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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읍내 외곽도로입니다. 《방우리》, 여기서 가깝죠.
행정구역상으로는 금산군 부리면입니다.
산 너머가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적벽강’, ... 그러나 길이 없어요.
몇 해 전에 길을 내려고 했다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아주 중단한 것은 아니고) 머뭇거리고 있는 중일 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분위기 망치기엔 아까운 곳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드물잖아요.
그러니까 여길 오자면 무조건 무주로 와야만 합니다.
특히 봄에 걷기 좋다는 ‘방우리’들어가는 길입니다.
도로포장한 것도 얼마 안됩니다.
생각 같아서는 비포장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살고 있는 동네주민들 생각도 해야죠.
이 물에 고기 많답니다. 지난번엔 팔뚝만한 잉어 떼를 봤었는데, 오늘은 베스가 둥둥 떠다니더군요.
아마도‥ 낚시를 못하게 할 거예요.
자, 갈림길입니다. 우리는 좌측 길이 아니고 우측길로 갑니다.
아무 길로 가든지 한 바퀴 돌아나오는 길인 줄로 알았는데,
아, 그게 아니더군요. 길이 서로 달라요. 둘 다 각각의 마을에서 끝나는 길입니다.
왼쪽으로 가면 《外방우리》,
오른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內방우리》,
마을이래야 몇 가구 안됩니다. 10家戶씩이나 될까?
우리가 왕복 4~5km 걸었을 겁니다.
진짜로 걷기에 좋은 길입니다. 가르쳐주기 싫을 만큼. ^^
아카시아꽃이 막 피려고 하던데,
지난 가을에 왔을 때는 칡꽃 향기가 어찌나 좋던지.....
뭔 꽃이라던가? 친구가 갈쳐줬는데 금방 잊어버렸네. ㅎㅎ
갈림길이 비슷하게 보여서 헷깔릴텐데, 여긴 고개를 넘어 온 겁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분지가 나타납니다.
고개 너머의 저쪽이랑은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사람도 눈에 안 띄어요.
에이~, 습지라 할 건 없어요.
이 물이 아까 그곳으로 흘러가는 것인데, 아주 동그랗게, 거의 360도를 돌아나가는 겁니다.
재미난 공덕비를 하나 봤습니다.
'설병환'이라는 순창사람이 1954년, 6. 25 직후에 이곳에 처음 들어와서 개간해서 만든 마을이랍니다.
개간한 땅을 난민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네요.
그 공덕비입니다.
그런데 이 공덕비의 글과 글씨를 쓴 사람이 제 자랑까지도 써놨네요. ㅋㅋㅎㅎ
‘나의 글을 請하기로 내 비록 不文不德이나 以上과 같이 지으노라’
이곳을 발견하곤 피난처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정말, 비지(秘地)입니다. 밖에선 전혀 알 수가 없는 곳이죠.
이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면 《外방우리》가 나올 줄로 알았는데, 마을에서 끝나는 길이더군요.
자, 이제 U턴해서 도로 나오는, 아까 그 길입니다.
큰 도로변에 나가면 ‘어부의 집’이 있습니다. 민박도 한다고 써 놨더군요.
슬쩍 와서 루어 낚시 하는 정도는 괜찮을 듯합니다.
2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일, 6일이 무주 장날입니다. (금산 장날은 2일 7일입니다.)
봄이라선지 특산물 같은 건 나온 게 없더군요.
장터에서 소고기내장국밥을 먹었는데, 아주 별룹디다.
3
금산에 있는 《보석사》입니다. 절이 궁금해서 간 것은 아니었고,
여기에 취나물이 나는 장소를 우리가 압니다. 5년 전인가 와서 우연히 발견하고 많이 뜯어 갔었습니다.
그거 뜯을려고 온 거였죠. ㅋㅎㅎㅎ
영규대사 사적비입니다.......
‘기허당 영규 대사가 임진왜란시 중봉 조헌 선생과 금산 전투에서 순국한 것을 기려 세운 의병승장비가 이렇게 세워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비문을 파괴하고 묻었는데 해방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찾아 내어 이자리에 세웠다고 합니다.’
천연기념물 제365호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높이 34m, 둘레 10.72m,, 조구대사가 창건(886년) 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해강 김규진님 글씨입니다.
((절 입구를 이 곳 - 범종루 밑구녕으로 - 바꾸었다는군요.))
바뀐 뒤에 친구가 가보니, 이 편액이 없어졌드래요. 그래서 주지스님한테 물어봤다죠.
“오잉? 그게 그렇게 귀한 거였다고잉?”
창고에선지 방구석에선지 찾아내서 다시 걸었다는군요.
그리고, 최초의 보석사를 지을 때는 대웅전(본절)의 위치가 이곳이 아니랍니다.
친구 말이,, 지금 있는 연못과 일직선상의 윗쪽에 있었을 거라더군요.
보석사가 조선시대만 해도 아주 큰 절이었답니다.
절 마당이 이게 뭡니까? 아효 진짜, 왜들 이러는지. 금산군에서 돈을 준 것 같은데.....
의선각,,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던 곳입니다.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면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와 보석사를 왕래하며 수도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의선각에는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로 된 '의선각(毅禪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김찬식이 눈군가? 글씨 멋지네요.
오른쪽에 저런 모양으로 늘린 절집이 의외로 많더군요.
나는 저모양을 보면, 한복 입고 게다짝 신은 것 같아서 영 눈에 거슬립디다.
자, 이제 취나물 뜯으러 갑니다.
멀리 안 가요, 절에서 100미터만 가면 됩니다.
하하하하하‥ 이게 다입니다. 누가 다 뜯어갔네벼요?
제 핸드폰 카메라 원래 션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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