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롱 르동

2023. 5. 5. 17:02미술/서양화

상징주의 회화의 선구자 오딜롱 르동

스스로의 내면세계 표현하는데 주력해 독자적 화풍 이룩해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1840년-1916년)은 19세기 프랑스 화가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상징주의 회화의 선구자이다. 그는 인상주의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몰두하는 동안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데 주력해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했다.

 

01_상상력 극대화된 심상의 세계, 현대미술에 큰 영향

감은 눈 1890년, 유화

암시와 은유로 가득 찬 그의 작품은 현실의 공간과 중력을 배제한 자신만의 공간을 창조하여 그 안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상상력이 극대화된 작품들에서는 고독과 슬픔이 기괴한 사물들의 형태를 빌어 그 존재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색상으로 이루어진 신화와 종교의 세계,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꽃과 여인들의 순수한 세계…. 그 모두가 르동 만의 신비롭고 독창적인 세계이다.

마르셀 뒤샹은 그가 자신의 예술의 출발이라고 말했고, 앙리 마티스는 그의 파스텔 색채에 영향 받았음을 인정했다. 그의 다채롭고 강렬한 색채는 야수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상상력이 극대화된 심상의 세계는 초현실주의와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02_자연의 신비, 르동의 작품세계서 큰 비중 차지

꽃구름 1903년, 유화

르동은 1840년 프랑스 남서부의 항구 도시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어머니와 떨어져 시골 농장으로 보내졌다. 어머니의 질병 때문인지 그의 허약한 몸 상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11년이라는 긴 세월을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그가 느꼈을 고독과 소외감은 짐작이 간다.

그는 외삼촌의 손에서 키워졌는데, 한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시골 농장에서 외로이 자란 어린 시절은 사랑의 결핍과 쓸쓸함으로 채워져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스스로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기억들은 후에 그가 그리게 될 ‘검은색 회화’의 원천이 되었다.

1851년 원래의 집으로 돌아와 정규교육을 받았지만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분야 외에는 흥미가 없었던 르동은 18세가 되자 파리로 가 장 레옹 제롬에게 그림을 배웠다.

또한 식물학자 아르망 클라보에게서 자연과 철학과 문학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었다. 많은 식물들의 디테일을 정교하게 스케치하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통해 단세포에서 증식해나가는 생명의 신비, 현미경에 비친 미생물에 대해 알아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흥미도 깊어져 갔다.

이때 접한 자연의 신비는 르동의 작품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해 판화 작업이나 목탄화 곳곳에 식물이나 곤충의 형상을 왜곡시켜 만든 이미지들이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났다.

 

03_로돌프 브레스댕 만나 동판화의 세계로

꽃들 1909년, 유화

1863년 동판화가 로돌프 브레스댕을 만나 동판화의 세계에 빠져든 르동은 많은 목탄화와 동판화를 제작했다. 1865년 작 ‘로돌프 브레스댕’은 30cm 정도의 작은 종이에 연필로 그린 데생인데 루부르박물관에 걸릴 정도로 뛰어난 작품으로 젊은 르동의 필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스승의 옆얼굴은 힘찬 선으로 표현되어 있고, 흑과 백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명암의 처리가 사색에 잠긴 남자의 표정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반면에 머리털과 수염 부분은 거의 터치가 없이 흐릿하게 표현되어 얼굴 부분과 극적으로 대조될 뿐만 아니라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1870년에 시작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1년여간 참전한 뒤 돌아온 르동은 1874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앙리 팡뎅 라투르에게서 석판화 기법을 배웠다. 1875년 목탄으로 그린 ‘다윗과 골리앗’에서 다윗은 벌거벗은 왜소한 소년으로 묘사되어 있다.

골리앗은 머리가 잘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고 다윗은 거대한 골리앗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데, 극단적으로 표현된 크기의 차이로 화면은 좀더 비현실적으로 보여진다. 전사들이 우글거리는 전쟁터가 아닌 고요한 들판의 배경에서 잘린 머리통이 주는 기괴함은 소리 없이 퍼져나간다.

 

04_200점 넘는 석판화 제작하며 왕성한 작품활동

다윗과 골리앗 1875년, 목탄화

‘형태’는 1876년에 그려진 파스텔화인데, 화면을 꽉 채운 채 노랗게 빛나는 달이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붉은 언덕 위에 떠있는 거대한 달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머리통에 손을 얹고 있다.

푸른 상의를 입고 머리에는 장식이 있는 모자를 쓴 것같이 보이는 인물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모호해 현실감이 없고, 신화 속의 인물로 보이는 거대한 머리의 눈동자는 심연과도 같이 깊어 수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듯 보인다.

1877년 작 ‘순교자의 머리’에서 눈을 감은 채 우묵한 접시 위에 담겨있는 순교자의 옆얼굴은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의 확신이 굳게 닫힌 입매에 머물러 있고, 사명을 완수하고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자의 평화로운 안식이 표정에 떠돈다. 화가는 머리카락이나 귀와 같은 디테일을 생략한 채로 그릇에 담긴 순교자의 얼굴을 그렸기에, 어두운 화면에서 순교자의 신념은 빛과 같이 드러난다.

르동은1879년 ‘꿈 속에서’라는 석판화집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을 그의 스승인 아르망 클라보에게 바쳐 자신의 작품세계가 그로 인해 꽃피었음을 드러냈다. 이 시기 자신의 작업을 ‘누아르 (검은색)이라 부르고, 200점이 넘는 석판화를 제작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05_있을 수 없는 존재, 인간과 같이 살아있게 만들기

부처 1905년, 파스텔화

1880년 카미유 파르그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르동은 이 시기에 ‘검은 고양이’와 ‘아나벨 리’로 유명한 미국 작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은 기괴함과 미스테리에 가득차게 된다. 1882년 앨런 포우에게 바치는 석판화 연작을 제작해 마치 포우의 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듯한 주옥 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르동은 “나의 독자성은 가능하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법칙에 적용시켜, 있을 수 없는 존재를 인간과 같이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슬픈 회화의 기원’이자 ‘검은색 회화의 원천’이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대한 눈알, 사람의 얼굴을 한 거미, 잘린 목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1882년 작 ‘영원으로 가는 이상한 풍선같은 눈’에서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풍선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눈알이다. 그 눈알에는 접시에 담긴 잘린 목이 담겨 있다.

석판화 ‘울고 있는 거미’ (1881년)에는 사람의 머리를 한 거미가 그려져 있는데, 앙상한 다리들로 지탱한 커다란 얼굴 속 그렁그렁한 눈망울, 뺨으로 흐르는 눈물 속에 어린 시절 겪었던 홀로 버려진 슬픔과 고독이 녹아있는 것 같다. 흉측한 거미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고 버려진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여겨져 구석에서 홀로 울어야 했던 처절한 고통이 보여 가슴이 아프다.

 

06_그의 심상 또한 흑백에서 총천연색 삶의 감사와 찬미로

순교자의 머리 1877년, 목탄화

인상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미술계에서 상징주의의 추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가는 수도사의 길과 같았다. 그러나 1885년, 르동은 고단한 여정 속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 말라르메를 만나게 되었다. 스테판 말라르메는 폴 베를렌, 아르뛰르 랭보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시단을 주도한 시인으로 상징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볼 수 있다.

그 역시 르동과 마찬가지로 현실세계를 떠나 또 다른 심상의 세계를 노래했는데, ‘성녀’, ‘목신의 오후’, ‘바다의 미풍’등 말라르메의 시에서 보여지는 정서는 숲 속의 요정, 고대의 유물인 밤의 성단 등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베아트리체’ (1885년), ‘신비로운 대화’ (1896년), ‘키클롭스’ (1914년), ‘꽃 사이의 오필리아’ (1908년) 등 많은 작품들은 마치 말라르메의 시의 세계를 르동이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이해자가 되어 1890년대 유럽을 휩쓴 상징주의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르동은 1884년 시냑, 쉬라 등과 함께 앙데팡당전을 창설했고, 1886년 제8회 인상파전에 참가해 작품을 전시했지만, 그의 행보는 인상파 화가들과는 전혀 달랐다.

1886년 첫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죽고 말아 상실감에 빠진 르동은 한동안 우울과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3년후 태어난 둘째 아들로 길고 긴 상실의 터널에서 벗어났고 새로운 희망과 사랑은 그의 화풍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듯 작품에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스텔과 유화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색채는 독특하고 신비로워 검고 어두웠던 그의 작품들이 화려한 색들의 향연으로 덮였다. 아마도 어둡고 암울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 맞은 삶의 충만함을 표현하고 싶었던지 주위에 있는 일상적인 소재나 인물들에 아름다운 색을 입혀 나갔다.

또한 ‘성 요한’ (1892년), ‘살로메’ (1892년), ‘성심’ (1895년)과도 같은 종교적인 작품들도 많이 그려, 그의 심상 또한 흑백에서 총천연색 삶의 감사와 찬미로 바뀐 것 같다.

 

07_유화이지만 마치 파스텔화와도 같은 느낌

신비로운 대화 1896년, 유화

1890년작 ‘감은 눈’은 유화이지만 마치 파스텔화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데, 르동이 흑백의 석판화에서 채색화로 넘어가는 과정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 인간의 내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히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렸지만, 섬세한 표정의 묘사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며 사고의 너른 바다를 유영하는 여인이 느끼고 있는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무한한 자유가 이 작품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고, 슬쩍슬쩍 지나간 것 같은 단순한 선들과 흐릿한 색들이 모여 오묘한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작품은 르동의 부인 카미유를 모델로 그렸다고 하는데, 사실 얼굴의 묘사는 여성의 얼굴이라기 보다는 중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여성과 남성의 중간 지점, 성을 떠나 인간이라는 전체적인 인격 자체를 표현한 것 같은데,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인간의 모습은 한 특정인을 넘어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신적인 느낌을 주어 경이롭다.

 

08_하나의 종교에 매어있지 않았기에…

울고있는 거미 1881년, 석판화

1903년에 그린 ‘꽃구름’은 폭죽과도 같이 하늘로 퍼져 나가는 화려한 색채들이 마치 환희에 가득 찬 삶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멀리서 돛단배를 타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이 작품에는 역동적인 감정의 분출과 그것을 관조하는 상반된 두 개의 감정이 공존하는 것 같다.

아마도 르동은 어두웠던 ‘누아르’의 시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심상에 색채를 입히고, 또 그것을 영혼의 깊은 눈으로 관조하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처’ (1905년)에서 벌거벗은 고목이 있는 정원을 거니는 부처의 모습은 관조와 고요한 해탈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눈을 감은 채 지팡이를 집고 한 손을 든 모습은 자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배경의 중첩되는 여러 톤의 블루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주는데 반해 부처가 걸치고 있는 인도풍의 화려한 의상이 대조되어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의 화면에 변화를 준다.

1910년 작 ‘성심’에서는 자애로운 표정의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슴에 빛나는 심장은 추상적으로 그려져 한없는 깊이와 공간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르동은 신화와 기독교, 불교 등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주제로 삼았는데, 아마도 그의 종교관이 하나의 종교에 매어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09_기괴할 수도 있는 장면 아름다운 색으로 표현

키클롭스 1914년, 유화

‘키클롭스’는 1914년 그려진 유화인데, 그리스 신화 중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눈박이 고대신 키클롭스 일족인 폴리페모스의 신화 한 장면이다. 폴리페모스는 요정 갈라테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화면은 숲 속에서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에 둘러싸여 잠든 갈라테아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폴리페모스의 모습을 그렸다.

흰구름이 몽글거리는 하늘과 우거진 나무들, 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숲 속의 정경은 님프의 나신만큼이나 아름답다. 화면을 수놓은 하나하나의 색채가 두근거리는 폴리페모스의 설레임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외눈박이 괴물의 흉측한 외모는 갈라테아에게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다가가고 싶어하는 사랑과 동경의 빛이 가득하다. 어느 괴물이 이토록 애처로운 감성을 가지고 있을까? 사랑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르동은 기괴할 수도 있는 이 장면을 폴리페모스가 느끼고 있는 감정으로 승화시켜 아름다운 색으로 표현했다.

 

10_불안과 고독 딛고 자신의 괴로움 예술로 승화

형태 1876년, 파스텔화

르동의 1900년대는 가히 꽃과 여인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꽃 속에 있는 오필리아’, ‘꽃들’, ‘커다란 야생화 꽃다발’, ‘일본 무사가 있는 꽃병’, ‘꽃 속에 있는 두 소녀’등 아름답고 환상적인 색채의 정물화와 인물화는 초기의 상징주의 작품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1879년 ‘꿈 속에서’를 시작으로 1896년 ‘앙트완의 유혹’까지 2-3년을 주기로 꾸준하게 판화집을 제작해 수많은 걸작들을 남긴 르동은 1903년 뒤랑 뤼엘 화랑에서 대대적인 개인전을 열었고, 1904년 65세의 나이로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13년에는 미국의 아모리쇼에 초대받아 개인실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그의 평화로운 삶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들의 죽음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더 이상 살 기운을 잃은 노화가는 1916년 수십 년간 그려왔던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76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날의 불안과 고독을 딛고, 자신의 괴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노화가의 아름다운 영혼을 기리며 그의 영전에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중 한 부분을 바치고 싶다.

 

-중략-

나는 꿈을 사랑하였던가?

내 의혹, 저 끝이 없는 고대의 밤의 성단이 쌓이고 쌓여

종려나무 실가지로 돋아나더니

생시의 무성한 숲이 되어 내게 일깨우니

오! 끝에 남은 것은 나 혼자 애타게 그린 장미빛 과오.

아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중략-

오 요정들이여, 다채로운 추억에 바람을 넣어

다시 가득 채우자

내 눈은 피리에 구멍을 뚫고 불후의 목구멍을 찌르고,

목의 타는 듯한 아픔이 물결에 실려 숲 위의 하늘로

광란하듯 절규한다.

감은 머리털은 빛과 오열 속에 사라진다.

-중략-

 

* 다음 번에는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와 만나겠습니다.

 

 

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https://www.ikoreatown.com.au/

 

 

 

 

 

 

 Odilon Redon (1840-1916, 오딜롱 르동) 

 

 

 

 

 

 

Beethoven Moonlight Sonata Op 27 No 2 Mov 1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1악장

 

 

 

 

 

 

 

 

 

 

 

 

 

 

 

 

 

 

 

 

 

 

 

 

 

 

 

 

 

 

 

 

 

 

 

 

 

 

 

 

 

 

 

 

 

 

 

 

 

 

 

 

 

 

 

 

 

 

 

 

 

 

 

 

 

 

상징주의에 영향을 끼친 19~20세기 프랑스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고야에게 바치는 경의>와 <사이클롭스>. 장 레옹 제롬에게 그림을 배우고, 로돌프 브레스댕에게서 판화를, 앙리 팡탱 라투르에게서 석판화를 배웠다. 그의 친구인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그의 상상력에 불을 붙이는 촉매작용을 했다. 그는 상상력을 그림으로 옮겼는데, 불안하고 소름끼치는 공상적 주제를 탐구했으며,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운동을 예시해준 판화와 주로 꽃을 그린 유화와 파스텔화를 그려, 앙리 마티스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에게 뛰어난 색채화가로 존경을 받았다.

 

 

 

 

 

 

 

 

 

 

 

 

 

 

 

 

 

 

 

 

 

 

 

 

 

 

 

 

 

 

 

 

 

 

 

 

 

 

 

 

 

 

 

 

 

 

 

 

 

 

 

 

 

 

 

 

 

 

 

 

 

 

 

 

 

 

 

 

 

 

 

 

 

 

 

 

 

 

 

 

 

 

 

 

 

 

 

 

 

 

 

 

 

 

 

 

 

 

 

 

 

 

 

 

 

 

 

 

 

 

 

 

 

 

 

 

 

 

 

 

 

 

 

 

 

 

 

 

 

 

 

 

 

 

 

 

 

 

 

 

 

 

 

 

 

 

 

 

 

 

 

 

 

 

 

 

 

 

 

 

 

 

 

 

 

 

 

 

 

 

 

 

 

 

 

 

 

 

 

 

 

 

 

 

 

 

 

 

 

 

 

 

 

 

 

 

 

 

 

 

 

 

 

 

 

 

 

 

 

 

 

 

 

 

'미술 > 서양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이비드 호크니  (0) 2024.03.13
피노 대니 (伊)  (0) 2022.12.23
카린주릭  (0) 2022.09.22
폴란드 수채화 화가  (0) 2022.08.19
폴란드 초현실주의 화가  (0) 2022.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