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갈대는 조용히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현대시 100년

알래스카 Ⅱ 2019. 5. 5. 17:37

 

 

 

 

내가 이 책을 2014년 11월 28일에 사놓고서 안 읽었던 묑이여~

책장 넘긴 티가 안 나네? 완전 신삥인디?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문학예술>(1956) -

 

 

 

 

 

 

저자 신경림 / 2007. 9. 5
1935년도에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다. 동국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문학예술』에 시 <낮달>, <갈대>, 등이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1956년)하였다. 등단 직후부터 몇 년동안은 창작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1965년부터 창작 활동을 재개하면서 민요기행을 통해 민중적 정서를 되살리는 등 우리 시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농무』, 『새재』, 『길』, 『쓰러진 자의 꿈』, 등과 장시집 『남한강』, 등이 있으며, 평론집 『문학과 민중』,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산문집 『바람의 풍경』,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1974년), 한국문학작가상(1981년), 이산문학상(1990년), 단재문학상(1994년), 등을 수상하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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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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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복종 - 한용운
진달래꽃 - 김소월
송별 - 이병기
향수 - 정지용


깃발을 내리자 - 임화
눈 내리는 보성의 밤 - 이찬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산수도 - 신석정


그리움 - 유치환
청포도 - 이육사
북방의 길 - 오장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북쪽 - 이용악


장날 - 노천명
자화상 - 서정주
설야 - 김광균
풍장 - 이한직
이별가 - 박목월


해 - 박두진
고시2 - 조지훈
서시 - 윤동주
나막신 - 이병철
보리피리 - 한하운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묵을 갈다가 - 김상옥
풀 - 김수영
꽃 - 김춘수
목마와 숙녀 - 박인환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장미 - 송욱
강강술래 - 이동주
낙화 - 이형기
생명 - 김남조


귀천 - 천상병
묵화 - 김종삼
자하문밖 - 김관식
성탄제 - 김종길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휴전선 - 박봉우
무우 - 박성룡
저녁눈 - 박용래
갈대 - 신경림
내 노동으로 - 신동문


문의 마을에 가서 - 고은
답십리 하나 - 민영
진달래 산천 - 신동엽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2부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정신과 병동 - 마종기
여물어 벙그는 알밥처럼 - 정진규
유랑악사 - 이근배
- 이성부
긴 봄날 - 허영자


오래된 골목 - 천양희
한국의 아이 - 황명걸
노을 - 조태일
저녁 바다와 아침 바다 - 최하림
파랗게, 땅 전체를 - 정현종


항토에 내리는 비 - 이가림
구미호 - 유안진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 노향림
아버지의 빛5 - 신달자
풀잎 - 강은교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 이시영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산정묘지1 - 조정권
동두천1 - 김명인
독직 - 박시교
맹인부부가수 - 정호승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 김남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선림원지에 가서 - 이상국
남해 금산 - 이성복
복어 - 최승호
밤 미시령 - 고형렬


환한 걸레 - 김혜순
철길 - 김정환
대꽃7 - 최두석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사평역에...서 - 곽재구


노숙 - 김사인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마음의 짐승 - 이재무
눈 - 김용택
시다의 꿈 - 박노해


행려 - 박영근
우기 - 도종환
안개 - 기형도
태아의 잠1 - 김기택
뻘 - 함민복


저 숲에 누가 있다 - 나희덕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 박라연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선운사에서 - 최영미
가재미 - 문태준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 김선우 


 

 

 

 

 

출판사서평

1908년 11월, 《소년》지 창간호에 한국 최초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최남선)가 발표된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대표 시인 신경림은 현대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현대사를 관통하는 100편의 명시를 모아 《갈대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을 살펴보면 현대시의 궤적을 한눈에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한국인 특유의 정서도 느낄 수 있다. 또한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얻으며 사랑받은 작품인 만큼, 읽을 때마다 삶의 깊은 통찰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많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권쯤 간직하며 암송을 해봄직하다.

수록된 시들의 면면을 보면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같은 국민시는 물론이고, 서정주, 윤동주, 이상화, 한용운, 노천명, 고은 김지하 등 현대시 100년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의 시를 비롯해 기형도, 안도현, 최영미 등 젊은 시인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신경림 시인은 한국 현대시가 “서구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통시를 발전적으로 계승 수용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하고 아름다운 시들로 진화”되어 왔다며, “백 년 사이에 엄청나게 커지고 깊어져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신경림 시인은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 시들이 잊혀져가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했다. 고통과 인내의 시대로 불리는 1970~80년대보다 더 편한 세상이 왔는데도 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경림 시인이 이 책을 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처럼 편안한 시대에도 시는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이 시집이 “현대시의 알맹이를 좀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힌 것이다.

더욱이 이 시집은 시에서 발췌한 구절이 새겨진 도자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재미를 준다. 도자기 작품은 도예가 김용문 씨의 작품으로, 도자 물병·옹기·막사발 등에 새겨졌다. 도자기에 다시 새겨진 시는 독자에게 새로운 감흥을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인 구성을 보면 ‘1부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에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일제강점기에서도 민족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삶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노래한 시들을 담았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수영의 ‘풀’,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 노래’ 등이 그러하다.
‘2부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에서는 1960년대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시들 중 한국전쟁, 민주화를 투쟁 등 굴곡 있는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시들과 우리의 감성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담았다.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등이 그러하다.

시는 때로는 가슴 저미는 인생...에 대한 성찰을, 때로는 따뜻하게 가슴을 감싸 안으며 심심치 않은 위로를 건네는 삶의 현장이다. 백 마디 연설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시. 이 시집은 우리 시대 시 문학의 100년 공력이 담긴 작품집으로, 현대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과거의 찬란한 영광과 성취를 뒤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100년의 세월 동안 우리 시가 나아가야 할 바를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물이자, 우리 시들이 수많은 독자들 속에서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 숨쉬기를 기원하는 한 시인의 염원이라 할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물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렇게 좋은 시를 수험용(受驗用)으로만 여기고.......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금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 스님이 어떻게 犬에 대한 詩를 지을 생각을 하셨을까.

 

 

 

 

 

 

깃발을 내리자

  

- 임화

  

 

노름꾼과 강도를

잡던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가난한 동포의

주머니를 노리는

외국 상관의

늙은 종들이

광목과 통조림의

밀매를 의논하는

폐 왕궁의

상표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 위에

국기를 날릴

필요가 없다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살인의 자유와

약탈의 神聖이

주야로 방송되는

남부조선

더러운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북방의 길

 

오장환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박정대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깎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을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다네
가슴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 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 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

 

 
 
 
 
 
 
 

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시건설](1937)  

  이 작품은 서정주가 23세(歲) 되던 1937년 중추(中秋)에 지은 것이다.

 
 
 
 
 

 

 

 

 

 

 

이별가

 

                            박목월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라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가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라카노 뭐라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나막신


                              이병철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이병철이란 이름은 재벌 회장의 이름으로는 모르지만 ‘시인’으로서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니다.
낯선 시인의 이름이요 숨겨진 시인의 이름이다. 한참 전이었을 것이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에 위치한 금산이란 산 높고 물 맑은 고장에 그 고장처럼이나 맑고도 깨끗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들을 만나러 자주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다.
주로 <좌도시>란 이름으로 시를 쓰는 안용산, 길일기 같은 시인들이었는데 그들은 또 시골 출신답지 않게 서울 시인들이며 장사익 같은 가인과도 교분이 있어 고은, 신경림 같은 거물급 시인들이 자주 오가고 있었다.
가운데 안용산이란 시인이 금산문화원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장사익 가인이 와서 노래 부르면서 신경림 시인이 문학 강연을 한다는 기별이 있어 찾아가본 일이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신경림 시인이 암송으로 시 한편을 들려주었다. 처음 듣는 시였다. 신선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만년필과 메모지를 꺼내어 그 시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한 시절 교과서에도 나온 시라는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돌아와 책장을 뒤적여 해방 이후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모아놓은 책 한 권을 찾아보았다. 거기에 이 시가 나와 있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3년 동안 중학교 국어과 교과서에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직껏 왜 이런 시를 모르고 살았던가?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이병철(李秉哲)은 한동안은 한국시단에서 이름이 지워진 시인에 해당된다. 1918년 경북 영양 출생. 호는 풍림(風林). 1946년 시인 유진오와 김상훈 등과 함께 『전위시인집』을 편집.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
기록에 의하면 ‘1949년 3월 당시 <농림신문> 기자이던 이용악의 지시로 「조가」,「전위의 노래」,「애국 인민의 노래」, 「숫자풀이」, 「장타령」 등 체제부정과 혁명을 선동하는 시를 지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1년 가까이 복역 중 북한군의 서울 점령 첫 날인 6월 28일 인민군에 의해 석방되어 유엔군의 9.28 서울 수복 때 가족과 함께 월북한 시인’으로 되어 있다.
시인은 북으로 넘어가 '김일성 찬가' 같은 시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인이 바로 저 유명한 문둥이 시인 한하운을 문단에 소개시킨 장본인이라고 한다.
한하운 시인이 천형의 병 문둥병에 걸려 고향인 함경도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서울 거리를 방황할 때 그의 시 「전라도길」,「벌」과 같은 작품 12편을 받아 <신천지>란 잡지 1949년 4월호에 발표 하도록 하여 세상에 그 이름과 작품을 알렸다는 것이다.
위의 시는 매우 단순하고 깔끔한 시이다. 문장도 겨우 세 개뿐으로 단출하다. 단순구조라 할 것이다.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란 시행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시의 주인공은 낮도 아닌 밤, 그것도 달이 뜨는 밤에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는 젊은이이다.
떠난다는 것은 새로움에 대한 갈구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온 구체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갈구와 그리움에 바쳐지는 시인의 노력이 또한 놀랍다.
머리를 감되 ‘은하 푸른 물’에 감는다 했고, 물을 먹되 ‘목숨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먹는다 했으며, 길을 가되 ‘‘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 소리 내며 가자고 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서럽도록 아름답던 세월이 있었던가! 이것은 한 폭의 마음의 풍경화요 소리 없는 교향악이다. 이 시에 나오는 '딸그락 딸그락' 소리는 차라리 신발 끄는 소리가 아니라 어딘가로 떠나는 싶어하는 구군가의 영혼의 음성이다.
만약에 내가 문학청년 시절에 이런 시를 읽었더라면 나의 시도 조금은 그 바탕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해보기도 한다. 


- 나태주 (2010.12.12)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그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묵화(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반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던 시인은 결국 40대 후반에 단양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무료로 침술을 베풀다가 1993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려간 뒤로는 시는 물론 일체의 문필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노동으로

 

                                      신동문

 

내 노동으로
오늘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 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챙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 고  은 -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1974)

 

 


 

 

            

「문의 마을에 가서」는 신동문(辛東門) 시인의 모친상에 참석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세상과의 새로운 만남을 보여 주는 한편, 그 만남이 가혹한 현실의 발견임을, 그러면서도 아직은 탈속 감정의 외연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을 통해 그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는 고은의 초기 시와 다른 경향의 시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삶에 대한 허무감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한 시적 화자의 책임감이 복합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고은에게 1970년대는 초기의 유미적이고 추상화된 세계와 단절하여 민중적 세계관으로 각성해 나아가는 중요한 시였으며, 이 작품은 이 시기 시인의 모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진달래 산천

 

                                     -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산천>  - 김 창 규

 

 정말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는 시인 중에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신동엽 시인을 좋아하게 된 것은 1975년 한신대학교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이광일 목사가 선물한 <신동엽전집>을 받고부터였을 것이다. 밤새도록 그 전집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었다. 감동적인 시 전집을 읽고 시인이 참 일찍 세상을 뜬 것 때문에 섭섭하고 가슴이 아팠다.

 시인의 시 중에 유독 <진달래산천>을 좋아하게 된 연유는 음유시인 경제학자 유인호 교수의 강연을 들었는데 이 시를 듣고 충격적이었다. 그는 강연을 하는데 시를 암송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백범의 시부터 한용운 시인, 정희성시인 그밖에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는 시인들의 시 한편씩을 골라 외우는 것으로 강연을 대신하였는데 50여 편 중에 그중에서도 이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시였다. 낭송시의 강연은 대단하였었다. 그 때부터 나도 이시를 외우기 시작하였는데 4월이면 꼭 이 시에 미친것처럼 진달래가 붉게 타는 산에 올라 올라가며 내려오면 낭송하곤 하였다. 물론 <껍데기는 가라>하는 시도 좋아하지만 <진달래산천>이 더 마음에 들었다.

시에 진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도록 쓴 교수님의 평론을 읽으면서 대단하다. 정말 언제 이렇게 연구를 많이 하셨을까. 점점 더 신비스럽고 존경스러워졌다. <신동엽의 시세계와 민족주의>를 읽으며 신동엽시인을 제일 앞에 두고 시를 좋아 했던 것을 생각할 때 혼자 어깨너머로 배울 때도 잘 배웠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다. 알맹이와 껍데기, 쇠붙이와 흙 가슴 이런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다.

 한신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자랑스러운 스승들의 가르침이 내가 오래전에 배운 신학교수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그 배움이 실질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전통을 배웠다면 다시금 민족문학과 민중문학, 해방통일문학을 새롭게 배웠다고 자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2학기가 다 끝나가고 있다. 너무나 단 1분이 아쉽고 새롭다.

 <진달래산천>이 한편의 시에 신동엽 시인의 모든 것들이 녹아 있다고 하겠다. 입으로 중얼중얼 거리며 외우던 많은 시들 중에 끝까지 심중에 남는 시는 이 시였다. 최두석 교수님과 백두산을 오를 때도 이 시를 생각했다. 김남주 시인의 <조국은 하나다>가 울려 퍼질 때 이 땅의 한 많은 시인들의 한이 풀리는 것 같았다. 2005년 7월 23일 백두산 아침의 감격이 잊혀 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민족시인의 민족주의와 리얼리즘의 성취라고 쓴 대목에서<금강>을 말 할 때는 숨을 쉴 수가 없는 감동이었다. 서사시의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러하지만 내용 또한 알차게 역사적 사건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는 시인의 탁월한 능력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종로5가> 시를 읽을 때 1970년 11월13일 분신한 청년 전태일을 떠올리는 평론가의 눈은 예리하였다. 한신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가르치는 최두석 시인은 위대한 평론가요. 시인이다. <진달래산천>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이것은 아부가 아니라 냉정한 평가요. 결론이다.

 

 

 

 

 

 



추상을 하다, 추상을 하다

추상이 되어버린 미술 학도,

 

- 마종기,「정신과 병동」중에서

 

 

 

 

 

다 알아버렸어  들켜버렸어 / 누가 지금 가장 시다운 시를 쓰고 있는지 / 누가 가짜인지  누가 진짜인지 / 다 알아버렸어 / 이 가을에 나는 분명해졌어 / 서정시건 애국시건 / 여물어 벙그는 알밤처럼 할 일이야 / 그렇게 지키는 일만이 중요해 / 이 가을에 나는 분명해졌어 //

 

- 정진규,「여물어 벙그는 알밤처럼」

 

 

 

 

 



한국의 아이

 

황명걸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

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

장난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

보채다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야

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

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

네가 철나기 전 두분은 가시면서

어미는 눈물과 한숨을

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

벼 몇섬의 빚과 함께 남겼단다

뼛골이 부서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뼛골이 부서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야

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

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

누더기옷의 아이야

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

사내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

못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

보다 더 뼛골이 부서지게 일을 해서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

알가친척 하나 없는 아이야

혈혈단신의 아이야

너무 외롭다고 해서

숙부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가지고 노는 돌멩이로

미운 놈이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

하나의 성을 쌓아올리도록 하여라

맑은 눈빛의 아이야

빛나는 눈빛의 아이야

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황명걸 :

현대시인. 평양(平壤) 출생. 서울대학 불문과를 중퇴. 〈여상(女像)〉 〈주부생활(主婦生活)〉 〈여성동아(女性東亞)〉 등에서 여러해 기자로 있었다. 1962년 〈자유문학(自由文學)〉에 시 《봄의 미아(迷兒)〉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63년 시동인지 〈현실(現實)〉에 가담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요일연습(曜日練習)》(1962), 《한국(韓國)의 아이》(1965), 〈이럴 수가 없다〉(1996), 《삼한사온인생(三寒四溫人生)》(1971), 《그날》 등이 있다.
평이한 형식으로 주로 서민적 소재를 다루며 때로는 도회인의 무기력하고 퇴폐적인 생활에 대한 회한(悔恨)을 즐겨 시화(詩化)한다. 「이럴 수가 없다/사지(四肢)가 멀쩡한 청년(青年)이/정말 이럴 수가 없다」로 시작되는 시 《이럴 수가 없다》에서처럼 다방 · 바둑집 · 대포집, 더 나아가서는 포커 노름판으로 떠돌아다니는 퇴페적 생활에 대한 반성과 《그날》에서 민족통일에 대한 「외곬수로 쏠리는 염원(念願)」을 노래했듯이, 사회와 민족의 현실을 시로써 쓰고자 하는 데에 귀착된다.(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구미호

                               유안진
어렵사리 사노라 / 사노라 / 사랑하노라. / 천년을 묵어도 아니 풀릴 원한으로, /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가 되어, 꽃피는 서낭고개 타고 앉아 캉캉 웃었으면, / 서리 치는 밤하늘을 피칠하며 새웠으면. //





독작(獨酌)                            - 박시교

 

상처 없는 영혼이세상 어디 있으랴사람이그리운 날아, 미치게그리운 날네 생각더 짙어지라고혼자서술마신다


 

 

 

 

 

 

 

 


 


타는 목마름으로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내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 오는 삶의 아픔
살아 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 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씨가 절필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한 때,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노래하던 시인이었고, 육신의 자유보다 노래하는 자유를 선택했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날부턴가 시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가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던 것들을 스스로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의 절필 선언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그는 시를 쓸 수 없는 늙은이, 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s://thesmokingman.tistory.com/228 [외계인의 하수인]

 

 

 

 

 

 




 

 

 

 

김남주(金南柱 1946 ~ 1994)

 

 

 

 

<장난>

 

  감방
  문턱 위에
  걸쳐 있는
  다람쥐 꼬리만큼한 햇살
  삭둑삭둑 가위질하여
  꼴깍꼴깍 삼키고 싶다
  언 몸 봄눈 녹듯 녹을 성싶어.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서른에서 마흔몇 살까지
  황금의 내 청춘은 패배와 투옥의 긴 터널이었다
  이에 나는 불만이 없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
  금방 이겨
  혁명의 과일을 따먹으리라고는
  꿈에도 생시에도 상상한 적 없었고
  살아 남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밥상을 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나 또한 혁명의 길에서
  옛 싸움터의 전사들처럼 가게 될 것이라고
  그쯤 다짐했던 것이다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조직도 파괴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부끄럽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징역만 잔뜩 살았으니
  이것이 나의 불만이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싸웠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승리 아니면 죽음!
  양자택일만이 허용되는 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유의 적과 싸웠다 압제와
  노동의 적과 싸웠다 자본과
  펜을 들고 싸웠다 칼을 들고 싸웠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고 나는 싸웠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싸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들을 증오한다

 

 

 

 

김씨

 

 

돌을 던진다

막소주 냄새를 풍기며

김씨가 찾아와 바둑을 두면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나를 노엽게 한다

한 칸을 뛰어봐도

벌려봐도 그렇다

오늘따라 이렇게 판은 넓어

뛰어도 뛰어도

닿을 곳은 없고

어디 일자리가 없느냐고

찾아온 김씨를 붙들고

바둑을 두는 날은

한 집을 가지고 다투다가

말없이 서로가 눈시울만 붉히다가

돌을 던진다

취해서 돌아가는 김씨의

실한 잔등을 보면

괜시리 괜시리 노여워진다

 

 

 

 

踏靑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출처

:

정희성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비, 2011년 개정판 17)

 

정희성 시인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70

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당선

, 작품활동 시작.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를 찾아서』 『돌아다보면 문득』 『그리운 나무

.

   김수영문학상, 만해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지용문학상 등 수상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북어

                           - 최승호

 

밤의 식료품가게 (공간적 배경)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먼지+손때+시간의 경과 → 무생명성)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 획일적인 지배 체제 하의 백성들(혹은 소시민들)

                                        ▲꼬챙이에 꿰어진 북어(묘사)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죽음의 실체 확인(서술))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굳은 북어의 혀(묘사)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서술)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말라빠져 생기없는 북어(묘사)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기없는 현대인의 사고(서술)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소시민적인 삶에 대한 자기 반성(묘사, 서술)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7)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시다의 꿈

 

                                              박노해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손으로

장미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피흘리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