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양화

에두아르 뷔아르

알래스카 Ⅱ 2020. 2. 3. 20:45





에두아르 뷔야르 Edouard Vuillard(1868-1940)

 


[식사후]After the Meal.
c. 1900. Oil on board. 28 x 36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Sleep.
c. 1891. 33 x 64.5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In Bed/Au lit.
1891. Oil on canvas. 74 x 92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에두아르 뷔야르


프랑스 화가 뷔야르는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바느질로 생활하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1888년 아카데미 쥘리앙에 들어가 삐에르 보나르를 알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나비파(派)(Nabis, 히브리어로 '예언자'란 뜻)의 일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인상파의 영향을 벗어나 고갱의 화풍을 따랐으며, 그의 그림은 형태의 단순화와 색면(色面)의 장식적 배합을 지향하였습니다.
작품은 어머니와 자식의 정경(情景)이나 실내의 정물과 같은 신변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았으며, 깊이 있는 배색과 애정 깊은 터치는 앵티미슴(Intimism)의 대표적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임의적인 분할, 대담한 생략, 넓게 칠한 단색, 검은 테두리, 원근감을 버리고 얻은 이분법적 화폭의 장식성, 채색의 섬세함 등이 특징입니다. 동시에 고갱의 구획주의와 종합주의에서 받은 영향이 드러나기도 하며, 삐에르 보나르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취향 역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비파

19세기 말 팽배해진 물질주의에 대해 한계를 느낀 예술가들은 내적 탐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모색하고자 애썼다. 그러던 중 표현의 단순화를 통해 그 속에 영혼성을 부여하고, 미술에 새로운 보편성을 부여하자는 생각으로 함께 모인 화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인간 정서를 중심으로 죽음, 성, 신비주의, 악마주의 등 종교적인 주제나 초자연적 존재를 주요 모티브로 다루었다. 후반기에는 일상적인 삶의 주제까지도 폭넓게 다루었다.

또한 회화 중심의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조각, 무대 연출, 출판물, 공예, 의상, 포스터 등 실생활과 접하게 되는 응용 분야까지 그 표현 범위를 확장시킴으로서 대중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비실제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나비파는 모티브를 단순화시키고, 굵은 윤곽선을 강조하는 장식적 기법을 차용했다. 이로 인해 패턴화된 평면 형태와 대담한 장식 문양의 긴장감을 특징으로 하는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여기서 클로아종(Cloison)은 '구분'이란 뜻으로,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색의 경계를 뜻하는 용어에서 유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건너온 판화도 나비파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일본 판화의 비대칭적 균형과 장식 문양과 같은 도안, 색면의 순수색 처리 기법 등이 나비파의 구성 공간에 수용되었다. 당시 문예 잡지인 『르뷔 브랑슈』를 중심으로 파리에서 모임을 가졌던 나비파의 대표적인 작가들은 보나르, 드니, 마이욜, 랑송, 세루지에, 뷔야르 등이다.

모리스 드니는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특별한 질서 속에서 여러 빛깔로 덮인 평면이다' 라는 성명을 통해 나비파의 중심 사상을 강조하였다. 모로는 그의 작품 <출현>에서 성서에 나오는 살로메를 요부(Femme Fatal) 상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처리하였다. 르동은 <죽음>에서 초자연적인 형상의 기괴함을 선보였으며, 일본풍에 매료되었던 작가 보나르는 석판화 <평행으로>에서 일본 미술에서 볼 수 있는 평면적인 색채의 강렬한 느낌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신비적, 세기말적 우울함의 표출, 개인 내면의 상징은 새로운 시대사상을 개성 있게 반영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표현 양식에 있어서도 자연 외형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존의 원근법적 리얼리즘을 배제하였다. 상징적 이념은 2차원 평면으로 표현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비파가 이루어낸 인간의 내적 탐구와 관념의 표출과 평면적 효과에 대한 재발견 등 새로운 시도들은 아르 누보, 20세기의 다다, 초현실주의 등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했던 실험 분야에 영감을 제공하였다.






                         The Artist's Paint Box and Moss Roses, 1898, oil on cardboard, 36.1 x 42.9 cm , National Gallery of Art




                                Child Wearing a Red Scarf, c. 1891, oil on cardboard, 29.2 x 17.5 cm, National Gallery of Art





                            Landscape of the Ile-de-France, c. 1894, oil on cardboard, 19.7 x 25.3 cm, National Gallery of Art




                    Vase of Flowers on a Mantelpiece, c. 1900, oil on cardboard, 36.2 x 29.5 cm, National Gallery of Art




                                        The Yellow Curtain, c. 1893, oil on canvas, 34.7 x 38.7 cm, National Gallery of Art




                                   Madame Bonnard, 1895/1900, oil on cardboard, 41.7 x 31.9 cm, National Gallery of Art 

                                   http://egloos.zum.com/hanulh/v/1917717





            <Two Seamstresses in the Workroom>(1893)





                   <Interior with pink doorway>(1899). Photograph: © The British Museum, London





                                        <Workroom>(1893




         Interior, Mother and Sister of the Artist>(1893)

          https://www.indiepost.co.kr/post/9486








 

 

 

 

 

 

 

 

 

에두아르 뷔야르는 1895년 이후 자주 실내 풍경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이공간에서 특히 바느질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집안일에 열중하고 있는 친구들 혹은 어머니의 모습을 즐겨 표현했다.

 

그의 어머니는 직물 디자이너 가문 태생으로 코르셋을 제작하는 작업실을 운영 했다. 그곳의 분위기를 좋아했던 뷔야르는 작업실에 가득한 갖가지 리본이나 원단,벽지.식탁보,옷의 디자인 등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실제로 이러한 재료들을 중요한 모티프로 해서 작업했다.

 

또한 그는 여기에 나비파가 선호하던 일본식 판화 기법과 기모노에서 따온 장식을 추가하기도 했다..일본식 회화 기법을 선호했던 그는 화면 구성에서도 비대칭을 많이 사용하는 등 일본식  기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뷔야르는 이 작품에서 인물을 화면의 중심에 두지 않고 주변 장식과 함께 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소재로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장식적인 느낌이 나도록 구성했는데 이러한 점은 섬세하지만 바랜 듯한 색조와 답답해 보일수 있는 폐쇄된 공간에 차분하고 고요한 일상의 시적 분위기를 부여해준다.

 

-오르세 미술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