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는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잔느의 이 눈동자를 마주보기가 무서워서?
잔느는 또 그래서, 보란듯이, 모성애 가득한 순정녀라고 따라 죽어 보인 것인가?
─ 나뿐 놈, 비겁한 놈
─ 독한 년, 무서운 년
모디의 모델이 되어준 잔느가 모디에게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고 묻자,
모디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눈은 영혼의 창이다. 뇌 가운데 밖으로 드러난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모디의 모습에서 상반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상대를 알지 못한 채 상대를 그릴 수 없는 모디의 정직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눈동자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그의 나약함과 소극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눈동자는 우리 몸의 다른 부위가 동작하기 전 늘 예고편을 내보이고 있다.
입이 말하기 전에 눈동자는 이미 앞서 말한다.
그곳은 고통과 슬픔, 기쁨과 환희가 넘실대는 마음의 바다를 보여주고 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기 위해선 용기와 함께 상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연민이 필요하다.
눈동자에 담긴 마음이 고통이자 환희라는 걸 몰랐을까
모디는 그 시대 화가들이 으레 그렇듯 창녀들을 모델로 활용했다.
모디는 창녀를 하룻밤 상대로도 활용했는데 ‘원 나잇 파트너’의 눈동자는 거의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녀들이라고 희로애락애오욕이 없을 것인가.
또한 ‘마음 세상’에서 어찌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인가.
모디가 그들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들의 얼굴에 신문지를 덮은 채 섹스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그처럼 상대와 단절된, 그런 그림은 모디 죽음의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상대의 고통을 송두리째 들여다보는 것은 잔느가 그랬듯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긴 하지만,
만약 상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하나의 기쁨도 없다는 것을 모디는 몰랐던 것일까.
세상의 얘기들이 자기 안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바라보는 눈동자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이 고통과 환희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이 마음의 운명이며,
육체의 죽음이 결코 그런 마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모디는 이제는 알았을까.
눈동자에 담긴 이 마음이 바로 고(苦)이며, 또한 환희라는 것을.
(퍼온 글인데 글쓴이를 모르겠습니다.)
아, 글쓴이를 찾았습니다.
아래 게시물 출처.
빛마루 2008.12.07 01:18 http://blog.daum.net/saintj/13402858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Amadeo Modigliani 1884-1920
작년 경기도 일산 아람미술관에서 <열정, 천재를 그리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플 사랑전이 열렸습니다.
사슴처럼 목이 긴 여인을 그린 모딜리아니는 기억하지만 에뷔테른이란 이름은 생소하기만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잔느 에뷔테른(Jeanne Hebuterne 1898-1920) 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채 안됩니다.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8
<목이 긴 여인>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그림에서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로 남아달라.'
라는 모디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모디가 눈을 감은 다음 날, 만삭의 몸으로 투신한 잔느의 애절한 망부가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연인입니다. 그것도 보통의 연인이 아니라 18살에 열네살 연상인 32살의 모딜리아니를 만나 사랑한 연인이자 모델이자 모디의 마지막 생애 3년 동안 불꽃같은 예술샘이 쏟게 한 마중물이었습니다. 3년 뒤 모딜리아니가 죽음을 맞이할 때 잔느는 모디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 말고도 뱃속에 8개월 된 아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모디'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저주 받은 화가'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께요'
잔느는 모디가 병원에 실려가 사망한 지 이틀만에 친정 아파트 6층 창문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합니다. 그녀의 나이 불과 스물 두살 때였죠.
무명에다 낭인이나 다름 없는 모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엿한 집안에서 자란 잔느가 그렇게 자살하자 충격에 휩싸인 잔느의 가족들은 모디를 원망 하면서 둘의 시신이 함께 묻히는 것도 반대했습니다.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6년 폴란드 시인인 조로브스키와 친구가 되면서 모딜리아니는 유명한 화가로 자리잡게 되고 큐비즘의 영향으로 그의 초상화는 엄격한 구성과 간단한 선으로 특징짓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확고하게 찾아냅니다.
조로브스키의 집에서 그의 평생의 연인 잔느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굳건히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고생하던 중 1920년 지병인 폐결핵이 심해져 사망합니다. 그는 얼음장같이 찬방에서 피를 토한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었죠.
Portrait of Mario Varvogli 1920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방안에서 모딜리아니는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고, 이젤엔 오일이 채 마르지 않은 <바르고니의 초상>이 미완성인 채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만삭의 잔느가 웅크리고 앉아 죽어가는 모딜리아니를 조용히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모딜리아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고 잔느 자신이 잘 알고 있었죠.
다른 화가들과 달리 모딜리아니는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를 향해 마주보고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을 봐야만 일을 할 수 있다' 던 그가 이 작품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붓 놀림으로 자화상을 그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 작품이 유일한 그의 자화상입니다. 죽기 1년전 남긴 작품으로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이기에 자화상을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모델의 인상으로 보아 1920년 1월 24일(그가 죽은 날)은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카라 이탈리아 (그리운 이태리)'란 말을 남기고 그는 떠났죠.
레오폴드 즈보롭스키의 초상 1917
1916~1919년까지의 모디 작품들은 전적으로 즈보롭스키의 재정적 지원 아래 제작 가능했습니다.
즈보로프스키와 모딜리아니의 관계는 마치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와 같았으며 그 관계는 친구 이상으로 진한 것이었습니다.
즈보로프스키는 모딜리아니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의 예술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 주었죠.
모딜리아니와 잔느
수많은 모디의 지인들의 요청으로 10년 뒤 둘은 나란히 묻힐 수 있었지만, 잔느의 가족들은 여전히 둘의 관계를 부인해왔습니다. 그러다가 10년 전쯤에서야 잔느의 가족들이 모디의 작품과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역력히 드러나는 잔느의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열정이 천재성을 갉아 먹어 늘 술과 여자에 빠진 중독자
이번 전시회가 나를 자극하는 것은 모디와 잔느의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비롯한 숱한 비극적인 사랑이 더 사랑받는 이유는 이루어진 사랑보다 더 애틋하기 때문입니다. 모디는 천재성와 열정을 지닌 화가였지만, 늘 술과 여자를 떠나지 못한 중독자나 다름없었습니다. 현대 미술에서 모디는 천재화가로 그려지며, 잔느는 그에 딸린 주변 가십 정도 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화가보다 적은 70여점의 작품밖에 남기지 않은, 그것도 잔느와 만난 3년동안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잔느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9
잔느에게 천재화가 모디는 연인이자, 우상이자, 신이기도 했지만, 잔느는 늘 방황하는 모디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관계'란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지죠. 나이와 차이는 관념 속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잔느는 모디의 천재성 뿐만 아니라 모디의 연약함까지 사랑했고, 그의 모성 안에서도 아기처럼 잠들지 못하는 모디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모디가 생활고를 해결할 어떤 활로를 찾기를 커녕 다시 방탕한 삶에 젖어 자신을 죽여가고 있을 때 잔느는 죽음을 직감할 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 가운에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찔러 가슴에 피를 솟을 채 누워 있는 자화상도 있습니다.
왜 자신의 가슴을 찌른 자화상이었을까요?
지식은 머리에 살지만 사랑과 기쁨과 슬픔은 머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신이 머무는 곳 또한 가슴이죠. 신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내뿜고 있는 자비와 비탄의 바다도 가슴이죠. 모디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가슴이 그렇게 찢어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게 될 것
모디의 그림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그림에 눈동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눈동자가 없는 인간의 형상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해골, 즉 죽음입니다.
Girl with a Polka-Dot Blouse 1919
모디는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요? 모디의 모델이 되어 준 잔느가 모디에게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고 묻자 모디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게 될 것' 이라고 했습니다.
모디는 그 시대 화가들이 으레 그렇듯 창녀들을 모델로 활용했습니다. 모디는 창녀를 하룻밤 상대로도 활용했는데 이런 원 나잇 파트너들의 그림에는 눈동자가 없습니다. 모디가 그들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들의 얼굴에 신문지를 덮은 채 섹스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잔느의 자화상 <자살>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그처럼 상대와 단절된, 그런 그림은 모디 죽음의 예고편이었까..
상대의 고통을 송두리째 들여다보는 것은 잔느가 그랬듯이 가슴이 찟어지는 아픔이긴 하지만, 만약 상대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하나의 기쁨도 없다는 것을 모디는 몰랐던 것일까요? 세상의 애기들은 자기 안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바라보는 눈동자의 '관계'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말이죠. 이 고통과 환희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이 마음의 운명이며, 육체의 죽음이 결코 그런 마음을 죽일 수 없다는 거을 모디는 이제는 알았을까요? 눈동자에 담긴 이 마음이 바로 고통이며, 환희라는것을
Nude in a Cushion 1917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모딜리아니는 아프리카 가면과 원시주의에 매료되어 정확한 선과 섬세한 색상, 그리고 모델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왜곡된 묘사를 사용해 단순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표현해낸 화가였습니다.
1906년 파리에 도착 세잔, 피카소, 장 콕도등과 같은 아방가르데 예술을 접하게 되고 큐비즘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그립니다. 하지만 곧 파리의 밤생활에 매혹되 알콜과 약물, 섹스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자기파괴적인 성향은 어릴적부터 그를 괴롭혔던 페결핵이 자신을 일찍 죽게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생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는 술과 마약에 쩔어살면서 대중앞에서 나체로 다니기도 했으며 고흐처럼 비극의 화가의 상징이 되어 사후에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That Woman
The Little Peasant
'대부분의 곡선이 매우 가늘고 가벼워서 마치 영혼의 선 같다. 그 선들은 샴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우아하게 물결치며, 굵어지거나 추해져서 우아함을 상실하는 법이 절대로 없다. 모델의 얼굴을 왜곡하여 길게 늘인 것은 모딜리아니가 아니다. 비대칭을 강조하고, 눈동자 없는 휑한 눈을 그리고, 목을 길게 만든 것은 모딜리아니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이미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는 라 로통드 카페에 앉아 우리를 그리고, 바라보고, 사랑했으며, 그런 식으로 우리와 논쟁을 벌였다. 그의 데생은 말없는 대화 즉, 그의 머릿속에 있는 선과 우리의 존재 사이의 문답이었던 것이다.'
- 즈보로프스키 <모딜리아니를 추억하며>
어? 같은 글이 또 있넹?
[마음산책:조현] 모딜리아니는 왜 눈동자 그리기를 꺼렸나
전시뉴스 2008.01.28 21:37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 보러가기 : http://well.hani.co.kr/board/view.html?uid=228975&cline=1&board_id=jh_mind
![]() 모딜리아니 <어깨를 드러낸 잔느> |
그에게 그것은 ‘영혼’…정직이었을까 나약이었을까
연인이자 동료인 14살 연하 잔느, 죽음까지 동행
경기도 일산 아람미술관에서 <열정, 천재를 그리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전이 열리고 있다. 3월 16일까지다. 사슴처럼 목이 긴 여인을 그린 모딜리아니는 기억하지만 에뷔테른이란 이름은 생소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잔느 에뷔테른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채 안된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연인이다. 그것도 보통의 연인이 아니라 18살에 열네살 연상인 32살의 모딜리아니를 만나 사랑한 연인이자 모델이자 모디의 마지막 생애 3년 동안 불꽃같은 예술샘이 쏟게 한 마중물이었다. 3년 뒤 모딜리아니가 죽음을 맞이할 때 잔느는 ‘모디’와의 사이에 낳은 한 아이 말고도 뱃속에 8개월 된 아이를 갖고 있었다. (‘모디’는 친구들이 불려준 별칭. ‘저주 받은 화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18살에 만나 마지막 3년 예술혼 ‘마중물’…이틀만에 투신으로 뒤따라
잔느는 모디가 병원에 실려가 사망한 지 이틀만에 친정 아파트 6층 창문에 몸을 던져 자살해 모디의 뒤를 따랐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두살 때였다. 무명에다 낭인이나 다름 없는 모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엿한 집안에서 자란 잔느가 그렇게 자살하자 충격에 휩싸인 잔느의 가족들은 모디를 원망하면서 둘의 시신이 함께 묻히는 것도 반대했다. 수많은 모디의 지인들의 요청으로 10년 뒤 둘은 나란히 묻힐 수 있었지만 잔느의 가족들은 여전히 둘의 관계를 부인해 왔다. 그러다 10년 전쯤에서야 잔느의 가족들이 모디의 작품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역력히 드러나는 잔느의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열정이 천재성 갉아먹어 늘 술과 여자에 빠진 중독자
이번 전시회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모디와 잔느의 사랑을 담은 기획전인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비롯한 숱한 비극적인 사랑은 늘 이루어진 사랑보다 못이루어진 사랑이 더욱 많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향수가 더욱 많은 인간들에겐 애틋한 마음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 모딜리아니(왼쪽)와 잔느 |
우리에게도 이뤄지지 않은 사랑의 비원을 안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이 있었다. 모디와 잔느가 죽은 지 6년 뒤 윤심덕은 일본에서 귀국하던 배에서 유부남과 못이룬 사랑을 괴로워하며 연인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모디는 천재성과 열정을 지닌 화가였지만, 늘 술과 여자를 떠나지 못한 중독자나 다름 없었다. 현대 미술에서 모디는 천재화가로 그려지며, 잔느는 그에 딸린 주변 가십 정도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화가보다 적은 70여점의 작품밖에 남기지 않은, 그것도 잔느와 만난 3년 동안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잔느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잔느에게 천재화가 모디는 연인이자 우상이자 신이기도 했지만, 잔느는 늘 방황하는 모디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관계’란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나이와 차이는 관념 속에만 존재할 뿐.
그 연약함까지 사랑했기에 가슴을 칼로 찌른 자화상 그린 잔느
![]() 잔느 <자살> |
잔느는 모디의 천재성 뿐만 아니라 모디의 연약함까지 사랑했고, 그의 모성 안에서도 아기처럼 잠들지 못하는 모디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모디가 생활고를 해결할 어떤 활로를 찾기는 커녕 다시 방탕한 삶에 젖어 자신을 죽여가고 있을 때 잔느는 죽음을 직감할 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 가운데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찔러 가슴에 피를 솟은 채 누워 있는 자화상이 있다.
왜 극약을 먹거나 동맥을 자르거나 목을 매지 않고 자신의 가슴을 찌른 것일까. 지식은 머리에서 살지만 사랑과 기쁨과 슬픔은 머리에 머물지 않는다. 신(神)이 머무는 곳 또한 가슴이다. 신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내뿜고 있는 자비와 비탄의 바다도 가슴이다. 모디를 바라보면서 그의 가슴이 그렇게 찢어진 것이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게 될 것”
모디의 그림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그림에 눈동자가 없다는 것이다. 눈동자가 없는 인간의 형상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해골이다. 즉 죽음이다. 모디는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모디의 모델이 되어준 잔느가 모디에게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고 묻자, 모디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눈은 영혼의 창이다. 뇌 가운데 밖으로 드러난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모디의 모습에서 상반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상대를 알지 못한 채 상대를 그릴 수 없는 모디의 정직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눈동자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그의 나약함과 소극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눈동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변화무쌍한 마음의 스크린이다. 눈동자는 우리 몸의 다른 부위가 동작하기 전 늘 예고편을 내보이고 있다. 입이 말하기 전에 눈동자는 이미 앞서 말한다. 그곳은 고통과 슬픔, 기쁨과 환희가 넘실대는 마음의 바다를 보여주고 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기 위해선 용기와 함께 상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연민이 필요하다.
![]() 모딜리아니 <모자를 쓴 잔느> |
눈동자에 담긴 마음이 고통이자 환희라는 걸 몰랐을까
모디는 그 시대 화가들이 으레 그렇듯 창녀들을 모델로 활용했다. 모디는 창녀를 하룻밤 상대로도 활용했는데 ‘원 나잇 파트너’의 눈동자는 거의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녀들이라고 희로애락애오욕이 없을 것인가. 또한 ‘마음 세상’에서 어찌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인가. 모디가 그들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들의 얼굴에 신문지를 덮은 채 섹스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그처럼 상대와 단절된, 그런 그림은 모디 죽음의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상대의 고통을 송두리째 들여다보는 것은 잔느가 그랬듯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긴 하지만, 만약 상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하나의 기쁨도 없다는 것을 모디는 몰랐던 것일까. 세상의 얘기들이 자기 안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바라보는 눈동자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이 고통과 환희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이 마음의 운명이며, 육체의 죽음이 결코 그런 마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모디는 이제는 알았을까. 눈동자에 담긴 이 마음이 바로 고(苦)이며, 또한 환희라는 것을.
How are you doing now, Modi?
모디와 잔느의 그림 슬라이드 배경음악으로 깐 것은 ‘태양의 서커스’가 부른 Querer(좋아합니다)입니다.
오늘은 가슴이 에이도록 한 영혼을 사랑한 잔느에게 이 노래를 바치고 싶군요.
Querer
Dentro del corazon
Sin pudor, sin razon
Con el fuego de la pasion
Querer
Sin mirar hacia atras
Atraves de los ojos
Siempre y todavia mas
Amar
Para poder luchar contra el viento y volar
descubrir la belleza del mar
Querer
Y poder compartir nuestra sed de vivir
El regalo que nos da el amor es la vida
Querer
Entre cielo y mar
Sin fuerza de gravidad
Sentimiento de libertad
Querer
Sin jamas esperar
Dar solo para dar
Siempre y todavia mas
Amar
Para poder luchar contra el viento y volar
descubrir la belleza del mar
Querer
Y poder compartir nuestra sed de vivir
El regalo que nos da el amor es la vida
Querer
Dentro del corazon
Sin pudor, sin razon
Con el fuego de la pasion y volar
좋아합니다
가슴 속에서
어느 부끄럼없이, 그 어느 이유없이
열정에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좋아합니다
뒤돌아보지 않으며
눈동자 저 너머로
언제나, 항상 더
사랑합니다
바람에 맞서 싸워 날기 위해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리라.
좋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향한 갈증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니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바로 삶이 되리.
좋아합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중력의 힘조차 없이
자유스러움을 느끼며.
좋아합니다.
그 어느 기다림도 없이
오직 주기 위해 드리리다.
언제나, 항상 더
사랑합니다.
바람에 맞서 싸워 날기 위해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아갈 것이니.
좋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향한 갈증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바로 삶이 되리라.
좋아합니다.
가슴 속에서
어느 부끄럼없이, 아무런 이유없이
열정에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그림 출처 : 고양 아람 미술관의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전 도록.)
모딜리아니는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직접 그려보면 그 맘을 알 수 있으려나......
프란시스코 고야가 손을 못그려서 뭉갰듯이, 혹시 어처구니 없게도,
눈동자를 그릴 테크닉이 부족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