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 <눈먼 소녀>
존 에버렛 밀레이 The Blind Girl Oil on canvas, 1854-1856 32 1/2 x 24 3/8 inches (82.6 x 62.2 cm)
Birmingham Museums and Art Gallery, Birmingham
비가 오고 난 후 흙 냄새, 풀 냄새가 가득한 언덕바지 草場에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다.
이 마을 저 마을 악기 연주하며 구걸하고 다니던 두 자매가 길가 풀숲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다.
남루한 행색에 앞을 못 보는 소경이지만 이 순간만은 행복하다.
언덕 너머 하늘을 곱게 수놓은 오색 쌍무지개가 이들의 행복을 상징한다.
연주하던 손풍금 콘체르티나를 잠시 무릎 위에 두고 풀 한 포기를 손으로 어루만진다.
향긋한 풀냄새가 코 끝을 스치면서 황홀한 생명의 기운이 전신을 휘감는다.
동생이 떨어질세라 가슴에 기대게 하고 손깍지를 꼭 끼고 있으니 안심이다.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면서 문득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가 곁에 있다는 것과 살아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세상을 보는 것만 행복이 아니라 어쩌면 안 보는 것이 더 행복인지 모른다.
밀레이가 그린 <눈먼 소녀>에는 인간 삶의 비극과 행복이 미묘하게 교차한다.
(전광식,『세상의 모든 풍경』)
피붙이라...... 피붙이...... 당신에게 피붙이는 어떠하신가?
저 어린 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언니 손을 잡고 다닐까? 언니에게 동생은?
이 피붙이의 결말은 어찌 되었을까?
에피와 나눈 영화 같은 사랑
밀레이의 인생이 큰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요 비평가였던 존 러스킨과의 만남이었다.
러스킨은 그가 구입한 존 브랫의 <아오스타의 계곡> 등과 같은 라파엘전파의 작품을 선호했을 뿐 아니라
이 새로운 화풍을 열정적으로 변호하고 있었다.
러스킨과 교류하면서 밀레이는 자연히 그의 부인 에피 그레이를 소개받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밀레이는 에피를 자신의 작품 <1746년의 방면서>의 모델로 삼았다.
이 작품에서 에피는 하룻밤의 잠자리를 허락한 대가로 남편을 석방시킨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등잔한다.
그런 까닭도 모르고 사지에서 귀환한 남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지만
아이를 안은 채 다른 손으로 남편의 석방 명령서를 받는 부인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깊은 슬픔이 흐른다.
맨발은 그녀의 순결을 상징하고, 아기를 안으며 가슴에 두른 파란 천은 그녀의 숭고함을 상징한다.
바로 이 장면은 머지않아 러스킨과의 불행한 결혼의 굴레에서 그녀가 해방되는 것의 예표가 아니었을까.
1853년 밀레이는 러스킨 가족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별장이 있던 스코틀랜드로 갔다.
그곳에서 무려 넉 달을 함께 기거하면서 이들 부부를 그리곤 했다.
하지만 밀레이는 이미 에피의 눈빛에서 깊은 슬픔과 고민을 읽고 있었다.
밀레이의 고독한 눈빛과 에피의 슬픈 눈빛이 마주쳐 두 사람 사이에는 위험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실 에피는 러스킨과 결혼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러스킨이 극심한 결벽주의자로
사랑하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러스킨의 태도로 인해 여전히 육체적 순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그녀의 부모에게 알려지게 되어 결국 1856년 그녀와 러스킨의 결혼은 무효화되었다.
그해 밀레이는 세간의 비난과 죄책을 떨쳐버리고 에피와 결혼한다.
이 사건은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영국에서 우정과 사랑에 대한 수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