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inter at His Easel c.
1870-75 Oil on panel 33.5 x 27 cm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Wiliamstown
말년에는 거의 실명상태로 친구가 제공한 발몽두아의 조그만 집에 살다가 2월 11일에 일생을 마쳤다. 그리고 2월 14일 발몽드와(Valmondois)에서 거행된 장례식을 계기로 도미에는 세간의 이목을 받기 시작했다. '공화주의의 상징적 인물'로서 도미에라는 공화파의 공감대를 드러낸 장례식과 발몽드와 시장 베르니(Bernay)의 장례 연설은 우익 언론에서조차 큰 관심을 보였다. 4월 16일 도미에가 페르-라셰즈(Pere-Lachaise)로 이장되면서 공화주의 언론에 보다 많은 논설이 실렸고, 이제 도미에는 더 이상 천박한 장인이 아니었다.
도미에 그는 40년간 귀족, 관료, 서민들의 삶을 풍자하였으며, 4,000여점의 석판화와 목판화를 제작하였다. 또한 일관되게 풍자만화를 그린 미술사적으로 거의 유일한 화가였으며, 그의 만화는 단순한 권력비판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삶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미술가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대 사람들은 그를 일러 '풍자만화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밖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석판화인 <로베르 마케르>, 유채화인 <크리스팽과 스카팽>, 풍자화인 <트랭스노냉의 거리(rue transnonain), 1834>, <눈길의 크리놀린 치마(the crinoline in snow), 1858>등이 있다
[출처] 오노레 도미에( Honore Daumier,1808~1879,프랑스 마르세이유 출생,분노 고통 호소하는 민중의 진정한 모습 풍자만화가,사실주의 화가, 조각가)|작성자 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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