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는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걸작이자 스페인 황금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라스 메니나스’는 ‘명예로운 시녀들’이란 뜻이며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의 화실을 방문한 펠리페 4세의 딸인 5 살 마르가리타와 시녀들을 그린 초상화이다. 이 작품은 그림 자체가 마치 거대한 거울과도 같다. 화면 중심부에 마르가리타 공주가 초상화의 모델 자세를 취하고 있고 두 시녀가 공주를 보좌하고 있다. 그 옆에 거대한 캔버스를 앞에 둔 화가 벨라스케스가 팔레트를 들고 서 있으며, 전경에는 큰 개와 궁정 난장이들이 서있다. 그림이 가득 걸린 어둑한 벽 뒤로 빛이 환한 출구에 한 남자가 서있다.
벨라스케스는 이 걸작을 제작하기에 앞서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를 재현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귀여운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공주의 지위, 합스부르그 왕가의 권력을 나타내야만 했다. 왕가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서 겸손하게 복종하는 시녀들과 스페인 궁정의 관례로서 난장이 광대를 배치하고 그들의 충실성을 나타내기 위해 개를 크게 그려 넣었다. 이런 장치를 통해 상징적 함의를 심은 한편 자연스러움을 살렸을 것이다. 어린 공주의 사랑스러움은 어떻게 표현할까? 아이를 그리기 위해 벨라스케스는 부모의 시선을 택한다. 벨라스케스는 시녀, 광대들과 놀이하는 아이를 방문한 부모의 입장에서 공주를 바라보기를 택한다. 국왕 부부는 자신의 위엄으로 화가의 작업을 중단시키며 방해하지 않을 만큼 자애롭다. 그들은 멀리서 이들을 살짝 바라보는 것을 택하고, 그러한 모습이 저 멀리 거울에 비친다.
거대한 거울과도 같은 그림 – 거울 속 거울, 시선의 뒤엉킴

[라스 메니나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거울과도 같다. 화가는 왼편의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서 어린 공주를 그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통상의 그림이라면 화면 밖에 위치해 있어야 할 화가가(화면 안에는 사실상 부재할 수밖에 없는 인물) ‘그림’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거울에 나란히 놓여 반영되고 있다. 이를테면 그림 자체가 거대한 거울인 셈인데, 주목할만한 점은 이 거울 안에 또 하나의 거울이 있다는 점이다. 대각선의 중심부에서 약간 비켜난 곳, 마르가리타 공주 뒤편의 거울 안에 희미하게 반영되고 있는 왕과 왕비는 옆에 걸린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벽에 걸어둔 초상화와도 같다. 벨라스케스는 캔버스 앞에 서있는 자기 자신을 산티아고 기사단복인 붉은 십자가의 상의를 착의한 모습으로 그린다. 그러나 그의 기사단 임명이 1659년이므로 십자가는 나중에 덧붙였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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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는 시각과 회화 그리고 화가의 재현 과정에 대한 통찰이 들어있다. 즉, 이 그림은 화가의 재현(표상, representation)과정 자체를 드러낸다. 이는 바로크 양식의 가장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간주되는 ‘유한 속의 무한’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유사한 다른 문예작품을 비교해보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림 속의 거울 구조를 가진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외에도 에스헤르의 그림, 거울을 배경으로 서서 그 안에서 무한반복되는 철학자 들뢰즈의 사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과 같은 보르헤스의 소설을 들 수 있다. 그림 안의 거울 속(그림 속 그림) 펠리페 4세 국왕 부부는 공주의 초상화를 그릴 때 이 자리에 참석했을 것이다. 국왕 부부의 위치로 볼 때 그들은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그림틀의 왼편(정중앙 관람자의 위치)에 서있었음직 하다. 그렇다면 그림 속 벨라스케스가 그림 안으로부터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을 향한 시선, 그림 바깥을 향한 시선을 통해 보고 있는 것, 초상화 작업을 하고 있는 대상은 마르가리타 공주가 아니라 화면 앞의 국왕 부부다.
국왕 부부는 (그려진) 화가가 존재하고 있는 평면의 그림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미하게 비치는 거울 반영의 형태로 ‘이미’ 그림 안에 들어와 있다. 그림 속의 공간은 국왕 부부를 거울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부재하는 관람자(관객의 위치)까지도 ‘현존하는(현시되는) 부재’로서 포괄하고 있다. 마치 뫼비우스 띠를 가운데를 잘라 펼친 것처럼 화가와 모델(주체와 대상)은 그림 속 그림, 거울 속 거울이 되어 동일한 화면 안에 나란히 놓이게 된다.
자신을 보는 또 다른 나, 그림 속의 그림

‘자신을 보는 또다른 분신적 나 double’, ‘대상이자 주체’ 혹은 ‘그림 속 그림’으로 이중화되어 있는 자기 참조적 self-referent 관찰 방식의 출현은 근대 문예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쉬운 예로 19세기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를 들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모더니즘적 시선인데 이미 17세기에 벨라스케스는 이와 같은 자기 관찰적인 이중 프레임 구성, 그림 속의 그림을 시도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힐란데라스: 실잣는 여인들],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 역시 이중 프레임을 보여준다. | |
벨라스케스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 약 1620 캔버스에 유화, 60x103.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벨라스케스 [라스 힐란데라스: 실잣는 여인들] 1657 캔버스에 유채,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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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은 단순한 현상 묘사로부터 한 등급 더 나간 심층적 현실을 다룬다. 이것은 메타 층위에 속하는 관찰자를 상정하는데 이는 ‘자기를 관찰하는 시선 looking’으로서 바로크 미술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 미술의 중요한 특징 이기도 하기에 쉽게 해명되지 않는 의문을 제기한다. 자기 자신을 뒤에서 바라보듯 객관적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초월적 자기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벨라스케스는 바로크 양식 안에서 미래 모더니즘 미술의 맹아를 [라스 메니나스]를 통해 선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라스 메니나스]는 시대적 제한성을 이같은 장치를 통해 뛰어 넘은 것이다.
그림 속의 장면은 국왕 부부가 바라보는 장면

[라스 메니나스]에서 왕과 왕비의 위치는 대단히 파격적이다. 왜냐하면 전형적 군주 초상화에서 통치자는 반드시 우월하고 초월적인 요소를 지닌 인물로 그려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왕, 왕비의 초상화에는 개인적 특성을 뛰어넘고 육체의 이상화를 통해 초-개인적 아우라가 부여되어야만 했다. 예컨대 벨라스케스의 왕실 초상화 작업인 [펠리페 4세] 및 [성장한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 역시 합스부르그 왕족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펠리페 4세], [성장한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반듯하고 위엄있는 자세로 선 포즈 외에도 약간 긴 듯한 코, 기민함을 보여주는 날렵한 얼굴 윤곽, 섬세하나 다소 큰 다문 입 등 실제 요소와 닮게 묘사되었고 위엄있게 정형화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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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벨라스케스 [펠리페 4세의 초상] 1644
캔버스에 유화, 133.5x95cm, 뉴욕 프릭 콜렉션
2 벨라스케스 [성장한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 약 1659 캔버스에 유화, 128,5x100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라스 메니나스]에서 국왕 부부를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희미한 존재인 유령적 반영으로 취급하고 있다. 국왕 부처보다는 화면 전경에 궁정 광대인 난장이 여인과 개를 크게 그림으로써 초상화 전통에 있어 파격을 만들고 있다. 펠리페 4세 국왕 부부는 희미한 거울 반영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이 화가가 다루고 있는 실제 모델 위치, 관람자(바로 독자 여러분) 위치 place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왕의 위치는 권력의 구조와 작동방식을 드러내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그림의 관람자와 국왕 부부는 부재하거나 희미한 거울반영으로 처리되어 있으나, 이들의 ‘군주적 시선’은 전체 그림 자체를 성립시키는 시선이다. 왜냐하면 [라스 메니나스]는 국왕 부부가 바라보는 장면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라스 메니나스]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시선, 무엇이 누구에게 그려지고 있는지,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 등 화가의 관찰과 재현 과정 자체에 대해 되묻게 한다.
바라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의 뒤바뀜 – 시선의 논리게임

이것은 당시까지의 절대군주 혹은 왕가의 초상화, 초상적 닮음과 이상화라는 직접적 요소에 호소하는 권력의 체현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의 근대적 권력 작동 방식에 대한 언급이다. 화가는 관람자를 왕의 자리에 놓는다. 우리는 왕의 시선으로 화가와 어린 공주가 포함된 이 장면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거꾸로 이 작품은 국왕 부부의 초상이기도 하다. 즉 벨라스케스는 초상화 기법으로 그들의 외모를 묘사하는 대신,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나타낸 셈이다. 국왕 부부는 이 장면 안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 장면을 보는 자이자 동시에 거울 안에 희미하게 반영된 유령적 모델이다 벨라스케스는 (존재하지 않는) 바라보는 자를 그리는 가운데 시선 자체의 작동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주체는 대상이 되고, 대상은 주체가 되며 서로 교호하는 시선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 |
이것은 일종의 논리적 게임이다. 화면의 중심은 어린 공주이기에 화가는 어린 공주를 그리고 있고 국왕 부부는 잠시 방문한 듯 하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반영으로 보건대 그림 속 화가가 그리고 있는 것은 거울에 비친 국왕 부부(관람자와 같은 위치)이다. 관람자 위치에 있는 것은 공주인가, 화가인가, 국왕 부부인가? 그림 속에서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 공주, 화가, 왕과 왕비, 화가 등은 각각 화가(= 관람자)의 시선이 향하는 대상(= 모델)의 자리를 차례로 점유하게 된다. 마치 도미노 놀이나 형광등의 깜박임과도 같이 순차적으로 빈 공간을 메우는 식으로 작동하며 연쇄적으로 자리바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가가 그리고 있는 것은 초상화처럼 단순히 외모의 ‘닮음 resemblance’이 아니라 재현(re-presentation) 자체의 내적 논리이자 시선 자체이다. 재현이란 한번 존재했던(따라서 이미 지나간)것을 다시-불러 세워(re) 현현(presentation)시킨다는 의미이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이러한 대상에 대한 재현의 관계, 시선의 작동방식을 보여준다. 공주든 화가든 국왕 부부든 관람자든 시선이 향하는 자리에 항상 누군가가 있으나 실제로는 어느 누구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관람자가 누구든 그림 안에서 관람자는 실제로 ‘부재’한다. 이렇게 [라스 메니나스]는 외관의 닮음 너머로 그림이 그림으로, 시선이 시선으로, 권력이 권력으로 작동하게 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표상의 표상 representation of representation’을 보인다는 점에서 진정한 바로크 회화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라스 메니나스]는 권력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모델 쪽에도, 바라보는 자의 편에도 흩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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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 돈 후안 카발레즈, 칼라바실라스] 1637~1639 캔버스에 유화, 106 x 83 cm, 프라도 미술관 | |
희미하지만 확고부동한 국왕의 존재는 권력의 자리를 나타낸다. 그러나 정작 국왕이 상징하는 권력은 그림 속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보는 권력적 시선이기도,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바라보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왕 부부 위치는 대상(= 모델)이자 동시에 그림 밖 관람자 자리(= 바라보는 주체)를 점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권력은 대상을 보고 관찰하는 주체 측에 놓이며 그 자체가 대상이 되는 동시에 비어있는 것이고, 구조적 성격을 지니는 장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 |
거울 속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의 해석에 가장 주요한 참조점으로 언급되는 다른 작품은 북구 르네상스 화가인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도 그림 안에 다른 거울을 둠으로써 표면과 대비되는 깊은 공간감을 드러내고 있다. 화면 중앙에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조반나 첸니가 손을 맞잡고 서있다. 이는 고대 관례상 부부의 서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혼인 서약을 하는 모습의 아르놀피니 부부는 방 안에 서있는데 가구들을 통해 그들이 상당히 부유함을 알 수 있다. 화면 중앙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오른편에는 육중한 커텐이 드리워진 붉은 침대가 있고 방 뒤편에는 원형 거울이 걸려 있는데 이 거울의 테두리는 일련의 그리스도 수난 장면이다. 거울 안에는 증인으로서 ‘반 에이크 이곳에 왔다 가다, 1434’라는 화가의 서명이 있다. 그 옆으로 로사리오 묵주가 벽에 걸려 있고, 아래로는 붉은 쿠션과 벗어놓은 슬리퍼가 보인다. 화면 앞 전경에는 충실성을 상징하는 개가 보인다. 거울 속에는 서약하고 있는 부부의 뒷모습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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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패널에 유채, 82.2x60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 GNC media,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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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뒷편의 거울과 거울 속의 공간 |
그림 속 그림인 거울은 그들이 서있는 공간적 깊이 전체를 포괄한다. 마치 바라보는 눈 안에 그 눈이 바라보는 지평이 전부 담기듯이 자그마한 거울 안에는 서약하고 있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뒷모습과 방 전체가 깊이로서 들어있기 때문이다. 반 에이크는 화가이자 일종의 결혼을 증명하는 공증인격으로 참석하고 있다. 신성한 결혼 서약을 증거하는 것은 마치 결혼식 공증인처럼 참석한 화가의 서명이다.
그림 속의 공간적 깊이는 평면에 놓인 환영일 뿐

고대 이래 서구 사상에 있어 기억이란 정신의 밀납 평판에 찍히거나 새겨진 inscribed된 지울 수 없는 흔적인 인장과도 같다고 간주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작품에 자필 서명 autograph으로 날인하듯이 서명은 새겨진 흔적의 상징과도 같았다. 거울 옆에 쓰여진 화가의 서명과 거울 속 깊은 공간은 동일한 평면(그림 표면) 위에 존재한다. 이것은 방의 깊이가 물감으로 입혀진 하나의 그림 표면 위에 동시에 존재하게 됨을 말해준다. 서명은 결혼 서약을 공증하는 동시에, 공간적 깊이가 표면 위에 그려진 상(傷)에 지나지 않는 환영이라는 점을 증언한다. 즉 [아르놀피니의 결혼]과 [라스 메니나스]는 일종의 표면-심층 구조를 공유한다. 두 그림 다 사실성과 공간적 깊이가 어디까지나 하나의 평면에 놓인 환영이라는 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벨라스케스 시대에 스페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문화의 헤게모니 반경 안에 놓여 있었다. 벨라스케스 역시 이탈리아적 영향을 흠뻑 받아 들였으나 그의 체류기간은 동시대 다른 화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다. 당시 마드리드 왕궁에는 이탈리아 및 플랑드르 거장들의 콜렉션이 형성되어 있었고 벨라스케스는 그것을 최대한 누렸다. 특히 마찬가지로 스페인 휘하 플랑드르(오늘날 벨기에) 지역의 합스부르그 궁정화가였던 루벤스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루벤스의 화려한 색채감과 호방하고 유려한 감각적 붓놀림은 젊은 시절 벨라스케스의 작업의 귀감이 되었고 이 모든 것이 벨라스케스의 화풍을 완성, 스페인적 향취가 풍기는 예술로 만들어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양식은 이탈리아 미술의 직접 모방이 아니라 선별하여 받아들이고 스페인적 토양에 적합한 것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보다 화가 자신의 인문학적 품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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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최정은 / 미술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에서 회화 및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대한 책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 [동물, 괴물지, 엠블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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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가 "벨라스케스 인척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쿠르베의 말처럼 벨라스케스는 17세기 스페인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서,
세계 천재 화가 대열에서 항상 상위를 차지하는 위대한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화가는 몇 번의 이탈리아 여행으로16세기 베테치아 회화를 연구하면서 자연주의 양식으로 인물과 정물작품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시각적 인상을 강조함으로 인해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주요 선구자가 되었다.

The Waterseller of Seville, 1619
런던 웰링턴 박물관
얼핏보면 카라밧지오(1573~1610)의 그림을 보는 듯한 뚜렷한 명암대비에 의한 테너브리즘(Tenebrism)의 극적인 명암법으로 화면에 빠져들게 한다. 그가 위 그림을 그린 것은 20세도 되기 전이었는데, 이 그림에 나타난 구도와 색채, 명암의 조절과 인물 묘사의 자연스로움, 사실적인 정물 묘사는 이미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뛰어난 붓놀림을 보여주고 있다.

The Lunch
1617. Oil on canvas, 108 x 102 cm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Old Woman Frying Eggs, 1618
National Gallery, Edinburgh
벨라스케스의 초기 주제들은 주로 종교적이거나 풍속적(일상생활의 장면들)이었다. 그는 스페인의 회화에서 '보데곤'(bodeg?n:17세기 스페인의 정물화 양식, 또는 보테고네스 Bodegones)이라는 새로운 구성 양식을 널리 퍼뜨렸는데, 그 대표적 작품으로는 정물이 있는 부엌 장면을 그린 위 작품이다. 그의 극도로 자유로운 양식은 후일 수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17세기 위대한 천재로서 영감을 주게 된다.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618
National Gallery, London

The Feast of Bacchus. 1629
당시 신화를 주제로 다룬 화가들이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경건한 분위기를 추구했던 것과 달리, 벨라스케스는 직설적이고 단순하며 약간은 딱딱해 보이는 사실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초기작으로 작품이 완성된 시기는 그가 1628년 마드리드에서 루벤스를 만나 함께 이태리를 여행하던 때 쯤이다. 어쨋든 이 작품은 주신인 바쿠스를 신적인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하층민에 속한 인물처럼 묘사하고 있다. 쾌활한 주정뱅이들의 모습이 카라바조의 작품을 연상시키며 일상의 인물들이 등장한 것 같은 장면은 플랑드르의 장르화를 연상시키고 있다.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벨라스케스는 세비야 Seville에서 태어나 화가인 프란시스코 에레라(1576경~1656)에게 미술수업을 받았다.
1611년 그는 공식적으로 프란시스코 파체코의 도제가 되었으며 1618년에 그의 딸과 혼인했다. 파체코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5년 동안 그에게 교육과 수련을 시킨 뒤 그의 미덕과 성실성, 훌륭한 자질에 감동받아 그의 기질과 뛰어난 재능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를 나의 딸과 혼인시켰다."

Don Luis de Gongora y Argote
1622, 캔버스에 유채
MOA Museum of Art, Japan
세상에 많은 종류의 초상화가 있지만 이 그림처럼 강한 인상을 남기는 초상화는 더물듯 하다. 벨라스케스는1622년 마드리드 여행을 하던 중 파첸코의 부탁으로 펠리페 3세의 전속 신부이자 시인이었던 이 사람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그림을 본 필리페 4세(16살 나이로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됨) 그를 불러들여서 궁중화가로 임명하게 된다.

Philip IV in Brown and Silver
1631-32. Oil on canvas, 200 x 113 cm
National Gallery, London
1623년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되어, 평생 왕의 예우를 받았으며 나중에는 궁정의 요직까지 맡았다.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가 아니면 절대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하게할정도로 그를 사랑했다. 그가 그린 왕족, 신하 그리고 광대들의 초상화는 그를 미술 역사상 최고의 초상 화가로 만들어 준다.

Queen Isabel, Standing
1631-32. Oil on canvas, 207 x 119 cm
Private collection
1628년의 첫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베네치아파의 영향으로, 밝고 선명한 색조와 경묘한 필치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왕족·신하 그리고 궁정의 어릿광대·난쟁이 등을 그린 다수의 초상화는, 그를 미술사상 초상화가의 대가로 만들었다.

The Surrender of Breda (Las Lanzas)
1634-35. Oil on canvas, 307 x 367 cm
Museo del Prado, Madrid
<브레다의 항복 The Surrender of Breda〉은 부엔레티로 궁전의 알현실을 장식하기 위해 일련의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여 그려진 유명한 그림으로, 역사적인 주제를 다룬 그의 그림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의 정교한 구도는 루벤스의 회화 양식에 기초를 두었지만, 그는 세부의 정확한 정밀 묘사와 주요인물들의 살아 있는 듯한 묘사를 통해 생생한 실재감을 전달하고 있다. 그 후 두 번째 이탈리아에 체류(1649∼1651)하는 동안 장기간 연찬을 거듭하여 기법상의 혁신이 완성되었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이 시기에 그의 생애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다시 초상화가로서 중요한 직무를 맡았으며, 때때로 왕의 방들을 신화적인 주제의 그림들로 장식하도록 의뢰받았다. 그 이후 그의 종교적인 작품들은 대단히 훌륭하고 독특한 성향을 띠고 있다.

Portrait of Innocent X
1650. Oil on canvas, 141 x 119 cm
Galleria Doria-Pamphilj, Rome
벨라스케스는 1640년대 후반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과 단 한 점뿐인 여성누드 <거울 앞에 선 비너스>를 그렸다.

Venus at Her Mirror (The Rokeby Venus) 거울속의 비너스
1644~48년경, 캔버스에 유채, 122 .5 x 177cm
National Gallery, London
모나리자 만큼 유명한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벨라스케스는 로마에 체류하고 있던 중 당시 20살이었던 정부 플라미니아 트리바에게 실제로 관능적인 포즈를 요구했다. 플라미니아 트리바는 로마의 상류층 여인으로 벨라스케스의 아이를 낳기도 했던 여인이다. 이 작품은 관능성으로 인해 1914년 한 여권 운동가에 의해 난도질 당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그림은 처음에 에스파냐 국무대신의 아들인' 카르피오'를 위해 그려졌다고 한다. 운좋게도 이 비너스는 벨라스케스의 누드 그림 가운데 유일하게 불타버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철저한 카톨릭 국가인 에스파냐에서 이교도의 신을 그것도 나체로 그린다는 것은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이었다. 당시 나체화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화가를 1년간 유배형에 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왕이 이 그림을 너무나 사랑했던 탓인지 어쨌든 이 비너스는 그 무시무시한 종교재판을 무사히 피해 오늘날 우리 눈앞에 아름다운 자신의 뒷모습을 뽐내고 있다.

Infanta Mar?a Teresa
1651-52
Oil on canvas, 34,3 x 40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Menippus
1639-41. Oil on canvas, 179 x 94 cm
Museo del Prado, Madrid
벨라스케스가 초상화의 대가로 칭송받는 이유는 그가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내면의 심리상태, 성격 등을 그림 속에 고스란히 반영했다는데에 있다.

Mars, God of War
1640. Oil on canvas, 179 x 95 cm
Museo del Prado, Madrid

Arachne
1644-48. Oil on canvas, 64 x 58 cm
Meadows Museum, Dallas

The Needlewoman
1640. Oil on canvas, 74 x 6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Juan de Pareja 1650
후안드 빠레야라는 이 그림속의 남자는 벨라스케스의 노예였다. 그는 또한 재능있는 화가였고 곧 벨라스케스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둘은 신분과 나이와 지위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았고 결국 후안은 노예에서 해방, 화가의 길을 걷게된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인상주의를 예고한 화가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네의 작품이 연상된다.

Self-Portrait
1640. Oil on canvas, 46 x 38 cm
Museo de Bellas Artes, Valencia
디에고 로드리게스 벨라스케스는 독특하게 시각적 인상을 강조하면서 화려하고 다양한 붓놀림과 미묘한 색의 조화를 이용하여 형태, 질감, 공간, 빛, 분위기의 효과를 내는 데 성공한 화가이다. 그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힘과 직관, 그리고 뛰어난 기법은 마네와 들라크루아, 피카소와 베이컨 등 후대 화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페인의 화페 50 pesetas 속의 벨라스케스
◎參考文獻 및 site
서양 미술사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00장면/가람기획/ 최승규
http://event.lg.co.kr/h_lg/tosee/3d/gong/g02.html
http://gallery.xy.co.kr/artist/foart/baroque/velazquez/ve_art.htm
http://artworld.co.kr/art/17th/vel.htm
http://my.netian.com/~vnl1873/velazquez.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