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한 켤레의 구두>는 철학자 하이데거 덕에 더욱 유명해졌다.
고흐는 왜 이 낡고 오래된 구두를 주목하고 그림을 그렸을까.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이란 글에서 고흐가 그린 <한 켤레의 구두>의 존재방식에 대해 묻는다.
이 낡고 오래된 구두는 농부가 신던 것일까.
구두의 앞창은 벌어져 틈이 생기고, 왼쪽 구두의 목은 접히고, 오른쪽 구두의 끈은 함부로 풀렸다.
구두의 낡아빠지고 쓸모없음은 농부의 고된 노동을 증거한다.
이 구두의 낡음에는 노동의 고단함과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다 함께 깃들여 있다.
이 구두는 저절로 낡아진 것이 아니라
'대지의 부름'과 '대지의 조용한 선물인 다 익은 곡식의 부름'에 의해 낡아진 것이다.
농부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이 구두를 신고 들에 나가 일을 했을 것이다.
빵을 구하기 위해, 태어나는 아기를 위해, 죽음의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
아니 불평 없는 근심과 고난을 이겨낸 뒤의 말없는 기쁨을 위해.’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으로 무수한 빈센트 반 고흐를 남겼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자화상들이 그것이다.
그는 어떤 겉치레나 위선도 없는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다.
광인 고흐,
늙고 지친 고흐,
농부 고흐,
가난한 고흐,
성스러운 고흐,
방탕한 고흐,
침묵에 빠진 고흐,
...... ,
고흐의 자화상은 세상에 대한 자신감의 과시다.
그걸 왜 굳이 과시해야만 할까?
우선 나는 최고의 화가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피암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면에 화가로서의 운명에 대한 사랑과 불안감이 소용돌이치기 때문이다.
얼굴 외부 요소들의 견고함에 비해 눈빛은 불안하다.
그 흔들리는 눈빛은 고흐 내부 어딘가에 숨은 '닳고 닳은 병의 넘쳐남', 정신착란, 무질서,
그리고 생을 옥죄고 있는 강박관념을 예시한다.
실은 평온해 보이는 외면 아래 숨은 내면은 불안과 광기로 들끓는 과열된 공장이다.
그것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잠재적 위험요소다.
아무도 감지하지 못했지만 고흐 자신은 늘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소울 메이트라고 믿은 고갱이 떠나버린 뒤 광기가 도진 고흐,
결국 그는 앙토냉 아르토의 말대로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이 되고 말았다.
반 고흐의 자화상들은 세상의 무관심과 몰이해, 저열함에 맞서려는 의지,
가난과 뼈저린 고독, 그리고 충만한 절망을 파열하듯이 드러낸다.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장석주 著 p223~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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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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