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Ⅱ 2016. 1. 8. 18:39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늘 어린아이로 지내는 것과 같다.

지나간 시대의 수고에서 아무런 효용도 얻지 못하면 세상은 늘 지식의 유아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소셜 미디어 2000년

 

 

 

 

 

 

머리말 - 키케로의 웹 -

 

 



1. 과거에서 찾은 소셜 미디어의 토대: 인간은 왜 공유하는 습성을 타고났을까?

"풍문 없으면 사회도 없다." - 로빈 던바

 

 

 


2. 로마의 미디어: 최초의 소셜 미디어 생태계  

 

 "그대는 나의 편지가 널리 유포되었다고 말하는군. 나는 개의치 않네. 사실 여러 사람에게 사본을 만들라고 나 자신이 허락했다네."

 

- 키케로, 아티쿠스에게 보낸 편지

 

 

 


3. 루터와 바이럴 효과: 혁명에서 소셜 미디어의 역할 (1)

 

"교황은 인쇄술을 몰아내거나, 자신이 다스릴 신세계를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세계에서 인쇄술이 교황을 반드시 몰아내고야 말 것이다."

 

- 존 폭스, 행적과 유적(1583)

 

 

 

                                          Library of Sankt Gallen in Sankt Gallen, Switzerland

 

 

로마제국이 무너진 뒤 6세기부터 12세기까지의 암흑의 시대에는 문서의 유통이 급감했다. 심지어 지배층의 문자 해독률도 뚝 떨어졌다. 교회에서 쓰는 글은 계속 필사되었지만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여러 사람이 몇 달 몇 해를 매달려야 했다. 책의 원고는 정교하게 채색되었으며 놀라우리만치 아름답고 복잡했다. 수도원에는 필사 전용방이 있었는데 이를 '스크립토리움'이라 한다. 수도사는 책을 필사하면서 낭독했다. 일종의 기도나 명상이었는데 그러면서 책의 지혜를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나 양 한 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는 커다란 책 2~4쪽 분량에 불과했기 때문에 책에 따라서는 가축 떼 전체의 가죽을 써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책의 가치가 어찌나 컸던지 사제나 수도원이 예배서나 미사 경본을 팔아서 포도밭이나 넓은 땅을 사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11세기 후반에 대학이 발전하고, 중국에서 발명되어 12세기 아랍을 거쳐 유럽에 도입된 종이는... (중략) 그러나 필사는 힘들고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142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장서가 122권에 불과하였다.

 

(……)

 

루터는 면벌부(免罰符)에 대한 토론 제안을 비텐베르크 대학의 게시판 격인 비텐베르크 城 교회 출입문에 붙이자, 라틴어로 씌어진 루터의 「95개 논제」는 학계 바깥으로까지 필사본으로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수완 좋은 인쇄업자가 금세 독일어 번역본을 내놓은 덕에 열흘 남짓에 독일 전역에 퍼지더니 4주 안에 유럽의 모든 기독교 세계에 전파되었다. 마치 천사가 전령이 되어 뭇사람들 앞에 가져다 놓은 듯했다.

1520년부터 1526년까지 독일어권에서 출간된 소책자 7,500종 중에서 약 2,000종은 루터가 쓴 소책자의 몇십 종이었다. 인기가 최고조에 이른 1523년에는 루터의 소책자가 400판 가까이 출간되었다. 루터의 소책자 중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600만 부가  첫 10년 동안 인쇄되었다.

루터는 인쇄술이 신이 선물이며 그 덕에 한 세기 전에 후스(* 후스는 이단으로 몰려 1415년에 화형당했다)가 실패한 곳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4. 시를 통한 실천: 자기표현과 자기 홍보를 위한 소셜 미디어  

 

"인쇄기가 찍어내는 것을 우리는 보관하기 좋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손으로 쓴 것을 더 숭배하지. 이 인쇄액으로 염색된 책은 먼지와 나방 때문에 책꽂이에 치워 두지만 펜으로 쓴 책은 거룩한 은총을 입어 엣 선조들의 옆자리를 차지한다네."

 

 

 


5. 참과 거짓이 싸우게 하라: 소셜 미디어 규제의 과제  

 

"나에게 어떤 자유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

 

 

   


6. 커피하우스도 그랬다지: 소셜 미디어는 어떻게 혁신을 증진하는가

 

젊은 신사나 가게 주인이 커피하우스보다 더 건전하고 생산적으로 저녁에 한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들은 이곳에서 말동무를 만나는데, 커피하우스의 관레상 이곳 사람들은 딴 곳처럼 냉소적이거나 소심하지 않으면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 『커피하우스 옹호론』(1675년)

 

유럽의 모든 도시 중에서 커피하우스를 가장 빠르고 열렬하게 받아들인 곳은 1652년 런던이었다. 17세기 말에는 런던에서만 550곳이 성업중이었다. 1686년 파리 최초의 커피하우스 <카페 프로코프>가 문을 연 뒤로 1800년에는 800곳에 이르렀다. 대도시의 커피하우스는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이 전문적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7. 인쇄의 자유: 혁명에서 소셜 미디어의 역할 (2)  

 

"사상의 자유 없이는 지혜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공중의 자유 같은 것은 표현의 자유 없이는 있을 수 없다."

 

 

 


8. 인민의 감시병: 독재, 낙관론, 소셜 미디어

 

" 수많은 광적인 소요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말단 점원에게서, 변호사에게서, 클럽과 카페를 전전하며 사람들을 들쑤시는 이름 없는 작가와 굶주린 필경사에게서 비롯한다. 오늘날 군중을 무장시키는 무기를 벼리는 곳이 바로 이 모루다."

 

검열이 완화되자마자 소책자가 쏟아져 나왔다. 1788년 말까지 1,500종 이상의 소책자가 출간되었으며, 삼부회 대표를 선출한 1789년의 첫 넉 달 동안 2,600종이 또 출간되었다. 이 해에 1789년 5월까지 인쇄된 소책자의 총 부수는 1,000만 부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토론으로 이어졌다.

 

 

 


9. 매스 미디어의 부상: 집중화가 시작되다

 

"매스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상으로만 공론장이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신문은 현지의 수공업적 간행물에서 거대하고 강력하고 수익성 좋은 산업의 생산물이 되었다. 거대 미디어 조직이 미디어 지형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미디어 소유주는 여론에 영향을 미칠 효과적인 수단을 손에 넣었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환경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상품이 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19세기보다 더 거대한 변화가 찾아와 미디어 환경의 집중화가 더더욱 심화되었다.

 

 


10. 소셜 미디어의 반대쪽: 방송 시대의 미디어

 

라디오의 집중화는, 미국에서는 광고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엘리트의 가치를 보존하고 진작시키기 위해, 독일에서는 나치스 선전을 전파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유야 무엇이든 그 결과는 역사상 가장 집중화된 미디어였다. (……)

텔레비젼은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미디어가 되었다. 깜빡거리는 화면 앞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을 일컫는 '카우치 포테이토'가 문화적 상투어로 자리 잡았다. 오로지 단방향의 수동적 소비자에 줄과할 뿐, 정보를 창조하고 배포하고 공유하고 재창조하고 이를 서로 교환하는 미디어 체계와는 극과 극이다. 텔레비젼은 소셜 미디어와 정반대다.

 

 


11. 소셜 미디어의 부활: 아파넷에서 페이스북까지

 

인터넷은 지금껏 발명된 것 중에서, 표현을 증폭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인터넷은 기껏해야 아주 히미하게 들렸을 뿐일 목소리에 지국적 메가폰을 달아준다. 전통적인 단방향의 매스미디어로는 구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양한 관점과 대화를 유도하고 촉진한다.

방송 모델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집중화된 매스 미디어가 150년 동안 미디어의 일대일 측면을 압도했지만 이제 진자의 추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소셜 형태의 미디어가 인터넷의 위력에 힘입어 극적으로 부활했다. 이것은 권력을 쥔 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의미와 장기적 결과를 현실화하는 것은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집단적 실험이다.

 

 



후기: 역사는 스스로 리트윗한다

 

오늘날의 블로그는 소책자의 새로운 형태이다. 아이디어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이동하면서, 방송 미디어의 특권적 병목에서 정체되지 않고 소셜 고리로 연결된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따라 퍼지도록 한다. 인터넷 시대 소셜 미디어의 부활은 엄청난 변화를 나타내며, 여러 면에서 예전의 방식으로 복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