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미술 이야기 (책)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

알래스카 Ⅱ 2016. 9. 5. 13:51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 최연욱 지음 | 2016.05.11 비밀의 미술관

 

 

 

 

 

 

반 고흐에 반한 저자가 보여주는 반 고흐의 스토리!

저자 최연욱

 

반고흐의 작품《까마귀 나는 밀밭》을 보고 감동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미술 스토리’와 ‘반 고흐 스토리’를 연재하였다. 이 책은 그 내용들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으로 반 고흐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는 미국 마샬대에서 순수미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미술사를 부전공으로 공부하며 논문 〈동양미술의 성모 마리아의 도상학적 분석(2002)〉을 발표했다. 졸업 후 3년간 그래픽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전업화가로 전향했으며, 전시회와 공모전에 수차례 입상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다음 카페 ‘우리 미술관 갈까?’를 운영하면서 매월 한두 번씩 미술 초보자들과 전시 탐방 모임을 가졌고, 이는 미술·전시 분야에서 가장 큰 모임이 됐다. 2007년부터는 전 세계 30여 개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직접 다니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추천할 만한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 130여 곳을 선정, 블로그에 ‘미술관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업데이트 중이다. 유럽 각지로 여행하며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다녔고, 우키요에 거장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후카쿠 36경을 답사하는 등 ‘미술 속 숨은 이야기 찾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지금까지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 미술정보와 지식 공유 사이트인 ‘미담아트가이드’를 오픈했으며, 2015년 1월에는 디자인 회사 ‘미담아트 디자인 스튜디오(현 미담아트)’를 설립해 디자인에서 생기는 수익을 미술 전파 운동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지은이의 말

_ 미처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빈센트 반 고흐 스토리


Chapter 1. 빈센트는 어떤 사람인가?


도대체 귀는 왜 자른 것일까? |

 

빈센트는 왼손잡이일까, 오른손잡이일까? |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Oil on canvas January 1889  60 x 49 cm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UK

 

 

 

8년간 아마추어 화가였던 빈센트 |

 

빈센트와 고갱, 그 관계에 대한 오해 |

 

빈센트는 얼마나 가난했을까? |

 

빈센트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Chapter 2. 빈센트의 초기 작품들(1881~1883년)


빈센트의 초기 작품들 |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창녀, 시엔

 

 

 

Chapter 3. 빈센트의 뉘넨 & 안트베르펜 시대(1883년 12월~1886년 2월)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의 인정받지 못한 최초의 걸작 |

 

 

The Potato-Eaters Oil on canvas 1885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성경이 있는 정물〉, 작품 속에 의미를 담기 시작하다 |

 

〈담배를 물고 있는 해골〉, 지루한 정식 미술 교육 

 

 

 

Chapter 4. 빈센트의 파리 시대(1886년 3월~1888년 2월)


빈센트가 누드화를 그렸다고? |

 

유럽을 강타했던 자포니즘에 빠지다

 

 

 

Chapter 5. 빈센트의 아를 시대(1888년 2월~1889년 5월)


〈해바라기〉, 빈센트를 대표하는 작품 |

 

〈밤의 카페〉, 유황이 끓는 지옥, 그리고 고갱의 드로잉 한 점 |

 

〈밤의 카페테라스〉, 13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맛없는 레스토랑 |

 

 

 

 

 

〈아를의 여인〉, 아를에서의 소중한 인연 |

 

〈아를의 침실〉, 홍수로 망가진 빈센트의 방 |

 

〈아를의 붉은 포도밭〉, 생전에 팔린 유일한 작품

 

 

Chapter 6. 빈센트의 생레미 시대(1889년 5월~1890년 5월)

 
1888년12월 23일 일요일 밤. 빈센트는 고갱과의 다툼 이후 정신 발작으로 자신의 귓불을 잘랐다. 그리고 24일 아침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 고갱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 바로 짐을 싸서 아를을 떠났다. 5개원 후인 1889년 5월 9일 목요일, 빈센트는 아를에서 가까운 생레미 생폴드모솔 정신요양원에 자진 입원했다. 요양원은 테오의 요청으로 빈센트를 위해 2층에 방을 주고, 1층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다. 빈센트는 이곳에서 1년 동안 머물면서 약 150점에 가까운 유화 작품을 그렸다. 거의 2~3일에 한 점씩 그린 것인데, 빈센트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바로 이 시기에 제작돤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마지막 자화상> <꽃피는 아몬드 나무> <아이리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거장의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 |

 

〈별이 빛나는 밤〉, 학문의 멜팅 팟Melting Pot |

 

 

 The Starry Night  Saint-Rémy /Oil on canvas June 1889 / 73.7 x92.1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NY USA

 

 

<별이 빛나는 밤> 역시 단 2~3일 만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1889년 6월 16일에서 18일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요양원에 입원한 지 약 한 달 만에 나온 걸작이다. 빈센트가 별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년 전이다. 드로잉을 포함해 약 20여 점을 그렸으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년 9월)도 그 중에 한 점이다.

하버드대 천체물리학과 교수인 찰스 휘트니는 빈센트의 <별이 빛나는 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휘트니 교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1889년 6월 16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동쪽 하늘의 별자리를 확인했다. 그리하여 작품 속의 달과 11개의 별의 위치, 그리고 사이프러스 나무 오른 편에 위치한 유독 희고 큰 별이 금성과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44년 전에 파슨스가 망원경을 보고 그린 소용돌이치는 은하의 스케치가 빈센트의 <별이 빝나는 밤>과 일치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빈센트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약 60년이 지나서 러시아의 수학자 안드레이 콜로고로프는 대기 속 난류의 흐름에 대한 방정식을 정립했다. 유동 난류의 흐름을 디지털화 해서 비교를 하니 <별이 빛나는 밤>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

 

 

 

〈꽃 피는 아몬드나무〉, 아이들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걸작 |

 

 

 Amandelbloesem / Saint-Rémy  Oil on canvas 1890 / 73.5 x 9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아이리스〉, 메리 켈리 살인사건 |

 

 

Iries / Oil on canvas 1890 / 92 x 73.5 cm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the Netherlands

 

 

 

 

"첫 번째는 비명을 꽥 질러서 바로 끝낼 수가 없었지. 하지만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지. 경찰들에게 줄 귀를 아직 못 구했거든." - 1888년 10월.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남긴 메모 일부

 

1888년 11월 9일, 런던 화이트 채플 구역에서 키가 크고 늘씬한 미모의 25살 여성 메리 켈리가 자신의 침대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경찰이 공개한 사진 속 메리 켈리는 얼굴과 몸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되어 있었고, 다리와 팔은 어색한 자세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편지 한 통이 경찰과 신문사에 도착했는데 다른 아닌 메리 켈리를 살해한 범인이 보낸 편지였다. 그는 1888년 8월에서 11월까지 런던에서 8명이나 잔인하게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Ripper)였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살인사건이 1873년에도 잇었다. 이후에 인근에서 비슷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며, 시간이 흘러 1886년에 또 비슷한 방식의 살인사건이 파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런던에서 더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듬해에 또 런던에서 범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잭 더 리퍼는 잡히지 않았다.

 

처음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1873년은 빈센트가 구필 화랑 브릭스턴 지점으로 발령받아 런던에서 살던 해다. 그리고 1874년은 빈센트가 첫사랑 유제니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던 해다. 빈센트는 1886년 초에 파리에 갔다가 1888년 초에 아를로 내려왔고, 1889년 12월에 귀 시건이 일어난 뒤 병원에 입원했다.

잭 더 리퍼는 1888년 12월에도 계속 경찰과 신문사에 편지를 보냈는데, 12월 23일 ㅇ;후 편지가 끊겼다가 16일 후인 1월 8일자로 다시 편지가 왔다. 이와 비숫하게 빈센트의 귀 사건은 같은 해 12월 23일에 일어났다. 빈센트는 그 다음날 입원했으며 1889년 1월 7일에 퇴원했다.

 

다시 살인사건 이야기로 돌아가면, 1874년 템즈강 토막살인 사건은 런던 남서부 베터시 지역에서 일어났는데 이곳은 빈센트가 런던에 도착해서 브릭스턴으로 옮기기 전에 잠시 살았던 지역이다. 이 첫 살인사건은 1874년 9월 5일에 일어났다. 빈센트는 베터시에서 브릭스턴으로 7월말 또는 8월 초에 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89년 또 다른 토막살인사건이 났던 9월 10일은 빈센트의 어머니 생신이기도 하다. 혹시 재 더 리퍼가 빈센트는 아니었을까?

 

빈센트는 여동생 윌에게 보낸 1888년 6월 16일자 편진에 밀짚모자에 대해서 썼는데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Hannekenmaaier'라는 단어를 썼다. 네덜란드어로 '추수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영어로는 'Mower' 또는 ' Ripper'가 된다. 뭔가 섬뜩하지 읺은가? 

빈센트의 작품 <아이리스>의 꽃 중간에 걸친 빨간 줄이 메리 켈리의 시신이다. 잭 더 리퍼네 의해서 살해된 메리 켈리의 경찰 공개 사진을 보면 작품 속에 그려진 자세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Mary Jane Kelly'를 검색하면 된다.

 

이 이야기는 화가이자 소설가인 데일 라너가 2012년에 인터넷에 소개한 온라인 소설 『잭으로 알려진 빈센트』의 내용이다. 데일 라너는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료 수집만 3년이 걸렸으며 집필을 3년 반 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오란 배경의 <아이리스>는 1890년 4월부터 5월까지 빈센트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올라오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빈센트가 생레미 정신병원에 1년 동안 머물면서 그린 140여 점의 작품 중에 정물화는 이것이 유일하다. 

 

 

 

 

 

 

〈울고 있는 노인: 영원의 문턱에서〉, 죽음을 예고하다

 

 

Old Man in Sorrow Oil on canvas 1890.5.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Chapter 7. 빈센트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대(1890년 5월~1890년 7월)


〈가셰 박사의 초상〉, 빈센트의 처방전 |

 

〈까마귀 나는 밀밭〉,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다 

 

 

Wheatfield with Crows Oil on canvas July 1890 / 50.5 x 10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Chapter 8. 빈센트의 마지막 2박 3일


빈센트의 죽음, 고통은 영원하다

 

 

 

Chapter 9. 빈센트의 오늘, 그리고 내일


빈센트 거장 만들기, 여러 지인들의 헌신 |

 

테오를 단 6개월 만에 죽음으로 몰고 간 마비성 치매 |

 

뿌옇고 누렇게 변해가는 작품들 | 도를 넘은 일본의 빈센트 사랑 

 

 

 

Chapter 10. 빈센트에 대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하염없이 빠져드는 빈센트의 편지

 

 

 

참고문헌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 저자와의 인터뷰

 

 

 

 

 

 

 

 

 

 

 

 

1880년부터 1890년 7월까지 빈센트가 테오에게서 받은 금액은 약 1만 7,500프랑 정도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억 원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럼 연 평균 1천만 원이 되고 월 83만 원 정도 되는데, 싱글 남성이 시골에서 한 달 사는데 부족한 금액이 절대 아니다. 빈센트가 아를에서 살았던 2층짜리 노란 집의 월세가 15프랑(약 8~9만 원)이었고, 그가 즐겨 마시던 압생트는 1천원에서 5천 원 정도였다.

 

그럼 테오는 얼마나 벌었기에 빈센트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보냈을까. 테오의 월급 명세서와 세금 납부기록을 보니 1889년부터 1890년까지 세전 기본 월급이 333.35프랑 + 작품 판매 인센티브였다. 오늘날로 치면 기본급이 180만원이 넘는다.  테오가 가장 많이 벌었을 때인 1890년에 신고된 테오의 연봉은 한화로 4,550만 원. 빈센트에게 보내고 네덜란드에 계시는 어머니의 생활비와 용돈을 드리고, 그리고 남은 돈으로 테오네 세 식구가 비싼 파리 시내의 월세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빈센트는 한 달에 50만~100만 원 돈을 어디에 썼기에 항상 돈이 없어서 굶었단 말인가.

1) 우선 집 월세가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아를에서의 노란 집은 월 15프랑(8만원)이었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라부 여인숙 3층 다락방은 빈센트가 장기투숙자니까 하루에 3프랑(16500원)을  월 40여 만 원에 있었다고 치자.

2) 그리고 빈센트는 수시로 병원을 다녔는데 병원비와 약값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3) 또한 대표적인 지출요소에는 식사도 있었는데 시장에서 음식물을 1프랑 50상팀 어치를 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카페에도 종종 간 기록이 있는데, 크림이 들어간 우유 한 잔에 1프랑한다는  기록도 있고, 커피 두 잔만 마시며 일주일을 버텼다는 이야기도 있다.

4) 빈센트는 술과 담배도 즐겼다. 담배가격은 모르겠는데 압생트 가격은 25상팀에서 1프랑 정도 했다.

5) 책도 많이 봤는데 돈을 주고 산 것보다 빌려보거나 선물 받았다는 기록이 많다.

6) 물감과 미술재료도 사야 했는데 그 가격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대신 테오에게 재료를 보내달라고 리스트를 만들어서 편지에 적어 보냈다.

7) 빈센트가 살던 집에서 5분 거리에 창녀촌이 있었다. 그곳에 대한 금액은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