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5. 14:42ㆍ미술/ 러시아 회화 &
펌)
고요와 평화를 풍경 속에 - 이삭 일리치 레비탄
2008/07/22 16:28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3889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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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이삭 일리치 레비탄은 20세기가 시작되기 전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 받는 풍경화가였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서정과 철학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들어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볼가강의 저녁 Evening on The Volga)
해가 진 하늘 저편으로는 검은 구름이 머물러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잔광으로 강물은 빛나고 있지만 ‘볼가강의 뱃노래’ 소리는 멎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가 들여야 할 것 같은데 ----, 그의 그림에서는 고요와 적막만이 느껴집니다.
강 둑에 앉아 강 건너 희미한 몇 개의 불 빛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레비탄은 지금의 리투아니아 지방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는 독일어와 불어를 가르쳤고, 나중에는 철교 공사를 하는 프랑스 회사의
통역으로 일을 했다고 하니까, 교육을 받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1살 때 모스크바로 이사를 가서는 형이 2년 전부터 다니고 있던 모스크바 예술학교에 입학합니다.
공부를 잘했는지 물감 한 박스와 그림 붓 두 다스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볼가강에서 On The Volga)
볼가강은 러시아 풍경화가들이 빼놓지 않고 그린 주제였습니다.
러시아를 관통하는 볼가강은 러시아인 들에게 생명이었을 것이고 어머니 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모습입니다.
강변에도 그리고 강물 위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도 인적이 없습니다.
강물은 흐린 하늘과 강을 따라 달리는 검붉은 언덕의 모습을 담고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15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바로 아버지도 병으로 눕고 맙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4명의 자식들을 지킬 수 없었고 레비탄은 극심한 가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친척집이나 친구집에서 잠을 잤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학교의 빈 강의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야경꾼들이 그런 그를 보고는 야경꾼 숙소에서 재우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학교는 그가 보여준 재능과 성취를 감안하여 학비를 면제하여 줍니다.
모스크바 예술학교 ---, 좋은 학교입니다.
(잔잔한 볼가강, The Volga. A Calm Day)
시간이 아침일 수도 있고 저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아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 서 보았던 볼가강의 물결은 멈춘 듯 했는데 여기서는 출렁임이 있습니다.
작은 출렁임이지만 그것은 생명력입니다.
석에 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2년 후 장티푸스로 아내의 뒤를 따릅니다.
그 해 순회전시회 처음 참가했는데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불행은 여기까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가을의 소콜니키 Autumn Day. Sokolniki)
소콜니키는 모스크바 근처에 있는 지역이름입니다.
숲을 크게 돌아 가는 길 위에 한 여인 오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 드물게 표현 된 사람입니다.
생각에 잠긴 듯한 여인은 걷는 것 이외에 아무런 행동도 표정도 없습니다.
숲은 여인을 감싸고 있고 숲 속의 고요함과 함께 어우러진 여인의 영혼은 길을 따라 오고 있습니다.
학생이었던 알렉산더 솔로비에프라는 청년이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산더 2세를 권총으로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일로 인해 러시아 대도시에 사는 모든 유태인들에게 도시 추방령이 내려집니다.
아픈 여동생 데레사와 함께 리비탄은 오스탄키노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미술 애호가들이 관리들에게 압력을 넣어 그를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오게 합니다.
생각해보면 레비탄의 그림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그의 성품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을 풍경 Autumn Landscape)
비슷한 느낌의 풍경과 구도이지만 정적인 느낌보다는 긴장감이 더 강합니다.
그림을 크게 해서 보면 관객을 향한 개의 자세나 눈은 사뭇 도전적입니다.
얼마 전 내린 눈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늦가을, 사냥꾼은 무엇을 찾는 것일까요?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그는 미술, 조각, 건축을 전공하는 각 방면의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니콜라이 체홉이라는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동생이 소설가였던 안톤 체홉 이었습니다.
‘레비탄 , 평생의 친구를 만나다!’ 역사 신문이 있다면 당시의 헤드라인을 차지했을 제목입니다.
(
고요 Silence)
구름이 꽉 찬 하늘 사이로 달 빛이 걸려 있습니다.
강물에도 달이 떠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그리 어둡지 않습니다.
모래와 강 둑은 조명을 받은 듯이 빛나고 있는데,
그러나 모든 것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평온함이 화면 가득합니다.
레비탄의 그림이 주목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소위 ‘무드 풍경화’ 라는 독특한 장르에서
그의 작품이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시와 음악을 좋아했고 야외에서의 작업을 늘 고집했던 그는,
자연을 향한 그의 감성을 그림 속에 녹여 넣었습니다.
그는 안톤 체홉의 집에 자주 놀러 갔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은 그가 체홉의 여동생 마리아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가 가족도 아이도 없이 세상을 떠난 것을 보면 괜한 소리 같기도 합니다.
(블라드미르카 길 Vladmirka Road)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헤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장벽으로 만드는 것도 길입니다.
지평선 너머 사리지는 길의 끝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러나 이 길은 시베리아 유형지로 가는 길입니다.
(영원한 평화 위에 Above the Eternal Peace)
화면 정면에 거대한 회색 구름 덩어리가 솟아 있습니다.
언덕 밑의 강물을 보면 얼마 전 까지 많은 비가 내린 듯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세상은 회색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풍경은 갓 씻어낸 과일처럼 맑기만 합니다.
그리고 검은 구름 뒤의 높은 하늘은 곧 날이 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넓은 지평선과 구름 그리고 거대한 물 줄기 ----- ,
레비탄은 이 그림을 통해서 혹시 이렇게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지 알고 있니? 자연 앞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무상한지 알고 있니?’
(고요함이 머무는 곳, A Calm Place)
조그만 개울을 지나 길이 성당으로 이어져있습니다.
다리를 가운데 두고 성당이 있는 곳과 내가 서 있는 곳이 나뉘어 있습니다.
다리는 세상과 나를 연결하고, 자연과 나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단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도시를 그리지 않았던 레비탄의 자연에 대한 태도가 그림에 표현된 것이죠.
(강을 가로질러 Across the River)
강을 건너 숲 속으로 뻗어 있는 길을 다리가 연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시절 돈이 없어 학비가 면제되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레비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역으로 달려가 승객들을 태운 기차가 출발하기 전 기차를 스케치하고는 했습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가난한 지금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기차에 실었던 것은 아닐까요?
다리 건너 숲에는 그때 실어 보냈던 환상과 마음의 고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3월 March)
긴 겨울이 끝나가는 3월이지만 눈은 사방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햇빛이 맑고 투명해서 겨울의 무거움이 없습니다.
자연주의적인 화풍을 유지하던 레비탄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는 인상주의적인 화풍을 쓰기 시작했고
주제도 달빛이 비치는 풍경, 여명, 고요한 마을의 모습 등을 즐겨 소재로 다뤘습니다.
(햇빛 좋은 날 Sunny Day)
흰 허리를 드러낸 자작나무 아래 닭 몇 마리가 있는 아주 평범한 풍경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추방당해 오스탄키노에 거주할 때
레비탄은 집이나 공원의 허름한 부분들을 포함한 소박한 전원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그가 가장 좋아했던 대상은 시가 있는 숲과 평온한 시골 모습이었습니다.
(달빛 비치는 마을, Moonlit Night. A Village)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 그는 심각한 심장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그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졸업한 모스크바 예술학교에서 죽는 순간까지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말년을 평생 친구였던 체홉의 집에서 지냈는데 심한 감기와 열을 앓다가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운명하기 전 동생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편지를 모두 태워버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림 외에는 남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수련 Water Lilies)
가장 사랑 받고 가장 존경 받았던 그의 명성에 비하면 그의 일생은 너무 짧았습니다.
안톤 체홉은 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고 합니다.
그가 자연에 대해 가졌던 행복한 감정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라고 했던 레비탄이었습니다.
(호수 The Lake )
[출처] 고요와 평화를 풍경 속에 - 이삭 일리치 레비탄|작성자 레스까페
Isaac Levitan
1860 - 1900
6월의 날들
1890 캔버스에 유채 43,5x61 cm
호수 ( 트베리 근교)
1893 캔버스에 유채. 109x163 cm
이탈리아의 봄
1890 캔버스에 유채 19,5x32,5cm
풍경
1883 캔버스에 유채 42,5x74 cm
목초지의 시골집
1880 카드보드에 유채 42x31 cm
작은 강기슭
1888 카드보드에 유채 22,6x32,4 cm
자작나무 숲
1885-1889 캔버스에 유채 28,5x50 cm
활짝 꽃핀 사과나무
1896 캔버스에 유채, 펜 36x48 cm
볼가강 (1889) 35x57cm
볼가강에서 (1887-1888)
코모 호수 (1894) 캔버스에 유채 96x128cm
유럽여행중 그린 작품. 코모호수의 풍경
흐린날의 호수 (1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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