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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강화도- 파주>로 역사여행을 떠날려고

알래스카 Ⅱ 2018. 2. 1. 19:17

 

 

 

  강화도 

 

 

 

 

 

 

 

 

 

 

 

이제 보니 내가 줘다 놓은 지도가 하나 있었구만기래~

 

 

 

 

 

 

 

 

1) 아랫쪽 인천 쪽에서 들어가는 다리가 초지대교,

2) 윗쪽 김포에서 들어가는 다리가 강화대교,

 

그러니까네, 우린 강화도에서 판문점 · 파주 방향으로 갈 것잉께로

초지대교로 들어가서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강화대교로 빠져나와야겠구만이라~

 

 

 

 

 

 

 

자, 그러면 강화도 어딜 가서 뭘 볼 것인가?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해안가에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있구만.

※ 1871년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략하자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싸웠다.

 

초지진 ─  조선 효종 7년에 구축한 요새. 병인양요 신미양요, 일본군함 운양호 침공 등 격전지.

덕진진 ─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로 조선 효종 7년에 축조.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한 포격전 장소. 

광성보 ─ 조선시대 광해군이 고쳐 쌓고, 효종 9년에 광성보 설치. 신미양요때 격전지.

 

 

 

 

 

 

 

"강화" 하면 정족산 / 마니산 아닌가?

 

전등사 ─ 고구려 소수림왕때 '진종사'라 했던 것을 고려 충렬왕때 정화공주가 옥등을 절에 바친 이후로 '전등사'라 고쳐불렀다 한다. 외침이 있을 때 史庫를 지키는 사찰로서 국방의 임무도 담당했다.

삼랑성 ─ 단군의 세 아들이 산성을 쌓았다는 전설. 병인양요 때 160명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첩지.

 

 

 

 

 

 

 

마니산 참성단 ─ 단군이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으로, 거친 돌을 다듬어 상단은 하늘을 나타내는 원 모양을, 하단은 땅을 나타내는 사각형으로 천원지방 사상을 보이고 있다. 매년 전국체전 때 칠선녀에 의해 성화가 채화된다.

 

동막해변과 분오리돈대 / 함허동천 시범 야영장 ─ 마니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 천혜의 갯벌 품은 강화도 본섬의 유일한 해수욕장*


동막해변은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여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밀물 시에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썰물 시에는 갯벌에 사는 여러가지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는 분오리 돈대, 함허동천 시범야영장 및 정수사 등의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습니다. 특히 분오리돈대에 오르면 강화의 남단갯벌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는 인천국제공항도 볼 수 있습니다.
강화도 남쪽의 화도면 장화리에서 동막리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일몰을 감상하는 장소로 좋으며, 우리나라 각 시대의 역사가 곳곳에 새겨져 있는 역사의 섬답게, 유적지가 많아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낙가산 보문사 ─ 신라 선덕여왕때(635). 3대 관음성지 중 한 곳. 석실과 마애석불. 눈썹바위.

민머루해변

용궁온천 & 미네랄온천

 

용궁횟집


강화도는 바다에 둘러 쌓인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해산물이 강화도 먹거리로 유명하다. 강화도의 후포항은 바닷물이 세기로 이름나 있는데 그만큼 고기들의 활동량이 높아 탄력적이고 싱싱한 횟감이 잡혀 회를 꼭 먹어봐야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강화도맛집 추천목록에 0순위로 꼽히는 용궁횟집을 소개한다.

용궁횟집은 태안 선창횟집, 군산 새만금횟집과 함께 서해안 3대 횟집으로 유명한 강화맛집이다. 강화도 절벽에 위치하여 최고의 전망권을 보유한 곳인데, 특히 저녁에 창밖의 낙조가 훌륭하다. 관광지임에도 바가지 없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식재료만을 사용하여 현지 단골이 많다.

청담동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셰프가 주방을 맡고 있어 음식의 데코가 화려하고 눈에 예쁜만큼 음식의 맛도 수준급인데 가격대가 합리적인 편이다. 아름다운 전망 뷰에 최근 인스타 맛집으로 가성비가 훌륭한 강화도 횟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강화도 여행코스에 빠지지 않는 명물집으로 좋은 평을 얻고 있다.

 

 

 

 

 

 

 

 

갑곶돈대 ─ 고려때 강화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 고종 3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쳐들어온 곳.

연미정 ─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라 함. 정묘호란 때 청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으로 강화십경의 하나로 경치가 뛰어나다.

선원사지 ─ 팔만대장경은 선원사에서 만들어졌다. 선원사는 1234년 최우가 강화도에 세운 호국사찰이다.

 

 

 

 

 

 

 

강화산성 ─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성으로, 내성 중성 외성의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이 중에 내성이 강화산성이다. 약 7km로 성문은 동서남북 4개, 암문 4개, 수문이 2개다.

강화동종 - 강화역사박물관에 보관

고려궁지 ─ 고려가 몽고에 항전하던 39년간의 궁궐터다. 병자호란 때 청군에 함락되고,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붙타 없어지고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이 남아 있고, 외규장각이 복원되어 있다.

 

대한성공회강화성당 ─ 1890년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파된 후 1893년 영국인 왕란도 신부가 이곳에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1900년 한식 건물을 완공하였다.

용흥궁 ─ 철종이 왕이 되기 전의 잠저.

강화향교 ─

 

전원미술관

심은미술관

 

강화 평화전망대

화문석문화관

강화지석묘

 

 

강화(비빔)국수 ─ 강화경찰서 앞

(※~저녁 7시반까지 영업. 일요일 쉬고.)

 

미리내 바지락 칼국수 - 강화산성 서문 앞

바지락칼국수 7,000원

쭈꾸미볶음비빔밥 2인분 14,,000원

제육볶음백반 2인분 14,000원

※ 9시~22시 영업

 

송화강(중화요리) ─ 용흥궁 옆

 

 

※ 강화도 4대맛집

용궁횟집, 서문김밥, 강화섬설렁탕, 전등사 죽림다원, 강화국수

 

 


토가(土家)
 

강화도 남부, 화도면 흥왕리 566-1에 자리한 두부요리 전문점.

석모도 배에서 내려 오른쪽 해안도로에서 만난 '토가', 소문처럼 외진길에 그집만 차들이 많았다.
동막해변에서 멀지않습니다.

 

032) 937-4482


 







 

 SBS 생방송 투데이 ‘리얼 맛집 24시간의 비밀’에서는 강화도 토박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손순두부집이 소개됐다.

강화 평정의 맛집 ‘토가’가 바로 그 곳. 강화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유명한 손순두부 집이다.

이 집의 주인공은 두부, 하지만 이집을 찾는 손님이라면 누구나 찾는 비밀은 바로 곤쟁이젓이다.

이 곤쟁이젓은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고 강화도 사람들이 주로 집에서 담가먹는 특별한 젓갈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바로 순두부찌개, 하지만 이집 두부는 그날그날 바닷물을 사용해서 직접 만든다는 것.

 또 다른 이집의 비밀은 바로 곤쟁이젓이다.

주인장의 남편이 잡아온다는 새우를 직접 절여 젓갈을 담는다. 

이 새우젓과 육수만 넣어서 만드는 것이 비밀이다.  육수에는 특별히 쌀뜨물이 들어간다.

직접 만든 두부에 직접 만든 새우젓으로 만든 순두부찌개는 시원하고 담백함을 자랑한다.


 

489,554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프로방스 마을

카트랜드

지혜의 숲(도서관)

근현대사박물관

토이박물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화석정

파주삼릉

못난이 유원지

 

 

 

 

억부인 국수집(파주)

 

파주부터 가평까지! 잊을 수 없는 최

 

파주부터 가평까지! 잊을 수 없는 최

 

파주부터 가평까지! 잊을 수 없는 최

 

 

 

TV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배추를 판매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붐빈다는 인기 만점 파주 맛집이다. 저렴한 가격이라고 방심은 금물! 가격을 훌쩍 뛰어 넘는 맛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 곳곳의 손님들을 이곳으로 끌어당긴다. 불고기만 따로 굽는 곳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직화불고기는 초벌 후 숙성을 한 뒤 다시 한 번 더 굽는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는 맛이다. 시원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국물의 잔치국수,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한 간의 비빔국수와 직화불고기는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 저렴한 가격에 두둑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알짜배기 맛집이다.

  1. 주소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현리 74-6번지
  2. 전화번호 : 031-959-2662
  3. 영업시간 : 매일 09:40~19:40 l 매주 월요일 휴무
  4. 메뉴 : 잔치국수(4,000원) l 비빔국수(5,000원) l 불고기(6,000원)

    식당정보 자세히보기

 

 

 

 

유망 프렌차이즈 창업 중 하나인 파주닭국수는 파주 맛집 베스트10, 파주 맛집으로 불리며 건강하고 가성비 높은 닭 반마리 칼국수로 가성비 맛집 대열에 합류했다. 메뉴 개발에만 3개월여를 들이고 테스트도 40번 이상에 걸쳐 닭 반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반계 닭국수를 탄생시켰다.건강과 피부 미용에도 좋다는 적근대면을 사용해 면발의 쫄깃함을 살려냈고, 소화 불량에 좋은 월계수닭을 푹 고아 부드러운 닭고기를 내놓았으며, 불향 가득한 채소를 고명으로 올려 완성한 닭국수만이 이곳의 유일한 식사 메뉴이다. 닭국수 한 그릇은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 8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출처 : 디트news24(http://www.dtnews24.com)

 

 

 

 

 

  • 2018-01-19 19:12:57

 

 

파주
꿀벅지 닭갈비

 

‘생생정보’ 7000원 닭 한마리 보양 칼국수…파주 ‘꿀벅지 닭갈비’

 

 

 

‘생생정보’ 7000원 닭 한마리 보양 칼국수 맛집이 화제다. 
19일 방송된 KBS2 ‘2TV 생생정보’의 ‘리얼가왕’ 코너에서는 7000원 닭 한마리 보양 칼국수 맛집, ‘꿀벅지 닭갈비’가 소개됐다. 
이곳은 단돈 7,000원에 닭과 칼국수가 환상 궁합을 자랑하는 닭 한 마리 보양 칼국수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국내산 닭만을 사용해 믿고 먹을 수 있다.
특히 깊은 국물맛이 일품이라는 육수에는 황귀, 감초등 각종 한약재를 넣어 건강해지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인기 메뉴인 칼칼한 닭한마리 짬뽕도 단돈 8,000원이면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숯불닭갈비도 2인분을 주문하면 1인분을 서비스로 제공해 인기가 높다.
한편 이곳은 경기도 파주시 시청로 14에 위치해 있다. 
[사진=KBS2 ‘2TV 생생정보’ 방송화면캡처] 

 

 

 

 

 

 

 

 

사정이 생겨서 연기 되었슴.

 

 

 

 

 

 

 

 

 

 

 

 

 

 

 

 

 

 

 

 

 

 

 

 

 

 

 

매서운 혹한으로 강화의 바다가 꽝꽝 얼어붙은 날이었다. 얼어붙은 바다의 수면이 물고기 비늘처럼 일어났고, 어선들도 얼음 바다에 갇힌 채 얼어붙었다. 강화 땅에서 혹독했던 것이 어찌 날씨뿐이었을까.


가까이 있어서 외려 잘 보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늘 가까이 있기에 무심코 대했던 곳.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았을 때 38년 동안 수도가 됐던 땅 강화입니다. 강화를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말합니다만, 이 말에 절반만 동의할 따름입니다.강화는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강물처럼 쉼 없이 뒤척이며 흘러가며 지금도 쓰이고 있는 ‘역사책’에 더 가깝습니다. 건국신화를 간직한 민족의 영지이기도 한 가까운 변방, 그곳의 염하(鹽河)가 만들어낸 물길에 스며 있는 시간을 만나기 위해 나선 길입니다.바다가 꽝꽝 얼어붙어 파도 소리가 키질하는 소리로 들리는 민머루 해변이 있는 이곳, 강화입니다.


# 강화, 한 권의 역사책이 되다

강화에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강화에 쌓여 있는 시간은 변화와 발전이라는 빠른 유속에도 좀처럼 씻겨내려 가지 않았다. 오전의 빛에, 혹은 스러지는 노을에 드러난 갯골들이 개펄에 그려내는 문양이 마치 상흔 같았다. 갯골 앞에서 시간 위에 역사가 새겨놓은 수많은 음각을 생각한다.

강화 땅에 지천인 고인돌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시간이 너무 멀어 실감이 나지 않는 쪽이라면, 삼엄한 차단기 너머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보이는 예성강 물줄기가 강화만에 합해지는 지류 너머 북녘 사람들 모습은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섬뜩했다.

여기 강화에서 만들어진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이 땅이 건너온 굴곡의 역사와 시간을 질료로 삼았던 건 아니었을까. 팔만대장경은 강화에서 만들어지고 보관되다가 조선왕조가 확립된 이후에 해인사로 옮겨갔다. ‘팔만’대장경이지만 정확한 대장경의 경판(經板) 수는 8만1258판이다. 호국을 기원하는 경판의 내용이나 수준이야 익히 알려졌다. 그렇다면 경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팔만대장경의 경판에는 놀라울 만큼의 정성이 스며 있다. 우선 나무 선택부터가 그랬다. 글자를 촘촘히 새겨야 하니 목판의 재질은 너무 단단해서는 안 됐다. 그렇다고 무른 재질의 나무를 쓰면 글획의 시작이나 끝부분이 마모되거나 떨어져 나갔다. 깎기는 쉽지만, 새겨놓은 글획은 흐트러지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낸 나무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였다.

경판을 만드는 작업은 우선 나무를 베어내서 갯벌에 2년 이상 묻어두는 것에서 시작했다. 갯벌에서 건져낸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뒤에 소금물에 삶았다. 목재를 소금물에 삶으면 마른 뒤에도 비틀림이 없고 보풀도 일지 않았단다. 이 과정에 또 1년이 걸렸다. 나무를 베어내고 도합 3년이 지나야 목재를 경판으로 쓸 수 있을지 감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골라낸 나무에 한 자 한 자 정성껏 새긴 뒤 손잡이에 해당하는 마구리를 붙이고, 옻칠까지 마쳐야 경판이 완성됐다.

몽골의 침입으로 피폐한 백성을 돌보는 대신 수도를 강화로 옮긴 무신정권은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까지 설치하고 대장경을 만드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글자 한 자를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씩 했다니 8만 장이 넘는 경판마다 빽빽하게 새겨진 글씨를 생각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원을 바쳤는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대장경은 무신정권이 태평성대를 얼마나 열망했는지를 보여주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게 진정 백성을 위한 것이었는가다.


강화 고려산의 낙조봉을 오르는 길에서 만난 일몰 풍경. 바다 건너 석모도의 낙가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강화도에서 만나는 낙조 풍경은 어쩐지 애잔한 느낌이다.




# 항쟁일까, 도피일까… 강화 천도

강화 어디를 가나 돈대(墩臺)가 있다. 돈대란 돌로 쌓은 작은 성을 말한다. 강화 전역에 51개 돈대가 있는데, 19세기에 만든 용두돈대까지 포함하면 돈대의 수는 52개다.

그런데 강화군 자료로 보면 돈대는 53개다.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전술적 가치가 상실돼 철거된 돈대까지 포함했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육군 박물관 자료로는 하나가 더 늘어난 54개다. 필시 같은 돈대를 중복해서 셈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셈하기 힘든 이유는 하나의 돈대에 두 개의 이름이 붙여진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돈대라는 이름에서 돈(墩) 자와 대(臺) 자는 모두 ‘높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이라는 의미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강화역사박물관 전시실 초입에 강화도에 있었던 군사시설의 숫자를 적어놓았다. ‘5진 7보 53대’. 대대 정도의 규모인 5개의 진과 소대쯤인 7개의 보, 방위 시설인 53개 돈대를 뜻한다. 강화 땅 곳곳에 이처럼 군사 시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는 건, 강화가 그만큼 역사적, 혹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려 무신정권의 강화 천도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제국을 피해서였다. 몽골의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된 것은 1231년의 일이다. 도성이었던 개경이 쉽게 포위당하자 이듬해 무신정권은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대몽항쟁을 공표한다. 고려가 전쟁을 끝내고 몽골과 화의하는 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지 27년 만인 1259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1년 뒤에 무신정권은 개경으로 돌아갔다.

풍수지리의 힘이었을까. 강화로 천도하면서 고려는 칭기즈칸이 정복한 수많은 나라 중 유일하게 국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30년이 넘도록 몽골에 복속되지 않은 지연작전의 공신은 바로 지형이었다. 강화해협이라고도 불리는 염하는 400∼1000m 좁은 폭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9m나 되면서 유속의 가늠을 아주 어렵게 한다. 게다가 썰물이면 드러나는 갯벌은 진득하게 발을 붙잡는다. 게다가 혹한으로 요즘처럼 바다에 유빙(流氷)까지 떠다닌다면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몽골 전사들의 전의가 물러질 수밖에 없었겠다.

강화로 도읍을 옮기고 지은 고려궁지는 규모는 작지만 수도 개경을 옮겨 놓은 듯, 뒷산의 이름까지도 송악산으로 붙였다. 단순히 수도 이전만이 아니라 수도 근처의 사찰과 탑까지도 가지고 왔다. 터전만 남은 봉은사, 급하게 쌓았을 것이 분명한 강화 하점면의 오층 석탑. 처마는 깨지고 몸돌 두 개와 상층부의 장식을 잃었고, 가람 배치의 흔적도 찾지 못했지만 석탑은 어엿한 보물 10호다.


석모도 낙가산 아래 보문사. 지난해 6월 석모대교가 놓이면서 절집을 찾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


# 억울한 죽음, 그리고 장렬한 죽음

강화 천도 와중에 고려 왕이 강화 섬으로 건너갈 때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한다. 왕은 뱃사공 손돌에게 제대로 된 물길로 가라고 했는데, 손돌이 파도가 더 많이 일고 출렁이는 곳으로 배를 몰자 의심했다. 이에 왕은 신하들에게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손돌은 죽는 순간에도 바가지를 띄워 바가지가 가는 길을 따라 배를 저어갈 것을 유언했다. 바가지가 떠가는 곳으로 배를 몰아 강화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손돌의 유언대로 해서 배가 갯벌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돼 크게 후회하고 손돌의 사당을 지어 억울한 원혼을 달래 줬다고 전한다.

강화 광성보 용두돈대와 김포 망덕진 사이를 뱃사공 손돌의 이름을 따서 ‘손돌목’이라 부른다. 김정호가 펴낸 지리지인 ‘대동지지’에서는 손돌목을 “물밑이 문지방 같고 수세가 매우 급하며 물밑 돌부리가 깊은 낭떠러지 같다”고 표현했다. 억울한 뱃사람의 죽음에 대한 전설은 너무도 구체적이다. 훗날 그가 참수됐다는 음력 10월 20일 무렵에 부는 매서운 바람을 ‘손돌 바람’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이번에는 장렬한 죽음. 1871년 6월 10일 토요일 이미 여러 해 전에 일본의 통상조약을 이끌어낸 미 해병대가 함포 사격을 해가며 일주일 이상 정박했다. 이른바 ‘신미양요’다. 쇄국의 조정은 강화도에 군사와 군량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지휘관으로 어재연을 보냈다.

전세는 불리했다. 병사들은 광성보에서 총탄을 막기 위해 초여름 아홉 겹의 무명 솜을 입고서 싸우다 몸에 불이 붙었다. 어재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을 포함해 최후에는 손에 쥔 흙까지 무기 삼아 장렬하게 싸운 병사들이 전멸했다. 적군인 슐레이 소령이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진지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최후의 한 명까지 격렬했던 국민을 본 적이 없다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였다.

미군은 이 전투에서 가로세로 4.5m의 ‘장수 수(帥)’ 한 글자가 새겨진 깃발을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그 깃발이 136년이 지난 2007년에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돼 지금은 용산전쟁기념관에 있다. 광성보 전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51구의 전사자가 7기로 분묘된 ‘신미순의총’으로 그 자리에 남았다.


얼어붙은 갈대 너머의 갯벌을 눈이 덮었다. 검은 갯벌이 감광된 네거티브 필름처럼 흰 눈밭이 됐다.


# 석모도 성당과 교동도 제비집

외포리와 석모도를 부지런히 오가던 여객선은 석모대교가 완공되면서 부두에 정박해 있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는 이제 남쪽의 세 섬, 볼음·아차·주문도를 간간이 다닌다. 석모도 뱃길이 끊기면서 외포 젓갈수산시장은 영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상인들은 아직 탐스러운 젓갈을 좌판 가득 내놓고 있다.

이즈음은 석모도에 새로 생긴 미네랄 온천을 찾는 사람이 많아 보문사로 드는 길에 1시간쯤 차량이 정체하는 일쯤은 흔하다. 차량 한 대당 2000원씩을 받는 주차 요원은 북새통을 이루는 도로를 보면서도 짐짓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오늘은 덜 막히는 편”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차가 많은 날에는 도대체 얼마나 정체가 심하다는 얘기일까.

석모도에서 가장 알려진 명소는 단연 낙가산과 보문사. 석모도에 갔다면 낙가산을 등산하거나 보문사에 들르는 건 필수 코스다. 알려지지 않은 곳 중에서는 전득이 고개 옆의 성모마리아 성당을 추천한다. 주소는 강화군 삼산면 삼산동로 17-8. 성당 내부가 열댓 평이나 될까. 성모마리아 성당은 성공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박한 성당이다. 머릿돌을 가린 회양목을 걷어내면 성당 건축연도가 나온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인 1906년이다. 겨자색 지붕 덕에 지나다가 누구든지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성당 앞에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활개를 치고 서 있어 벚꽃이 흐드러질 때면 경관이 아름답다.

섬에서조차 번잡함을 좇는 것이 싫다면 교동대교를 건너 교동도로 들어가자. 교동도는 석모도와 달리 민간인출입통제선 너머에 있어 신분증을 보여주고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는 통행금지에 묶여 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섬 밖으로 나올 수도 없다. 그러나 교동도는 이런 불편쯤은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교동도는 강화도 최북단 섬이지만 강화군 전체 경작지보다 면적이 넓다. 황해도 연백의 실향민들이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섬을 간척해서 교동도의 세 섬을 하나로 만든 결과다. 교동도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60년쯤에서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은 대룡시장에서는 금방 만든 꽈배기와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의 쌍화차도 맛볼 수 있다.

한 통신회사가 마을에 기탁해서 자율 운영하고 있는 ‘교동 제비집’도 꼭 들러봐야 하는 장소다. 여기서는 IT 기반의 관광안내를 받거나 자전거와 스마트 워치를 대여할 수도 있다.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은 1인 신문인 ‘교동신문’을 발간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있고, 디스플레이에서 교동도와 북한 황해도 연백 사이 2.6㎞ 거리를 잇는 사이버 다리도 놓을 수 있다. 지금까지 4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디지털 참여로 가상의 다리를 놓았다.


■ 여행정보

강화 가는 길=섬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개다. 하나는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대교를 건너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356번 지방도로를 따라 강화초지대교를 건너는 길이다. 강화대교는 섬 북쪽, 초지대교는 섬 남쪽으로 연결된다. 강화대교로 들어가 교동도와 석모도를 둘러본 뒤에 초지대교로 나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주말이나 휴일이라면 석모도 온천 일대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감안해야 한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강화의 숙소는 거의 대부분이 펜션이다. 모텔급 숙소도 있지만 태반이 노후했다. 강화군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강화평화빌리지(032-930-7058)를 추천한다. 독립 별채 객실은 5인실과 10인실 두 가지. 주말 기준 5인실은 10만 원, 10인실은 13만 원이다. 강화의 펜션들은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는데, 호텔 에버리치(032-934-1688)는 바다가 아니라 산속에 들어선 70실 규모의 리조트호텔이다. 남산유스호스텔을 인수한 뒤 리모델링을 거쳐 2014년 문을 열었다. 굿스테이 가맹업소인 한옥 펜션 옛날의 금잔디(070-8262-6731)도 괜찮다. 맛집으로는 돌솥비빔밥과 메밀전병, 도토리묵을 내는 강화섬 보리밭(032-937-2982)이 이름났다. 참게 요리를 내놓는 국화호수(032-933-8264)와 꽃게탕을 내는 충남서산집(032-933-1667)도 평판이 좋은 맛집이다.


강화(인천)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8년 1월 3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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