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8. 12:02ㆍ미술/일본화·중국화·기타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고(故) 치바이스(齐白石, 1864∼1957)의 작품이 무려 7백억원이 넘는 가격에 경매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반관영 통신 중국신문망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전널 저녁 8시 중국 경매업체 가디언에서 주최한 '2011 춘계 경매회'가 베이징에서 열린 가운데 이날 거래된 작품 최종 거래가 총액이 무려 10억위안(1천7백억원)을 넘었다. 이 중 최고로 주목받은 작품은 치바이스 작품 통틀어 가장 큰 면적의 작품으로 알려진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으로 경매 참가자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714억5천여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266억여원에 낙찰돼 중국 회화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던 쉬베이훙(徐悲鸿)의 대표작 '파인급수도(巴人汲水图)'를 3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
또한 이날 경매된 치바이스의 또 다른 작품 '화조사병(花鸟四屏)'도 154억4천8백만원에 팔렸으며, 얼마전 深圳서 열린 경매에서도 '군룡입해도(群龙入海图)'가 1억2천만위안(2백억원)에 거래되는 등 뜨거운 인기를 과시했다. 한편 중국 회화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가로 1m, 세로 2.66m의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은 가운데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 잣나무와 함께 ‘영웅’을 상징하는 매가 그려져 있어 소나무와 잣나무가 영웅을 둘러싸고 있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또한 작품 양변에는 전서로 ‘인생장수, 천하태평(人生长寿,天下太平)'가 쓰여져 사람들의 행복과 조국의 평화로운 발전을 기원하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져 있다.
*
*
치바이스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그림이랍니다.
이 양반이 나이 95세에 죽었는데, 80살 넘어서 그린 그림이 오히려 더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장수하는 집안입니다. 조부모 부모 모두 80까지 살더군요.
군룡입하도 502 *229 개인소장
*
*
*
바이스는 후난省 상탄縣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그에게 곡굉이 잡는 법을 가르쳤으나 너무 어리고 힘이 약했기 때문에목공일을 배웠다.
그는 열 두살에 목공일을 하면서도 일감이 없는 밤이면 글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스물 일곱 살이 되어서야 스승을 만나 지도를 받게 된다.
바이스는 서른 살 이후에 점차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는 그림을 계속 배우면서 표구하는 법도 배우고, 시도 짓고 전각도 배웠다.
그의 그림은 우선 세필화를 배우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자연의 여러 모습과 생물의 동태를 이해하고 가늠하여 수묵과 채색으로 표현했다.
'사물의 겉모습만을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겠다'
'사물을 그릴 때 그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형관이나 종파를 들먹이는 것이 싫고, 무조건 임모하는 것도 싫다'
'전대의 대가들의 그림을 세심하게 따라하는 것은 죽은 공부다'
'팔대산이의 냉일함을 닮았다 하나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바이스는 굵은 선이 특기이다.
마치 용과 뱀이 춤추며 날듯 필력이 넘친다.
그러나 팔대산인의 기묘하고 간단한 필치에 담긴 의미심장한 깊이는 따르지 못했다.
그림의 운치로 말한다면 팔대산인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 어려울 듯 싶다.
내가 청화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 바이스 노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문에 들어서자 문에 그림값을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응접실에 들어서자 벽에도 그림 값이 붙어 있었다.
고상해야 할 화가가 어찌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서전을 통해 유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험난한 인생길의 배경을 알고 나니
비로소 반감이 깨끗이 사라진다.
뤄자륜 (중국 사학자)
치바이스(제백석) 작품
<들풀과 메뚜기>
<그림 그리는 석도> 1936 (73세)
<잠자리와 연방> 1945 (85세)
거지도, 1927년(65세때)
"누워도 자리깔지 않고, 먹어도 연기 마시지 아니하니,
호로박 하나 옆에 달면 곧 신선이다."
석양에 돌아가는 소, 1938년(78세때 그림)
<휴식> (1935)
<오뚝이不倒翁> (1953. 93세)
<와취도(蛙趣圖)>
<하도> (1954)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
치황[齊璜]이라고도 한다. 장다첸[張大千]과 더불어 중국 회화의 전통을 계승한 최후의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주로 독학으로 시(詩)·서(書)·화(畵) 3예를 익혀 능통하게 되었다. 죽는 날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베이징 중국회화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대개 커다란 산수화보다 규모가 좀더 작은 일상의 모습으로 다양한 흥미와 경험을 반영하고 있으며, 17, 18세기의 석도(石濤) 팔대산인(八大山人)과 같은 개성주의자들의 양식을 계승했다. 본명은 춘즈(純之)이고, 바이스(白石)은 호이다. 별호로 부평초 노인(萍翁),차산음관의 주인(借山吟館主者),삼백석인부옹 등이 있다. 후난 성 샹탄 현(모택동의 고향이기도 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몸이 약해 농사일을 할 수 없어 조각을 배워 목공일을 하다가, 스승 후친위안(胡沁園)과 왕카이윈(王闿運)을 만나 글공부를 하게 되고 그림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1917년에 베이징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리고 전각을 하며 시를 지었다.
1927년에 국립 베이징 예술 전문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1949년에는 중앙미술학원 명예교수로 초빙되었다.
1953년에 중국미술가협회 주석으로 당선되었으며, 문화부로부터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1963년에 세계평화평의회에서 선정하는 "세계 10대 문화 거장"이 되었다.
'미술 > 일본화·중국화·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리카 미술 (2) (0) | 2011.08.22 |
---|---|
아프리카 미술 (0) | 2011.08.22 |
중국 사실주의화가 - 한우쉔 (0) | 2011.07.27 |
왕몽 - 심주, 곤잔 (0) | 2011.04.29 |
[스크랩] 五代 [산수화] 위현/조간/이성 (0) | 2011.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