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5. 16:25ㆍ음악/영화. 영화음악
(( 경향신문에서 옮김 ))
12월9일 개봉하는 <베리드>(사진)는 “설마” 했다가 “헉!” 하면서 끝나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무 것도 안보이는 검은 화면에 남자의 숨소리만 조그맣게 들립니다.
몇 분이 흐르고 남자가 라이터를 켠 뒤에야 상황이 조금씩 파악됩니다.
남자는 밀폐된 장소에 갇혔습니다. 아마 관 속에 든 채로 생매장된 것 같습니다.
발 밑에는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 휴대폰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통화 내용으로 추측하건대 남자는 이라크에서 일하는 민간 용역 업체의 트럭 운전사입니다.
누군가가 그를 습격해 생매장한 뒤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아내, 친구, 국방부, FBI, 회사 등에 닥치는 대로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카메라는 한 번도 관 바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배우도 한 명뿐, 나머지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로만 들립니다.
생매장된 것만 해도 끔찍한데, 남자의 상황은 전화를 하면서 더욱 끔찍해집니다.
남자가 속한 국가, 남자가 월급을 받는 기업의 대응은 카프카적인 악몽 같습니다.
국가는 무력합니다. 전화 배터리와 산소는 떨어져 가는데 경쾌한 대기 음악은 시간만 잡아먹습니다.
상담원원은 담당자를 바꿔주고, 담당자는 또다른 담당자를 바꿔주고,
분을 참지 못한 남자가 성질을 내면 전화기 너머의 관료는 왜 성질을 내느냐고 도리어 성질 냅니다.
결국 연결된 담당자 역시 이역만리에 생매장된 자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기업은 야비합니다. 전화를 걸어온 기업 변호사의 대응은 영화 최대의 반전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동감이 가는 건 납치범입니다.
그는 전쟁통에 5명의 아이 중 4명을 잃었다고 주장합니다.
생매장된 남자가 “난 이라크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납치범은 “나도 9·11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냉소합니다.
감독은 스페인의 신예 로드리고 코르테스지만, 각본은 미국인 크리스 스파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이자, 가장 강한 기업들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 이런 영화 대본이 나왔다는 건 징후적입니다.
개인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실패한 개인에 대해 온정을 아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이 따라하지 못해 안달하는 건 미국 모델입니다.
세금 내고 군대 가고 뼈 빠지게 일도 했는데, 국가와 기업은 곤경에 빠진 개인을 탁구 치듯 상대방 책임으로 떠넘깁니다.
잘못 쳐서 테이블 바깥으로 벗어나면 그냥 ‘게임 끝’이죠.
용산에서 대추리에서 울산에서, 개인은 테이블 바깥으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세상에 몸 비빌 데가 없습니다.
지금은 “내게 기대라”라고 외치는 교주들이 영업하기 좋은 시대입니다.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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