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미술 이야기 (책)

『예술이 되는 순간』

알래스카 Ⅱ 2015. 7. 31. 20:11

 

 

 

 

 

 

여기 예술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있다. 평생 예술에 대한 글을 써온 저명한 비평가 마틴 게이퍼드와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 필립 드 몬테벨로다. 삶의 대부분을 미술을 바라보며 보낸 두 사람이 함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미술관 관장 필립은 자신이 근무하던 미술관을 벗어나 예술 작품을 보고, 평소 미술에 관한 글을 쓰던 마틴은 평론가로서 작품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순전히 자유로운 감상자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아마추어amateur’로서 예술을 감상한다. 예술품을 바라보며 어떤 반응과 감흥을 느끼는지, 미술품을 어떻게 경험하고 감상하는지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자신을 통해 발현될 때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 : 필립 드 몬테벨로
저자 필립 드 몬테벨로(Philippe de Montebello)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재임했던 관장이다. 그는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이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수훈자이며 종종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문화 정책에 대한 조언을 통해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뉴욕대학교 예술대학의 피스크 킴볼Fiske Kimball 교수이자 프라도 미술관의 명예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 마틴 게이퍼드
저자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는 〈스펙테이터)〉와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미술평론가를 거쳐 현재 〈블룸버그 뉴스〉의 수석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고흐 고갱 그리고 옐로 하우스》, 《사랑에 빠진 컨스터블: 사랑, 풍경, 돈 그리고 훌륭한 화가 만들기》, 《푸른색 스카프를 맨 남자: 뤼시앵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위한 모델을 서다》를 저술해 호평을 받았다. 

 

 

머리말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노란색 벽옥 입술

 
1 피렌체의 오후
2 홍수와 키메라
3 바르젤로 미술관에 빠지다
4 장소성
5 두초의 성모
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카페에서
7 웅장한 컬렉션
8 예술적인 감성 교육
9 루브르 미술관에서 마음을 잃다
10 군중과 미술의 힘
11 프라도 미술관의 천국과 지옥
12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타인들과 함께 미술을 보는 지옥
13 티치아노와 벨라스케스
14 시녀들
15 고야: 외도
16 루벤스와 티에폴로, 그리고 다시 고야
17 로테르담: 미술관과 불만
18 마우리트하위스 미술관의 스타 찾기
19 이것을 어디에 두겠습니까?
20 파리의 우림 탐험
21 영국 박물관의 사자 사냥
22 대중정에서의 점심 식사
23 파편들 

 

수록 작품 목록

 

 

 

 

 

필립 :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미술관은 관광산업이 고안해 낸 여행 일정표의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은 루브르 미술관으로 들어가 미켈린젤로의 <노예들>에서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거쳐 <모나리자>까지 질주한 다음 밖으로 나와서 개선문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마틴 : 사람들은 고상한 체하며 그런 획일화된 관광을 하는 관람객들이 행진하듯 지나치며 가치 있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대표적인 표본이든 아니든 간에 전세계의 점점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미술관에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필립 : 물론 거기에 반대의 주장을 펼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문제는 세계 인구가 수십억이고, 미술관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수 이상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크기도 중요합니다. 내가 얀 반 에이크의 작은 패널화 앞에 섰을 때 동시에 몇 사람이 그 작품을 함께 볼 수 있겠습니까?

 

마틴 :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쥐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다 빈치의 <베누아의 성모> 앞에 여행단의 긴 행렬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작품을 보기 위해 가이드의 등 뒤에 있는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림과 가까이 있었지만 작품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필립 : 그림의 세계 안으로 충분히 빠져들어 여러 다양한 의미층들을 가려내려면 적어도 몇 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몇 분은 미술관에서는 영원과 같은 시간입니다. 작품 앞에서 5~6초간 서 있어서는 표면을 훝지도 못합니다.  나는 베토벤의 4중주 한 곡을 바로크 제단화를 흘긋 보듯이 들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거대 도시의 중심부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규모가 작은 이탈리아의 소도시가 붐비지 않는 경우를 보면 그렇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뛰어난 미술 작품 중 대다수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번잡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따라서 적절한 관람의 측면에서 볼 때 최악의 조건에 놓여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미술관에 내재하는 많은 역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미술작품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박수를 보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미술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고요한 대화는 그 작품을 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열망과 영원한 갈등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마틴 : 대부분 원본보다는 책이나 태블릿 PC,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에서 미술작품의 사진을 보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21세기 예술 생활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원본 앞에서는 불가능한 세밀한 수준에서 그림을 볼 수 있는 기술적인 도구들이 존재합니다. 원본 앞에서라면 확대경이 필요할테고, 그러면 경보기가 울릴 수도 있습니다.

 

필립 : 그렇게 확대해서 보는 기능 중 상당수가 무척 매력적이고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주 크게 확대된 세부 묘사를 보면서 큰 즐거움을 얻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꼈습니다. 나는 몇 시간이고 그것을 볼 수 있고 허리도 아프지 않을테지만 그것은 실제로 작품 잎에 서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나는 비엔나에 있는 브뤼헐의 작품 <갈보리 언덕으로 가는 길>을 다룬 마이클 깁슨의 책《방앗간과 십자가》를 보고 작품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먼 원경에 있는 놀랍도록 명확한 아주 작은 인물들을 발견하면서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육안으로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든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됩니까? 결국 그것은 많은 작품 관리자들이 돋보기나 현미경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보는 방식일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