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라 作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 (2014)
글. 김준기 | 미술평론가·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041910335&code=960202#csidxe2b6dbde89e8d51ba05ea4f8f728e48
대안공간과 화랑, 비엔날레 등 유수의 미술문화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기라는 사회적 모순을 들춰내는 비판예술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문화적 편재화 현상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한국의 정치적 모순과 사회적 갈등을 담아낸다. 소비사회의 물질적 풍요 이면에 담긴 정신적 빈곤은 김기라가 동시대 대량경제 대량소비의 경제체제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발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치밀한 조사연구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특정 사안에 대해서 조사연구를 통한 정보의 수집과 사물 채집으로 풍부한 아카이브를 형성한 후 그것을 다매체 연동 프로젝트로 엮어내곤 한다.

김기라의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 최면의학자 변영돈 박사가 전승일을 최면치료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작품이다.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에는 포스트-트라우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전승일이 등장한다. 35분짜리 영상에 담긴 전승일의 절규는 체포 구금 후 취조를 당하던 당시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한다. 구토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데려다 달라는 간청이 거부당하고, 여자친구도 잡아오겠다며 협박하는 형사들 앞에서 수치심과 무력감에 빠진 자신을 회고하는 것만으로도 구토증세를 일으키곤 한다. “내가 너희를 평생 동안 잊지 않을 거야, 이 XX들!” 최면 상태에서 나오는 비의식 상태의 거친 언어들 속에는 우리 시대의 깊은 상처가 배어있다. 고통의 순간들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최면의 학자 변영돈과 공동작품을 제작한 김기라는 최면치료 상태에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토로하는 전승일의 말과 표정 속에서 군사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이 한 개인에게 남겨놓은 상처를 드러냈다. 수십년의 세월 동안 전승일은 자신의 상처를 돌볼 여유도 없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사회적 상처를 들춰 치유의 예술을 해온 것이다. 김기라는 그러한 전승일에게 최면 치료를 권했고, 그것을 영상에 담았다. 자신을 취조하는 7인의 형사들을 기억하며 치를 떠는 모습에 관객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고통을 공감하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전’에 전시 중인 이 작품은 개인과 사회의 고통을 성찰한 예술이다.
입력 : 2015.09.04 19:10:33
지금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입니다.
김기라
http://galleryro.net/220033848888
김기라는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이전의 작업들은 회화,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현대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희화화된 방식으로 풀어내거나, 다종의 이미지들을 콜라주 하기도 하고 혹은 다양한 오브제를 수집하는 이종교배적인 작업을 해왔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경향들에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가 근래에 들어 집중하고 있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에게 공동선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가?' 이다. 작가가 관심을 보이는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형식이 아닌 태도와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사건의 중심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근래 작업을 풀어가는 방식은 기존의 작업과는 다르게 사건들 속에 깊이 들어가 그 안에서 세세한 것들까지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자료조사와 연구,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중요시 여기게 되며, 이러한 사건의 현장에서 증인이자 관찰자로서 다가선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가 기존의 공동선이라 믿고 있던 공통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본질을 밝혀내기 위함이며, 이념과 이해관계의 대립의 선에서 벌어지는 실재하는 개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진실을 끄집어 내기 위한 방법이다.
그리고 김기라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속해 있는 대한민국을 작가로서 풀어나가야 할 큰 화두로 설정하고, 이전 작업들과는 다르게 특정한 공간을 다룸으로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한다. 작업 전반에서 작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이를 살펴보는 과정들 속에서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공동선의 문제점에 대해 되짚어보고자 한다. 따라서 김기라는 보편적 이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 다양한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어 대립관계에 의해서 잡음이 끊임없는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사회에서 '작가는 작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스스로 자문하면서 작가의 근원적인 정체성을 묻는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 이러한 사회의 보편적인 시스템에 의한 대립은 우리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마치 단계를 밟아 새로운 단계로 진보하며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변화된 것 없는 순환 구조 속에 갇혀있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처럼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정적이며, 고정된 앵글로 담아내거나 혹은 현장 속에서 찍어낸 날 것 같은 모습이나 사건과는 관련 없을 것 같은 인물과 풍경을 영상에 담아낸다. 사실상 보편적 가치나 보편적 세계관은 우리가 편의상 쓰는 실체 없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보편적인 것에 귀속되고 보편성을 향하는 이데올로기를 발견해 내고자 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는 보편적인 존재는 용인 하기 힘들다. 작가는 실체 없는 이념의 틀 속에서 벌어지는 현대사회의 현장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도록 화두를 던진다.
비교적 근작인 「북쪽으로 보내는 서한들_ 수취인 불명_ 황해」에서 냉면이라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남북의 관계에 대한 단상을 그려내고 있다. 북한에 있는 특정한 대상이 없는 이 편지의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냉면을 먹다가 북쪽의 당신 생각이 났다는 내레이션은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예전에 어른들이 많이 쓰는 인사말로 끝난다.
그러나 이 편지는 평범하지 않다, 이러한 내용 속에 이념과 사상의 무거운 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프롤로그적인 성격을 가진 작업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남북한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을 하게 하며, 우리가 북한과 통일을 논의하기 위한 시작은 정치적, 민족적, 경제적인 이데올로기의 논리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써 기본적인 삶을 지켜내고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작가의 주장은 무용수들과 협업한 「이념의 무게_ 지각의 정치학_ 진달래 꽃」, 「이념의 무게_ 공동선위에서」,「이념의 무게_ 수정된 시각_ 진달래 꽃」, 「이념의 무게_ 숨 없이」에서 구체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영상 전반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행위들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 불안의 감정을 증폭시키며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영상 속에는 같은 선위의 두 사람,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남녀, 눈을 가리고 헤매는 남녀, 서로 다른 색의 끈으로 이어진 두 사람이 펼치는 행위들이 장중한 음악과 함께 벌어진다. 이러한 행위들은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현상들에 대한 지각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정된 시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의 공동선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행위는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눈을 가리고 헤매거나 충돌하고, 둘 중 하나는 죽거나 등 모두에게 득이 될 만한 행위들은 나올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의 인물들을 끊임 없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 속에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이나, 긴장감, 답답함,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직시하여야 한다. 이렇게 어떤 사건에서 우리가 파악하여야 하는 본질은 교육받고 학습 되어진 보편 타당하고,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의 틀이 아닌, 개별자들의 차이와 특성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진실된 공동선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 마지막으로 검은 화면에 이산 가족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념의 무게 – 마지막 잎새」로 되돌아와 보자. 진달래 이외에 아무런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이념과 경계, 색깔론으로 구분 지어지는 이데올로기의 무게를 내려 놓고 인간으로서의 가족과 형제의 본질적인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특정한 이념의 대립의 문제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건국서부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등의 이념에 흐름에 휩쓸려온 역사라 할 수 있다. 이 시간 동안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억압하면서 무비판적으로 우리의 삶을 제어하는 모든 것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기라의 작업에 등장하는 우리 나라의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과잉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곳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이데올로기와 이념에 눈이 가려져 있다. 이러한 허깨비와 같은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보편을 추구하면 어설픈 타협만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이 어설픈 타협은 매번 반복되어 제자리 걸음만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는 개별자들로 구성된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이며, 따라서 개별자들의 특성과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이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김기라는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허상뿐인 보편성으로 굳어지지 않은 그 무엇을 찾아 항상 귀와 눈을 활짝 열고, 넓은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아야 하며, 그 유동적인 개별자들의 틈새를 찾아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전시 주제인 『마지막 잎새』가 희망과 절망을 가르는 지표로 상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분법적인 껍데기뿐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또 다른 것을 선택하는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이야기 하듯이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우리가 속해있는 주변을 돌아 보며,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안개와도 같은 이분법 적인 이념의 장막을 하나씩 걷어 내어야 할 것이다.
■ 신승오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 개관전 '마지막 잎새'전에 전시된 드로잉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기라 작가.(사진=왕진오 기자)
이념, 계층, 지역, 환경 등의 사회적 문제를 회화, 설치, 영상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며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끔 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는 설치미술가 김기라(40)가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 개관전 ‘마지막 잎새’전을 5월 30일부터 7월 5일까지 진행한다. ‘마지막 잎새’전이 진행되고 있는 전시장 입구의 벽면 유리에 붉은색 필터가 붙어있어,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설치작업은 지하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검은 화면에 이산가족들의 대화로 만들어진 ‘이념의 무게_마지막 잎새’ 작품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2월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에서 이산가족들이 나눈 대화를 각색해 만들었다.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 2층에 전시된 김기라 작가의 드로잉 작품들.(사진=왕진오 기자)
화면은 봄을 상징하는 진달래꽃이 등장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런 이미지가 나오지 않고, 검은 화면에 이산가족들의 말소리만 들린다.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공동기자단의 대화록을 가지고 성우들이 재구성한 현장의 목소리이다. 장엄한 음악도, 화려한 영상도 없지만 이 영상이 주는 무게감은 남북분단의 시간만큼이나 커다란 무게감으로 심경을 울린다.
“과잉된 이미지를 없애고, 화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이산가족의 대화가 바로 남과 북의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담백하게 화면을 구성했다.”작가는 이데올로기라는 허물을 벗어놓고 인간으로서의 가족과 형제의 본질적인 대화를 담아내려 했다.
이 작업은 ‘북쪽으로 보내는 서한들_수취인 불명_황해’에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남북의 관계에 대한 단상을 그려냈다. 냉면을 먹다가 북쪽의 당신 생각이 났다는 내레이션은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예전의 어른들이 많이 쓰는 인사말로 끝난다.
작가는 이러한 프롤로그적인 성격을 가진 작업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남북한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을 하며, 남북통일은 정치, 민족, 경제적 이데올로기의 논리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써 기본적인 삶을 지켜내고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 1층 로비에 설치된 김기라 작가의 설치작품.(사진=왕진오 기자)
전시장 2층에는 김기라 작가가 지금까지 펼쳐냈던 작업의 밑그림이 되는 드로잉 작품들을 한 군데 모아, 편집기에 들어있는 영화 화면과 같은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미 나왔거나, 앞으로 만들어질 김기라의 영상 작품에 대한 일종의 시놉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마지막 잎새’전을 통해 작가 김기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대한민국이 겪는 고통과 이데올로기 대립을 중심으로 우리의 현재를 통찰한다. 다양한 대립을 넘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고 있다.한편, ‘마지막 잎새’전이 펼쳐지는 페리지갤러리는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 (주)KH바텍이 2014년 마련한 비영리 전시 공간이다. 문화예술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고자 한국 현대미술을 견인해온 40대 작가들의 지원하기 위해 김기라, 권오상, 홍경택 작가를 페리지 아티스트로 선정해 전시를 진행하게 된다.
CNB=왕진오 기자
아서 쾨슬러 著, 『한낮의 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