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3. 09:45ㆍ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핀란드의 헬싱키
1.
북유럽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장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기능을 강조한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바로 북유럽 디자인의 강점이다.
북유럽 국가 중에서도 핀란드 디자인은 훨씬 더 자연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서 핀란드 여행 중 꼭 디자인을 챙겨봐야 한다.
헬싱키의 건축물들은 네오클래식 양식이 많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도시 분위기가 비슷해서 냉전시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를 핀란드에서 많이 촬영했다.
핀란드의 명품 디자인을 볼 수 있는 곳은 2005년 설립된 디자인포럼과 디자인 디스트릭트다.
디자인 포럼은 디자인 발전을 위해 만든 기관인데 여기서는 좋은 디자인을 선정, 발표한다.
현재 170개의 식당, 쇼핑몰, 디자인숍, 갤러리, 패션몰 등을 선정해 관광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디자인 디스트릭트란 포럼이 선정한 디자인 명소다.
디자인 포럼의 한나는 “신인 디자이너와 중소기업을 연결, 중소기업의 디자인을 돕고 있다.
좋은 디자이너는 전시공간도 마련해준다. 한국계 디자이너도 여럿 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홍순환씨가 디자인한 구멍이 2개인 꽃꽂이를 보여주며 물 높이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고 했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무송이란 한국 디자이너는 꽤 명성을 얻고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 신발 위에 어린이 신발을 얹어 부자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신발도 있단다.
아무송은 아티스트로도 활동 중이란다.
헬싱키 디자인 포럼 앞에 있는 네오고딕양식의 빌딩.
우수 디자인 작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눈을 뭉쳐놓은 듯한 고무공은 베스트셀러다. 공을 움겨쥐면 눈처럼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디자인 포럼 주변에는 프랑스패션위크에 주요하게 다뤄진 이바나 헬싱키란 디자이너숍,
식사를 한 뒤 맘에 드는 의자를 사가지고 갈 수 있는 카르마,
고전주의 건물을 현대에 접목시킨 클라우스K호텔 등도 있다.
핀란드 대성당.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사도와 예수를 성당 지붕 곳곳에 세워놓았다.
핀란드가 언제부터 디자인 강국이 됐을까.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바 알토란 건축가를 알아야 한다.
핀란디아홀을 설계하기도 했으며 핀란드 디자인을 세계에 알린 건축가다.
일본의 이토 다이스케는 그의 작품을 찾아나선 여행기 겸 디자인해설서 <알바 알토>의 서문에
“유럽의 근대를 대표하는 다른 건축가의 예로서 미스 반 데어로에나 르 코르뷔지에는 제각각 유럽문화의 중심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우리는 그들의 국적을 새삼스레 묻지 않는다.
그러나 알토는 다르다. 유럽의 한 모퉁이에 있는 작은 나라에서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존재, 더구나 언뜻 근대 건축의 원칙에 따라
건축을 구성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또다른 향기를 풍기는….
우리는 알토를 이야기할 때마다 언제나 핀란드라는 한 나라를 연상시킨다”고 썼다.
디자인 명소를 알리는 디자인 디스트릭트 표지판.
그만큼 디자인에 미친 영향력이 대단하다.
헬싱키에도 알토의 건축작품이 남아있지만 실제로 여행자들이 찾는 것은 그가 만든 가구나 소품이다.
알토가 디자인한 곡선형의 물병은 핀란드의 어느 집에 가더라도 하나는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알토의 작품과 현대 핀란드 가구 디자인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아르텍(Artek)이다.
건축가 알바 알토가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만들었는데 가구도 팔고, 전시도 한다. 알토뿐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일본인 시게루반이 디자인한 10개 조각의자도 나와 있었다.
아르텍의 작품은 곡선미가 뛰어나다.
의자의 다리를 잘라서 붙이지 않고 휘어 만든다.
의자 다리에 홈을 잘게 파서 굽히기 쉽게 하는 방법을 썼다. 그래서 나무의자 다리가 플라스틱처럼 휘어있다.
50년 전의 디자인이지만 지금 봐도 세련됐다.
아르텍 매니저 미나 툴리아는 “한 번 사면 평생 쓸 수 있는 것을 만든다”고 했다. 최근에 내건 슬로건은 ‘의자 하나면 충분하다’이다.
핀란드 가구는 곡선미와 단순미가 특징이다.
카리 헬싱키 관광국장은 핀란드 디자인의 특징을
①가장자리(Edge) ②첨단소재(Controversial) ③라이프스타일(Life Style)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라이프 스타일은 겉멋을 최소로 줄이고, 실용적인 핀란드인의 정신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전통이 핀란드식으로 진화했다.
아트숍뿐 아니라 핀란드의 건축물에서도 디자인을 볼 수 있다.
건축적으로 독특한 디자인은 암석교회. 1969년 디자인공모전에 응모한 더모와 투오모란 형제가 디자인했다.
암반을 그대로 살렸고, 천장에 2만2000m의 구리선을 돌렸다. 음향 효과를 위해서라는데 특이하게 생겼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물병. 핀란드인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많이 팔린 작품이다.
헬싱키 도심 건축물도 따지고 보면 디자인과 연관이 있다.
헬싱키는 파리나 런던에 비해서는 물론 건축문화 유산이 약하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황제에 의해 수도로 결정된 헬싱키는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이 대거 들어왔다.
헬싱키에선 이런 양식을 유겐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헬싱키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해서 냉전시기에 러시아에 들어갈 수 없었던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헬싱키에서 첩보영화를 찍었을 정도다.
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도 많다.
아르누보란 현란한 장식을 앞세운 것으로 건축물을 예로 들면 집집마다 창이 다르고, 현관 석조기둥마다 장식을 했던 건축양식이다.
알랭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한 나라의 정체성은 그 나라 전체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그 땅이 지시한다기보다는 창조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핀란드에선 루이뷔통이나 샤넬 등 명품매장은 많지 않다.
핀란드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살 수 있는 것이 무슨 명품이냐”고 했다.
가구에 겉멋을 보태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살린 디자인, 핀란드 여행의 재미다.
<헬싱키(핀란드) | 글·사진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2.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복지천국 스웨덴의 슬로건을 핀란드 사우나에 적용해볼 수 있다.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목욕이 아니다.
레저이자 생활이며 전통이다.
핀란드의 고도 투루쿠 인근 스토르핀호바 원두막. 쭉쭉 뻗은 소나무숲 속에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아이도 사우나에서 낳고, 시신도 사우나에서 닦는다.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텐트를 치고 돌을 데워 사우나를 했다고 한다.
가이드는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사우나에서 비즈니스 상담도 한다고 했다.
인구는 500만명인데 사우나가 100만개. 집 지을 때도 사우나부터 짓는다.
그래서 핀란드를 여행할 때 사우나는 필수다.
굳이 사우나의 등급을 매기자면 전기사우나가 가장 낮고, 나무로 된 전통가옥에서 하는 사우나는 중급이다.
최고의 사우나는 스모크사우나, 즉 나무를 땐 연기가 그대로 배어 있는 사우나다.
핀란드의 고도 투루쿠의 토미엔이란 섬에 있는 스토르핀호바 리조트 사우나를 찾았다.
투루쿠는 1812년 헬싱키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핀란드의 수도였다.
러시아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이긴 뒤 서유럽의 영향력이 강한 투루쿠 대신 새 수도를 정한 것이다.
토미엔은 투루쿠 앞 발틱해의 ‘아키펠라고 국립공원’의 들머리다.
아키펠라고는 우리말로 치면 ‘다도해’다. 섬이 깨알같이 많아 핀란드인들도 세보지 못했다고 한다.
100년에 50㎝쯤 수면이 상승해서 섬들이 새로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휴일이면 섬에 가서 쉬고 사우나를 하는 게 핀란드인들의 휴가법이다.
실제로 헬싱키 인근 수많은 섬에도 집이 두어채씩 있는데 하나는 별장, 나머지는 사우나다.
(전 국토의 70%가 숲, 호수가 6만개나 된다.)
훤칠한 소나무가 좋은 숲 어귀에 사우나가 있었다.
작은 개울이 흐르는 암반 위에 통나무로 기둥을 올린 사우나는 3일 전부터 불을 땐다고 했다.
65t이나 되는 사우나 돌벽에 열기를 담기 위해서다.
안은 매캐했고, 숯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땔감은 자작나무를 많이 쓴단다.
가이드는 눈이 매울 경우 절대로 비비지 말고 밖에 나와 그냥 쉬면 된다고 주의를 줬다.
돌덩이 위에 물을 한 바가지 부을 때마다 수증기가 몸을 감았다.
땀을 흘렸는데도 희한하게 끈적거리지 않았다.
수건 한 장 두르고 맨발로 숲을 걷거나 나무 의자에 앉아 KOFF란 로컬 맥주를 마시면서 사우나를 해봤다.
맥주와 사우나도 묘하게 어울렸다.
2시간30분 정도의 사우나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왜 인접국가인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엔 이런 사우나가 없을까.
피스카스에서 만난 할머니는 “먼 옛날엔 유럽에도 비슷한 전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발가벗고 마주하는 게 어색했을 것이고, 그래서 많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핀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변방에 있는 나라이다보니 이런 전통을 아직까지 지켜오고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로 내기도 건단다. 열기 속에서 오래버티기를 하는 것이다.
사우나에서 나오면 비히타라고 불리는 마른 자작나뭇잎으로 몸을 툭툭 쳤는데 건강에 좋다고 한다.
스토르핀호바의 사우나 옆에는 나무 중간에 걸쳐 놓은 오두막이 있다.
우리로 치면 삼림욕장의 통나무집이다.
투루쿠도 핀란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다.
13세기에 교황이 주교를 보냈으니 당시에도 꽤 큰 도시였음이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1827년 화재로 잿더미가 돼 성당과 성곽을 제외하고는 투루쿠의 역사를 가늠해볼 만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성당은 증축에 증축을 해서 덧입힌 자국이 드러나 있었다.
핀란드에서 사우나와 함께 즐겨야 할 것은 백야다.
백야를 핀란드 말로 유하누스(Juhanus)라고 한다.
기자가 방문한 5월말엔 해가 오후 10시쯤 졌고, 3시쯤 떴다.
해가 지고도 한참동안 환했다.
6월엔 해가 가장 길다는데 24시간 떠있다시피 한다.
핀란드의 백야는 한낮이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오후 5시의 햇살이 6~7시간씩 이어지는 것이다.
함께 여행하던 동료는 하루 일을 대강 갈무리할 수 있는 저물녘의 햇살같다고 했다.
광선은 비스듬히 창문으로 기어들어오고, 여리지도 강하지도 않은 햇발이 기분좋다고 했다.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석양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루라 강변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햇살을 즐긴다.
레스토랑으로 개조된 선박에 앉아 맥주를 기울이는 재미도 좋다고 한다.
백야는 흑야에 대한 보상이다.
스칸디나반도에선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극단적이다.
겨울엔 하루 3~4시간밖에 뜨지 않는다.
그래서 햇빛 아래 있는 느낌이라도 얻기 위해 키카스발도라고 하는 밝은 램프를 켜놓는다.
암흑 속에서만 지내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름은 핀란드의 모든 생명붙이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생명들이 햇살 한 줌도 놓치지 않으려 쭉쭉 빨아먹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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