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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김환기 작품 강연

알래스카 Ⅱ 2017. 4. 3. 21:17

 

 

 

 

유홍준, 12일 김환기 작품 '케이옥션 경매' 앞두고 강연

 

 

 

김환기의 1973년 뉴욕시대 전면점화 작품 이 출품돼 다시 한 번 국내 미술품 최고가 경신에 도전한다. 추정가는 55-70억원. (케이옥션 제공) © News1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김환기의 '점화'를 가까이에서 보세요. 점을 그냥 찍은 것 같죠? 점의 '해부도'인 스케치를 보면 먼저 가운데를 옅게 그리고 테두리를 친 다음, 가운데 점에 액센트를 주고 보완을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점 하나가 완성되죠."

 

3일 오후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대표 이상규) 본사에서 '김환기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 유홍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좌교수가 "설계도에 가까운 김환기 스케치를 보고 김환기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0만개가 넘는 점을 찍으며 도를 닦듯 그림을 그렸던 김환기의 작품은 쉽게 봐서는 안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는 12일 케이옥션 4월 경매에서 김환기(1913-1974)의 뉴욕시대 전면점화 작품 한 점이 높은 추정가 70억원에 출품돼 지난해 한국 미술품 사상 최고가인 63억원을 경신할 수 있을지 미술계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이날 모인 150여 명의 청중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미술사가 유홍준 교수의 김환기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유 교수는 "김환기를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며 "추사 김정희나 수화 김환기 같은 분들이 있어 우리의 문화유산이 창출되고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김환기에 대한 미술사적 접근보다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조형미에 대한 감상에 방점을 두고 강연을 진행했다.

 

김환기는 1913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나 10대 때 서울로 올라와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대학교에 진학한 김환기는 1933년 당시 일본 문부성이 주관하는 관전이 아닌, 재야 공모전인 '이과'전에 출품해 입선했다.

유 교수는 "틀에 박힌 화풍을 쫓지 않는 화가들이 주로 참여했던 이과전에 출품한 김환기가 당시 선보인 '종달새' 그림은 종달새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보다 조형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며 "이미 초기부터 김환기는 아카데미즘에 천착하지 않고 자유창작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특히 "김환기는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이후 장욱진, 유영국, 도상봉 같은 화가들의 그림이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대미술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김환기는 이같은 아카데미즘으로부터 벗어나 '룰'을 깨며 조형의 해방을 꾀했다"고 말했다.

 

 

 

강연 모습. © News1

 

 

 

그는 김환기의 '달항아리 예찬론'에 대해서도 강연을 이어갔다. 유 교수는 "김환기는 사방탁자, 달항아리, 목각병, 무지 필통 등 우리 고미술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며 "서민적이면서도 이지적인 미감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50년대 김환기의 '파리시대'에 대해서는 "모더니즘 세계를 조형에 구현하기 위해 실험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 우리 고유의 서정과 시대적 감각, 그리고 작가만의 미학을 담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남겼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유 교수에 따르면 김환기는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해 당시 대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아돌프 고틀리브(1903-1974)의 작품들을 본 것을 계기로 예술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40호 정도만 돼도 큰 작품이라고 여겨졌던 국내 화단의 분위기와는 달리, 300호, 500호가 넘는 대작을 무려 46점이나 내건 고틀리브를 보고 김환기는 예술적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뉴욕에 가서 싸우겠다' 결심하며 이른바 '김환기의 뉴욕시대'를 시작한다.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후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뉴욕에 머물면서 예술적 실험을 하던 김환기는 1970년 자신의 역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고국에 소개한다.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김환기가 7년 만에 고국에 선보인 작품은 이전에 그렸던 항아리 그림, 매화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며 "이 그림은 당시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그림을 접하게 된 계기를 가수 김민기와의 일화로 전했다. 유 교수는 "대학 4학년 때 김민기가 내게 '김환기 그림을 봤는데 엄청 감동적이고 볼만 하더라'고 해서 보게 됐다"며 "이제까지 경험해 왔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고, 그동안 (추상에 대해) '한가한 사람들의 조형적 장난'으로나 생각했었는데 이 그림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림에 제목을 잘 붙이지 않던 김환기가 이 그림의 캔버스 뒷면에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한 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서는 "우수에 젖은 감정, 미지에 대한 그리움을 응축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 김환기의 대형 전면점화에 대해 "동일 부호를 수없이 반복해 대량(Massive)으로 만들어서 우리를 덮칠 때의 감동은 매우 각별한 것"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김환기 그림에 호소력이 넘치는 이유는 '조형적 성실성' 때문"이라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김환기 그림의 감동은 영원할 것"이라고 강연을 매듭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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