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이 왜 입체파의 선구인가
세잔 - 「사과와 앵초 화분이 있는 정물」, 1890. 캔버스에 유채, 92.4 x 73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잔은 "우선 팔레트에서 모든 물감들의 농도를 정확하게 측량"했고, 그것을 이용해 그의 말에 따르면 궁극의 주제인 과일과 구겨진 천 주름의 형태를 잡았다. 그가 그린 많은 정물화들에서는 하나의 그림에 다양한 원근법적 시점이 혼합된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과와 앵초 화분이 있는 정물」에서는 중간에 놓인 하양 천으로 분리되어 있는 테이블 앞쪽의 양쪽 모서리가 일직선상에 위치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무리 지어진 과일들을 보면 어떤 것들은 관찰 시점이 다른 것들에 비해 좀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분 또한 어떤 부분은 앞에서 본 모습이고 어떤 부분은 조금 위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2차원적인 화면에서 사물의 3차원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세잔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이러한 사물의 양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여드는 단일시점의 원근법 구도에 균열을 주었다. 이러한 세잔의 시도는 향후 입체주의 화가들에 의해 채택되어 발전되었다.
이 그림은 한때 모네가 소장하고 있었다. 모네는 세잔의 그림을 가장 많이 갖고 있던 소장가이기도 했다. 이 그림은 170점이 넘는 세잔의 정물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오늘날 세잔의 작품이 몇 점이었는지 정확히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잔의 거래상이었던 볼라르에 따르면, 畵商인 탕기 영감이 재료값 대신에 그림을 받아오면 , 사람들은 "잔뜩 쌓여 있는 세잔의 그림 더미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작은 그림들은 한 세트에 40프랑, 큰 그림은 한 세트에 100프랑을 주고 사 갔다. 탕기는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잘라서 팔았다. 탕기가 가위를 들고 작은 '모티프들'을 잘라 팔면, 손님이 20프랑을 건넨 후 세잔이 그린 '사과 세 개'를 들고 유유히 가게를 나서는 기가 막힌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출처. 『우리가 알아야 할 인상주의 그림 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