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에 감춰진 옛 이야기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2016.9
초상화에는 역사책에 없는 역사가 숨어 있다!
사진 한 장은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이 없었던 과거에는 초상화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때문에 초상화는 텍스트 위주의 우리 사학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소중한 유물이다.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는 초상화를 통해 교과서에는 없는 흥미로운 역사를 살펴보고, 초상화가 현전하지 않는 위인들의 얼굴을 추적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사마귀와 곰보자국까지 그대로 표현하고, 심지어 왕의 용안까지 사시로 그린 것을 통해 ‘터럭 한 오라기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조상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가 하면, 이순신의 고손자 이봉상의 초상을 바탕으로 충무공의 얼굴을 추론하는 과정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잘 알지 못했던 역사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 : 배한철
저자 배한철은 1995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정책 기사를 주로 써왔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경영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 저널리즘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미주리대학교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으로 공부했다. 고등학생 시절엔 국사학과 교수를 꿈꿨다. 2011년부터 문화재 분야를 취재하면서 못다 이룬 역사학도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한국사, 고미술, 고전 등 다양한 주제의 칼럼을 쓰고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사 스크랩》(2015년 세종도서 선정) 등이 있다.
머리말
제1장 다른 각도로 보는 초상화
《박씨부인전》의 못난이 주인공 남편은 꽃미남 -> 이귀 아들 이시백
박문수는 암행어사를 한 적이 없다
오성과 한음 설화는 허구다
임진왜란의 최고 영웅은 이순신이 아니라 중국인? -> 작자미상 석성
만화인가 초상화인가 개성 강한 얼굴들
기묘하게 닮은 걸작 초상화 두 점 -> 이재 / 이채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는 실존했나 -> 루벤스 <조선남자>
제2장 임금의 얼굴, 어진
강화도령 철종 어진 임금을 꿈꿨다
신라 경순왕 나라를 버려 나라를 얻다
사도세자를 죽인 자들과 사도세자의 아들
용을 닮았다는 고려 왕건은 귀공자 형상
훈남 왕자였던 인조의 아버지
임금의 장인 만인지상의 권력을 쥐다
제3장 시대와 위인을 담은 초상화
조선 최고의 재상은 사팔뜨기
‘개혁군주’ 공민왕은 섬세한 예술가였다
유일하게 남은 고구려왕의 초상
1926년 《조선명현초상화사진첩》에 실린 김유신상像
모자와 배만 봐도 시대를 알 수 있다
제4장 얼굴 없는 위인들
사라진 수양대군 초상화 스케치의 행방
일본 사찰의 〈신라명신상〉은 해상왕 장보고일까?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얼굴을 찾아
〈정약용선생초상〉은 다산의 진짜 얼굴일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충무공의 사라진 얼굴
일본 사무라이 모습의 퇴계 이황
제5장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비와 중인 출신으로 장군의 자리에 오르다
조선시대 마이너리티 서얼
임진왜란의 공신들 선조에게 반기를 들다
주자학 중심 사회에 도전한 조선의 마르틴 루터,사문난적
귀화자로 조선건국에 공헌한 아름다운 여진족 장수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설화는 허구일까
제6장 화폭에 담긴 여인들
아름다우면서 요염하다 남심 홀리는 미인도
고종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 신정왕후
진짜 명성황후의 얼굴을 찾아서
고려 멸망의 단초가 된 노국대장공주
생식기를 적출당한 기생의 슬픈 얼굴
제7장 초상화 속 숨은 역사 찾기
나라를 위해 연인을 희생시킨 임진왜란 명장
나라를 뒤흔든 반란에서 임금을 구하다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을 실천한 조선 최고 경제학자
조선을 좌지우지한 논쟁 문묘 배향
조선 최고 명예 ‘기로소’ 3관왕 강세황 가문
역적의 아들 정조의 친위부대 초계문신
보물 초상화로 살펴보는 뒷이야기
제8장 거장들의 숨겨진 얼굴
신선이 되고 싶었던 김홍도
시대를 풍미한 기인 화가들의 숨겨진 얼굴
조선 최고의 부자 화가 겸재 정선
그림 속 어린 신윤복은 왜 울고 있나?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대문장가들
국보가 된 걸작 초상화
참고문헌
- 보물 제1492호 철종어진(哲宗御眞)
- 복원시켜본 철종 어진
사팔뜨기라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바로크 미술의 거장 페테르 루벤스(1577~1640)가 그린 소묘 '조선 복식을 입은 남자'의 주인공은 조선인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술사학자 노성두(56)씨는 독서신문의 '책&삶'에 두 차례 글을 실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미술관에 있는 해당 그림의 주인공은 16세기 말 조선 시대에 왜구에게 잡혀 간 조선인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이어져왔다. 조선인이라는 뜻으로 '코레아'가 붙어 그림 속 남자의 이름은 '안토니오 코레아'로 굳어졌다. 게티 미술관의 공식 사이트도 이 그림을 '조선 복식을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로 소개하고 있다.
노씨는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다 헛짚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가 쓴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2004)의 내용을 반박하며 자신의 논지를 폈다.
우선, 학계에서는 대형 제단화의 준비그림으로 보는 견해가 우월하다고 짚었다. 작품 연대 추정이 가능한 루벤스의 제단화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이 1617~1618년께 완성됐다며 "학계의 추정대로 게티 소묘가 빈 제단화의 준비그림이라면 제작 시점을 1617년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책에서 소묘의 탄생 시점을 루벤스가 안토니오를 로마에서 만난 1607~1608년께로 앞당겨야 한다며 학계의 입장을 반박한다.
노씨는 이에 대해 "안토니오를 루벤스 소묘의 주인공과 연관짓기 위해 소묘의 제작시점을 자의로 앞당기면서 게티 소묘를 빈 제단화의 준비 소묘가 아닌 독립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반박했다.
게티 소묘의 주인공은 당초 중국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머리에 쓴 관모가 조선의 방건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작품 제목이 '조선 남자'로 바뀌었다.
1934년 C S 워틀리가 '조선인 특유의 투명한 말총 모자'를 지적하고, 곽 교수가 이것을 방건으로 확신하면서 현재까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제기 없이 수용돼 왔다는 것이 노씨의 지적이다.
그는 "방건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바뀌기는 하지만 원래 가로 세로 높이가 거의 같거나 납작한 정육면체에 가깝다. 그런데 제단화의 관모는 네모나게 각진 방건이 아니라 원통형"이라며 "게티 소묘의 관모도 원통형이고 각이 없다"고 설명했다.
"방건을 여러 해 사용하다 보면 세로로 각진 부분이 저절로 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방건은 벗어둘 때 납작하게 접어서 보관하기 때문에 해져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써도 각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노씨는 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해 허리에 연결시킨 포(袍)인 철릭도 게티 소묘와 실제 조선시대 것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조선 철릭은 일반적으로 무릎 아래에 살짝 내려온 깡총한 길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 니콜라스 트리고 또는 마테오 리치가 입은 중국식 철릭은 바닥에 쓸릴 정도로 길고 풍성해서, 게티 소묘의 주인공과 빈 제단화의 동양인이 입은 철릭과 더 가깝다"는 것이다.
결국 "조선 방건과 조선 철릭이 게티 소묘를 조선인으로 추정하게 하는 주요 근거라면, 여기서 출발한 모든 주장은 근거를 상실한 셈"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안토니오 코레아와 그의 로마 체류 시기가 겹치는 1607~1608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루벤스는 발리첼라 제단화 수령거부 사건, 교회 주제단부 장식 프로그램의 전면적 수정과 재작업, 또 시원치 않은 건강과 최악의 재정 상태로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때였다는 것이 근거다.
이를 토대로 "이 시기에 장차 10년쯤 뒤에 안트베르펜 예수회 교회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제단화 주문을 미리 예상하고, 유럽에 이미 꽤 진출해 있어서 모델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중국인은 제쳐놓고, 예수회 선교와도 상관없고 외교관계도 없어서 유럽 전체에 겨우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조선인을 굳이 수소문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조선인 노예 출신인 안토니오를 찾아낸 뒤, 그에게 혹시 동양의 고관대작이나 외교 관료나 고위 성직자가 걸칠 만한 의관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의관정제해 초상소묘의 모델로 서줄 것을 요청하고,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모델료를 지불했을까"라는 것이다.
게티 소묘 속 인물이 실제 누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추측이 대체로 우세한 가운데 한쪽에서는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조선시대 한복은 전쟁 등으로 인해 단순했는데 그림 속 옷은 화려하다는 등 의문도 여럿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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