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2019. 7. 15. 19:54내 그림/(유화 소재)





엘리자베타 시라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1662년경, 캔버스, 유화, 64.5×49cm

                     

엘리자베타 시라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1662년경, 캔버스, 유화, 64.5×49cm




이 소녀의 초상은 그 유명한 ‘'스탕달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스탕달은 그의 책 『나폴리와 피렌체-밀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1817)에서

“산타크로체 교회를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고 기록했다.


그에게 이런 증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바로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다.

이 그림은 처음에 귀도 레니(1575∼1642)의 작품으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그의 여제자(???) 엘리자베타 시라니(1638∼1665)가 스승의 원작을 모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 1979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정신과 의사 그라치엘라 마게리니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다가 갑자기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 곤란, 우울증, 현기증, 전신마비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를

스탕달의 이름을 따서,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이름 붙였다.



베아트리체 첸치(1577∼1599)는 이탈리아 귀족 프란체스코 첸치가 첫 부인에게서 낳은 딸이었는데, 프란체스코는 베아트리체가 기숙학교에서 돌아오자 성에 가두고 15세부터 강간과 폭행을 일삼았다.

프란체스코는 악행과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로, 그의 폭행과 학대를 견디지 못한 두 번째 부인, 베아트리체의 친오빠 자코모, 이복동생 베르나르도, 두 하인 등은 결국 실족사로 위장해 프란체스코를 살해한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은 곧 밝혀지게 되고 어린 베르나르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사형에 처해진다. 베아트리체는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가족을 보호하려고 진실을 발설하지 않았고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로마 시민들은 그들의 행동이 정당방위라고 호소했지만 교황 클레멘트 Ⅷ세는 첸치 가문의 재산이 탐나서 결국 사형을 집행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베아트리체의 미모는 이탈리아 전체에 유명했기에 참수현장을 목격하려고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그중에 화가 귀도 레니도 있었다고 한다. 사형 전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소녀는 뒤를 돌아보며 애잔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잔혹한 운명을 호소하는 듯하다.

레니의 원작을 모사했지만 원작을 뛰어넘은 제자 시라니의 작품은 아마도 자신의 운명이 투영되어서일 것이다. 26세에 요절한 시라니 또한 술주정꾼 아버지에 의해 레니의 문하생이 되었으며 아버지의 술값을 벌기 위해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소녀의 아름다움은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붓에 의해 폭력과 학대에 대한 순결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진주귀걸이 소녀〉, 〈모나리자〉와 함께 세계 3대 미녀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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