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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와 개암사

알래스카 Ⅱ 2019. 3. 25. 18:46





강진 ·부안 비교론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그 일번지를 놓고 강진과 부안을 여러 번 저울질하였다. 실제로 강진과 부안의 자연과 인문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며 어디가 더 우위를 점하는지 가늠하기 힘든 깊이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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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사회평론』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내가 제일 먼저 쓴 글은 고창 선운사였다. 그 글은 곧장 부안 변산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편집자가 여러 지역을 고루 써달라는 주문을 해오는 바람에 내포 땅, 경주 등을 두루 답사하고 강진 해남편에 와서는 편집자 요구를 무시하고 '남도답사 일번지'라는 제목으로 내 맘껏 쓰게 되었다. 그것이 책으로 엮어지면서 제1장 제1절을 차지하게 되었고 고창 선운사는 '미완의 여로'를 남겨둔 채 뒤쪽에 실리게 되었다.





수성당 개양할미


부안을 답사할 때면 나는 변산면에 들러 남들이 곧잘 놓치는「수성당(水城堂)」에 꼭 오른다. 거기에서 위도를 바라보는 전망이 상큼하기 때문이다.




전나무 숲길


나는 이 전나무숲이 꽤나 오랜 연륜을 지닌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전마무 숲길은 해방 직후에 조림된 것이라 한다. 그때 이런 안목이 있었다니 고맙다. 50년만 내다봐도 이런 장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우리 시대에 50년 뒤 후손을 위해 조림해놓은 것이 과연 어디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일주문에서 대웅보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숲과 나무와 건물과 돌계단을 거닐면서 어느덧 세속의 잡사를 홀연히 떨쳐버리게 되니 이 공간 배치의 오묘함과 슬기로움에서 잊혀가는 공간적 사고를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을 경영하는 그 깊고 높은 안목을.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


능가산이란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범어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리고 내소사(來蘇寺)의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다. '다시 태어나 찾아온다'는 뜻이다. 바뀐 이유는 확실치 않다. 俗傳에 羅唐연합군 합동작전 때 소정방이 와서 시주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근거가 없다. 이는 개암사의 울금바위가 우금암(遇金岩)이라고 해서 소정방과 김유신이 만났다는 俗傳과 함께 당시 백제의 마지막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는 아픔의 이야기로만 의미 있을 뿐이다.


내소사의 참맛은 월명암까지 등반을 할 때라고 다녀온 사람들마다 찬사가 자자하지만 나의 발길은 아직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월명암에 얽힌 부설(浮雪)선사의 일화가 재밌다.




우동리 반계마을 / 우동리 당산나무 / 유천리 도요지


고부쪽이 훤히 보인다. 툇마루 한쪽을 불쑥 높여 난간까지 들러놓은 뜻은 거기를 아늑한 누마루로 설정한 뜻이다. 그런 뜻을 읽고 새길 때 한옥의 공간 배치와 구조의 참 멋이 들어온다.




개암사


우동리에서 유천리로 가는 길에 곰소 염전을 보게 된다. 곰소를 지나 유천리 언덕을 넘으면 보안면사무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내려가면 줄포와 흥덕을 거쳐 선운사로 들어가게 되고, 왼쪽으로 꺾어 부안 쪽으로 오르는 북쪽 길을 잡으면 이내 개암사 임구에 당도하게 된다. 개암죽염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개암사가 좋은가요 내소사가 좋은가요?"

"저는 개암사에 살면서 내소사에 놀러 다닐래요."





출처. 유홍준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