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보그다노프 벨스키

2022. 12. 23. 20:15미술/ 러시아 회화 &

◈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보그다노프 벨스키

 

 19세기 러시아 아이들의 모습을 담다


 




 




 




 




 




 




 




 




 




 


♣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보그다노프 벨스키 (Nikolay Petrovich Bogdanov-Belsky)
러시아의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보그다노프 벨스키 (Nikolay Petrovich Bogdanov-Belsky) / 1868~1945)는 
1883년, 열 다섯에 모스크바로 올라 간 보그다노프는 수도원 학교에서 지도를 받은 후 
그 다음 해에 모스크바 종합예술학교에 진학,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보그다노프는 학교에서 은메달을 수상하고 ‘Future Monk’라는 작품으로 최고의 학생으로 선정됩니다.
이어서 상트페테르부르그 아카데미에서 보그다노프의 공부는 계속됩니다. 
이 곳에서는 러시아의 사실주의 대가인 레핀의 지도를 받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파리로 건너가 2년간 머물며 공부 하는데 
이 때가 1895년이니까 인상주의가 거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이동파’ 전시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가를 한 그의 작품 주제는 주로 풍속화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골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초상화와 풍경화, 정물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특히 초상화는 상류층으로부터의 주문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고객 중엔 황족도 있었습니다. 
1903년, 서른 다섯의 나이로 아카데미 회원이 된 보그다노프는 
아카데미 회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실도 얻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1919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열린 
제 1회 국가독립전시회에 참석한 보그다노프는 
쉰 셋이 되던 1921년, ?첫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해 라트비아로 이민을 떠납니다. 
?비록 러시아를 떠나왔지만 미국과 캐나다, 코펜하겐, 프라하, 오슬로와 같은 곳에서 
러시아 미술을 소개할 때마다 그는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러시아 미술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그의 충정이었습니다. 
아울러 라트비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한 그에게 라트비아 정부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합니다. 
1944년, 보그다노프는 라트비아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다시 이민을 갑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2차대전도 종반기에 접어 들 때였고 
독일의 러시아 침공으로 동부 전선이 정신 없을 때였는데 
그는 러시아가 아니라 독일로 이민을 갔습니다. 
전쟁의 승자가 혹시 독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볼세비키 세상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었을까요? 
보그다노프는 다음해인 1945년, 일흔 일곱의 나이로 베를린에서 숨을 거둡니다.

 

'미술 > 러시아 회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산더 데비아트킨  (0) 2022.12.23
콘스탄틴 코르빈  (0) 2020.04.18
콘스탄틴 코로빈 - 파리 야경 모음  (0) 2020.04.18
아힙 쿠인지  (0) 2019.11.28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0) 2019.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