ‘봉추’인 셈이다.

 

 

»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모세 5경(토라)의 두루마리를 들고 행진하는 유대인들.

 

유대교는 천지를 창조한 조물주인 야훼(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유대인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유대교는 모세가 썼다는 모세 5경(구약성서 가운데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의 다섯 율법서)을 히브리어로 기록해 전승해오고 있다. 이 히브리어로 쓴 성서의 존재와 전승이 유대인과 유대교의 생존을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히브리어로 된 유대인의 성서는 기원전 250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에 의해 당시의 국제어이던 그리스어로 번역됐다. 이것을 보통 ‘70인역’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회당인 시나고그(synagogue)를 중심으로 히브리어로 된 토라(모세 5경)를 읽고 기도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해나간다. 민족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수천년 세월 동안 그들의 정체성을 하나로 확립해준 것은 바로 이 히브리어의 토라인 것이다.

나아가 초기 이슬람교의 확산 시기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코란이 시기적으로 자신들의 경전보다 훨씬 늦게 나온데다, 내용상으로도 자신들의 경전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는 점에서 평가절하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입장이 두 종교간의 화해에 적잖은 부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교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을 그대로 채용하고, 다시 예수 이후의 신약을 헬라어라고 불리는 그리스어로 기록했다. 이 통용 그리스어는 고전 그리스어가 아니라 당시 일반인들이 상거래 등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언어 문자다. 유대인 출신으로 신약의 절대 분량을 기록한 바울이 유대인의 문자인 히브리어가 아닌 당시 세계어인 그리스어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세계종교로의 비상이 가능했다는 측면도 강하다. 만일 이 신약을 히브리어로 기록했다면 그리스도교의 세계화는 결정적으로 제약받았으리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어느 의미에선 그리스어로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가 보편종교, 세계종교로의 강렬한 의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교는 코란을 통해 종교적 교리를 확립하면서 동시에 이 문자(언어)를 만들고 쓰는 민족인 아랍인의 정체성도 강화할 수 있었다. 코란은 그 원래 뜻인 ‘읽다’ ‘읊다’에서 알 수 있듯이,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마호메트에게 온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읽거나 읊은 것이라는 데서 나왔다. 114장 6천절로 신약성서의 약 5분의 4 정도 되는 분량의 내용을, 그것도 매우 시적으로 아름다운 말로 읊은 뒤 마호메트 사후 20년 뒤에 기록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코란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똑같은 자손으로 인식하면서도 유대인과 달리 유일신도, 그 유일신을 담은 자기 말로 된 경전도 갖지 못한 아랍인에게 ‘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아가 코란의 권위는 코란 자체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종교보다 신도들에게 더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출처] :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2004.07.22 제518호]

 

 

출처 : 솔바람소리
글쓴이 : 구름에 달가듯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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