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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유화 소재)

조영남 그림을 베껴서 팔아볼까?

 

 

 

 

이게 조영남의 진짜 솜씨인가?

아니면 어린아이가 흉내를 낸 건가?

위에 매달은 걸 보면 전시했단 건데, 설마 이걸 전시회에 내놓진 않았을 터이니,

????????

아, 그렇다면 조영남의 그림은 그림이겠구나.

스티로폼에 그렸다해도 말이지.

내가 잘못 봤네. . . 헐

 

 

 

 

 

 

 

 

 

 

알래스카 Ⅱ   2020.05.28 19:54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이 그림 대작 의혹과 관련, 직접 입장을 밝히며 자신의 혐의를 재차 부인했다.
대법원 제1부는 28일 오후 2시 조영남의 그림 대작 의혹 관련 사기 혐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조영남은 피고인 자격으로 대법원 상고심 공판기일에 참석했다. 조영남은 최후 변론에서 "5년 동안 이번 일로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하다"라고 운을 떼고 "평생 가수 생활을 했지만 내가 다닌 용문고등학교에서 미술 부장을 역임했을 만큼 미술을 좋아했고 현대미술을 독학으로 배워서 광주비엔날레, 예술의 전당 등에서 수 차례 전시 경력을 갖게 됐다"라고 말했다. 조영남은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를 갖고 세계적인 미술 화가가 된 것에 착안해 나 역시 화투를 갖고 작품을 만들게 됐다"라고 말했다.

조영남은 "방송을 통해 그림 작업 과정도 공개했다"라며 "현대 미술을 공부하며 음악과 미술이 똑같은 예술이지만 실현 방법은 정반대라는 점이었다. 음악은 엄격한 규칙이 있지만 미술에서는 아무런 규칙이나 방식이 없이 100% 창의력의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조영남은 "피카소나 반 고흐도 그림은 이렇게 그러야 한다고 한 번도 말한 적 없다"라며 "내 화투 그림은 그림을 그린 방식보다 그림에 딸린 제목에 주목해야 한다. 내 그림은 '극동에서 온 꽃'이나 '항상 영광', '겸손은 힘들다', '호밀밭의 파수꾼' 등 개념 미술에 가깝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은 사진 기술 이전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다.

조영남은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더 많은 겸양을 실천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달라"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조영남은 마지막으로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라고 했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 봅니다"라고 밝혔다.

조영남은 대작화가 송씨 등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약간의 덧칠 작업만 거쳐 자신의 서명을 넣은 뒤 총 17명에게 그림 21점을 팔아 1억 535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2015년 6월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조영남은 선고에 불복, 항소장을 제출했고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조영남은 2009년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인 송모씨에게 1점당 10만 원 상당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송씨가 임의대로 회화로 표현하게 하거나 기존 자신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달라고 하는 등의 작업을 지시하고 그때부터 2016년 3월까지 송씨로부터 약 200점 이상의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의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했음에도 이러한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실상 송씨 등이 그린 그림을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피해자들에게 그림을 판매해서 그 대금 상당의 돈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기혐의 벗은 조영남,

─ "대법관과 검사들 총동원돼 날 화가 만들어줘. 하하하"

 

 

[대법원 무죄 판결 조영남 돌직구 인터뷰]


"판결 뒤 최소 100통 이상 축하 전화 받아. . .
재판 기간 중 딸도 그림 조수로 합류해. . .
딴따라가 고고한 미술하니 곱게 안 보는 것. . .
조수에게 점당 10만원 박하다 생각 안 해. . .
전업작가들 좌절감엔 미안한 마음 있어"

 

 

 

 

가수 조영남씨가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 작업실에서 최근 작업한 화투짝 그림들을 모아놓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세워서 들고 있는 그림이 2018년 딸 은지씨가 조수가 되어 도상을 대신 그려준 작품이다. ‘조은지로부터 온 꽃’이란 작품 제목을 하단에 적어놓았다. 그는 이 작품들을 지난달 28일 대법원이 판결 전 마련한 공개변론에 들고 나갔으나 발언 시간에 쫓겨 작품을 내놓고 설명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거실에서 계속 통화 중이었다.

“대법관들 검사들이 총동원돼 나를 화가로 만들어줬어. 고마워…하하…”

2016년 작품 대작 사건에 연루돼 사기죄로 기소됐다 지난 25일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혐의를 벗은 가수 조영남(75)씨. 판결 다음 날인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별로 고생한 게 없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이어지는 축하전화에 응대했다. 판결 뒤로 최소 100통 이상의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는 90년대 이래 화투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활동하다 2016년 조수를 시켜 그림을 그리하게 한 뒤 작품을 팔아 1억원대의 돈을 챙겼다는 이유로 4년여간 사기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대외활동만 못 했을 뿐 그림과 글을 더 열심히 그리고 썼으며, 딸도 그림 조수로 합류해 가족관계 ·대인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고 자랑했다.

 

 

가수 조영남씨가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 작업실에서 최근 작업한 화투짝 그림들을 모아놓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세워서 들고 있는 그림이 2018년 딸 은지씨가 조수가 되어 도상을 대신 그려준 작품이다.

 

이번 판결의 취지는 ‘자신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조수가 대신 그림을 그리게 하는 대작은 사기가 아니며, 그 사실을 구매자에게 고지할 의무도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국 현대 미술사에 획을 긋는 사법적 판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씨 또한 이번 판결이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아마추어 미술 애호가였던 한 사람을 전업작가로 승격시켜준 케이스죠. 조수 쓰는 작가들은 눈치 안 보고 편안해질 것이고. 미술사를 보면 미대 공부를 하나도 안 한 사람이 대가가 된 경우가 많아요. 나도 미대를 안 다니고 학원도 안 다녔어. 그래도 하니까 되잖아요. 아트라는 게 그래야지요. 나름대로 열정을 갖고 오랫동안 꾸준히 하면 되죠.”

 

자신만만해 하는 그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대법원 판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적대적이고 비호감 일색인 반응이 압도적인데, 이유가 무엇일 것 같냐는 물음이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정색하고 말했다. “대중가수가 현대미술이란 영역을 왈가왈부하는 게 기분 나쁜 거죠. 딴따라가 왜 고고한 미술까지 하냐 이거지. 난 평생 그런 편견 속에 살아왔어요. 판결이 반가운 사람들, 날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지만 점잖으니까 댓글 안 올려요. 나쁘게 보는 사람들이 댓글 올리는 거고. 이렇게 말하면 또 난리 치겠지.”

 

 

 

 

 

가수 조씨가 거실에 쌓아놓은 최근의 근작 앞에 주저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화상과 이상의 시를 적은 글씨 작품, 흑싸리 화투짝을 담은 그림 등이 보인다.

 

이번 판결에 대해 미술계에선 작품의 가치를 사법적인 잣대로 따지는 건 문제가 있기에 당연한 판결이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조수를 두는 것이 미술계 관행”이라는 애초 그의 발언에 대해서는 지금도 분노하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그는 “지금도 두루두루 다 아는 사실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2016년 사건이 불거졌을 때 미술계 11개 단체에서 조수 쓰는 것이 관행이라는 발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것 알아요? 그런데 기각, 각하됐어요. 그걸 제일 걱정했는데…. 거들떠볼 필요도 없다는 뜻이에요. 조수를 두는 건 문젯거리가 안 돼요. 당연하지. 바쁜 화가가, 잘 나가는 팝아트 화가가 화투짝을 어떻게 일일이 그려요?”

 

그는 약간 흥분하더니 최근 딸이 조수로 참여해 대작한 화투 그림을 들고 와 과거 대작 작가의 그림과 비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훨씬 세밀하게 잘 그렸지만, 엄연히 내 작품이지.”

 

작업에 동참하고 그림의 대부분을 그린 대작 작가에게 1점당 10만원밖에 안 준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실상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대작했던 ㅅ씨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여비가 없고 생계도 막연하다고 했어요. 처음엔 3백만원 선금도 줬고 작업공간도 제공해주면서 나름대로 돌봐줬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대작 작가를 구할 경우, 소품은 시간당 7000~8000원, 4시간에 4만원에 할 수 있어요. 그게 미술계 대작의 실상인데, 제가 박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수 조씨가 거실에 쌓아놓은 최근의 근작 앞에 주저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화상과 이상의 시를 적은 글씨 작품, 흑싸리 화투짝을 담은 그림 등이 보인다.

대작 작가가 조씨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색깔이나 구성 등에 독창성을 가미해 작업했다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협업관계라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서도 그는 “법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화투짝 아이디어가 나한테서 나왔는데, 어떻게 법적으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코카콜라 병을 그린 앤디 워홀의 작품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듯, 그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봐요. 일부 미술단체에서 다시 저작권 소송을 준비한다는데 신경쓰지 않아요.”

 

 

 

 

6월 29일 정식 출간되는 조씨의 신간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의 초고. 용지 수백여장에 깨알같이 원고 내용을 적어놓았다.

 

그는 이번 판결이 자신처럼 아무나 미술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마르셀 뒤상은 백 년 전부터 변기 작품을 통해 미술이 없어졌고 해체됐다고 말했고, 개념미술가인 조셉 보이스와 백남준도 이런 주장을 계승했는데 사과를 보고 똑같이 그려야 한다고 말하는 지금 한국의 미술교육이나 미술인식이 너무 답답하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홀로 작업하면서 수십 년 자기 화풍을 만들기 위해 고투하는 전업작가들의 좌절감에 대해서는 “창작의 고통을 가진 나로서도 이해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미술계에 대해 오래전부터 연민을 갖고 있고, 이런 연민을 표출할 기회를 갖고 싶어요. 대법원 판결 전인 지난달 28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전업미술가협회 신제남 이사장이 작가 개인의 수작업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공박한 부분에 대해서도 미안함을 갖고 있습니다. 좀 더 뛰어난 작업을 하면서 적절한 기회에 사과하는 자리를 만들려 합니다.”

 

 

 

 

조씨가 자신이 창안한 ‘트로트’파라는 작업 유파의 출발을 밝히면서 첫 작품으로 내놓은 <나의 옛 고향집>. 대바구니의 잘린 조각들을 초가의 지붕에 붙이거나 나무 이미지를 표현하는 오브제로 활용한 그림이다.

 

그는 다음 주 초, 쉬운 100가지 문답 형식으로 현대미술의 요지경을 풀어낸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을 출간한다. 4년간의 재판 기간 중 절절하게 느낀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자신의 체험적 지식을 통해 풀어주면서 ‘미술은 자유로운 게임’이라는 개념을 역설한 책이다.

 

8월에는 자신이 광팬으로서 흠모해온 이상, 말러, 피카소, 아인슈타인, 니체와 가상밴드를 결성해 공연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들의 가상 문답과 대화로 풀어낸 이야기책 <시인 이상과 5인의 아이들>이란 작품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화가 났다. 분노가 일었다. 장난감 권총을 샀다. 캔버스에 접착제로 붙였다. 그 권총의 총구 방향에 자신의 벌거벗은 상체를 그려 넣었다. 총구 끝은 머리에 붙어 있다. 표정은 비장하게 그렸다. 그리고 한글로 캔버스에 썼다. “쏠 테면 쏴라.”

5년 전이다. 자신이 그리지도 않은 화투 그림을 마치 자신이 그린 것처럼 팔았다고 가수 조영남이 사기죄로 기소됐다.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재판이 진행됐고, 최근 대법원은 조영남의 손을 들어줬다. 무죄였다. 1심에서 유죄를 받았으니, 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많은 대중들은 조영남에 대해 여전히 비호감이다. 사법부의 판단과는 다르다. 그가 지난 5년간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고 동정의 눈초리를 주는 이보다, 그가 재력으로 좋은 변호사를 사서 재판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에게 적은 돈을 받고 그림을 대신 그려준 조수에게 동정하는 분위기다.

 


5년 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영남은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 장난감 권총을 캔버스에 붙이곤 “쏠 테면 쏴라”고 혼자 외쳤다.

공인(公人)들은 재판에 걸리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한 내상을 입는다. 조영남은 어떨까? 대법원 판결이 나자마자 그는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혜화1117)이라는 책을 냈다. 문제가 됐던 화투그림이 현대미술이라서 그런 제목을 붙였나?

지난 15일, 한강 영동대교가 통유리를 통해 환히 보이는 그의 자택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그동안 그린 그림이 온 집안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알이 큰 검은 뿔테 안경과 후줄근한 검은색 상의, 그리고 맨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답게 거리낌이 없다.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한다. 5년간 ‘고문’을 당해보니 노련해졌다고 했다.

 


◇ "재판 전과정이 황홀…내가 자연스럽게 화가가 됐다"

 
“통유리에 비치는 풍경이 좋다. 일부러 통유리를 설치했나?”

-영동다리는 내 소유다. 밤이면 차들이 불을 켜고 나란히 달리며 나를 즐겁게 해준다. 매일 모습을 바꾼다. 내가 만든 설치미술이다. 남들이 멋있다고 한다.
(그의 집은 강남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하다. 고층 고급빌라 한 층이 모두 그의 집이다. 그래서 비호감이 많기도 하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후 심정은 어떠한가?”

-조심스럽다.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일 후회 안하고, 앞일 생각하지 않고 살려고 애쓴다. 재판을 하면서 내가 자연스럽게 화가가 됐다. 대법관들이 고맙다.

“대법원 상고심 최후진술할 때 한때 울먹이기도 했고, 대한민국 법체계가 너무나도 우아하고 완벽하다고 했다. 당시 어떤 심정으로 그런 표현을 썼나?”

-무지 떨렸다. 5년간 검찰 기소부터 대법원 최종심까지 직접 경험했다. 대법관들은 뜻밖에 미술 대작(代作)과 관련해 공청회까지 열게 했다. 1심부터 최종심까지 진행되는 과정이 내 생애 경험해 본 최고의 행위예술이었다. 황홀하기까지 했다. 대법관들께 최종심 전 과정을 행위미술로 규정하는 것을 허락받고 최후진술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만약 내가 그런 부탁을 했으면 대법관들은 다 허락했을 것이다.

“무죄가 나서 그런 기분이 든 것이 아닌가? 만약 유죄로 끝났다면?”

-아니다. 유무죄 관계없이 대법관 앞에서 달달 떨며 진술한 것은 최고의 행위예술이었다.

순간 휴대폰 전화벨이 요란히 울린다. 인터뷰가 중단됐다. 그의 휴대폰에서 난 벨소리였다. 그는 진동으로 바꾸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이틀 전까지 2G폰을 썼다가 지인이 선물해 준 최신폰이라고 했다. 그는 지독한 컴맹이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구하고 조영남에 대한 대중의 비호감은 여전하다. 이유는?”

-국민들이 느닷없이 현대미술을 접하며 당황한 탓이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가수가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고, 판매도 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그린 화투 그림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지 설명을 해도 대중들이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잘 설명을 해야 했는데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가 자신의 무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이 화투와 트럼프 카드를 오려 붙여서 만든 그림을 보여주었다.

-이 그림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이 화투를 내가 오려서 붙인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래서 조수에게 이렇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조수가 똑같이 그림을 그려왔다. 테두리를 넓히고, 글씨도 다듬고 해서 팔았다. 현대 미술은 이렇게 한다.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 조각품을 봐라. 내가 싸구려 깡통으로 만든 로봇 인형이다. 서울대 미대 조각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알바를 시켜 비슷하게 만들었다. 알바생들이 만든 쇠 인형의 작가가 누구인가? 아이디어를 내서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조영남의 작품이라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사간다. 화투 그림도 마찬가지다.

 


◇ 남이 그린 그림도 아이디어가 내 것이라면 내 그림


그는 문제가 된 화투그림이 자신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남이 그린 것이라도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라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이 현대미술의 상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런 대작 논란을 완전히 클리어 시켰다고 했다. 세계적인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조수가 대신 그림을 수백만원에 팔면서 수고비로 10만원을 준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열정페이의 본보기다.”

-아니다. 조수들이 받는 보수의 기준이 있다. 서울대 미대생들은 1시간에 7000원을 받는다. 나는 만원씩 주었지만. 그것만 지불하면 끝이다. 그 작품을 1000만원에 팔든, 5000만원에 팔든 작가의 몫이다. 그것이 현대 미술의 재미다.

그가 대법원 판결이 난 뒤 곧바로 책을 낸 이유가 대중들에게 이런 현대 미술을 이해시키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그는 13년 전 나름대로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한길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450페이지 두꺼운 책이다. 그는 이 책이 어려워 쉽게 설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재판을 받는 동안, 방송 출연도 없고, 공연도 없어서, 집에서 쉬운 현대미술에 대한 해설서를 썼다고 했다. 스스로 100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현대미술을 쉽게 설명했다고 했다.

화제를 바꾸었다. 그는 가수이며 화가이지만 십수 권의 책을 낸 글쟁이이기도 하다. 쉽게 구어체로 글을 풀어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쓴 책 중에 10년 전에 펴낸 시인 이상에 대한 책이 있다. 어렵기로 유명한 이상의 시(詩) 해설서다. 제목이 재미있다. <이상(李箱)은 이상(異常)이상(以上)이었다>이다.

그는 당시 이상의 시를 고민하다가 가벼운 뇌경색을 앓았다고 한다. 그때 이후로 말투가 좀 어눌해지고, 동작도 느려졌다고 했다. 이상 시를 풀어내려고 잠을 설쳤다고 했다.

-이상 시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였다. 그러나 시원찮았다. 확실히 이상을 대중에 띄우고 싶다. 그래서 9월에 새 책이 나온다. 책 이름은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다.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이상과 다른 4명이 보컬을 만들어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다.

그의 몸에 엔돌핀이 확 도는 느낌이다. 그가 신이 났다. 말이 빨라지고 톤이 높아진다. 책 표지를 직접 그린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과 함께 보컬을 꾸미는 이들이….

기타엔 화가 파블로 피카소, 피아노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바이올린엔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지휘에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다 세계적인 인물이다.

-실제 니체는 피아노를 잘 쳤다. 이들이 이상이 어릴 때 살았던 서울 통인동에 모여 철학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음악과 과학을 이야기하고 놀다가 막판에 대규모 콘서트를 연다. 피카소의 여인들이 모두 초대되고, 말러가 지휘하는 교향악단이 웅장한 연주를 한다. 그리고 이상이 쓴 최고의 연애시를 합창한다. 시를 어렵게 쓴 이상이 쉽게 쓴 유일한 시이다. 내가 단언컨대 이상은 셰익스피어 이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시인이다.

조영남은 자신이 곡을 붙인 이상의 시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시는 정말 이상의 시라고 믿기 어렵게 ‘알아 먹을 수 있는 시어’로 존재했다. 시의 제목은 <이런 시>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그는 이상이 쓴 최고의 연애시라고 표현했다. 또 한번 노래를 부른다. 처절한 느낌이 든다. 내친김에 어려운 이상의 시 한 수를 쉽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 이상에 빠져…그의 '이런 시'는 최고의 연애시

 
“이 시를 읽는 순간 아! 나는 드디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를 방금 읽었구나라고 소리쳤다. 내가 그동안 부른 노래, 그림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주저한다. 그러나 이상 시 가운데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금방 꼽을 수 있다. 바로 오감도의 <시제 1호>다. 이렇게 시작된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 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러오/…/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 좋소/…/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은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조영남은 이 시를 왜 최고의 시라고 말했을까?

-현대인의 본질을,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현대인의 참모습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아니 내 개인의 본질과 심리상태가 몽땅 담겨 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불길함을 상징하는 13의 숫자와 함께.

그는 이 시를 그림으로 그렸다. 13장의 화투가 어지러이 서있다. 다시 화제를 현대미술로 돌렸다.

“왜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인가? 설명을 쉽게 할 수 있나?”

-음악은 규칙이 있다. 베토벤 교향곡은 박자와 규칙이 명확하다. 규율이 잇고 그것이 엄격하게 지켜지면 된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어떤 규격과 규칙이 없다. 100% 자유이다. 내가 음대를 다니며 음악의 규칙은 배웠다. 미술은 굳이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가능하다. 현대미술의 가장 큰 덕목이 독창성이다. 화투는 푸대접 받고 홀대받았다. 심지어 일본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것이 됐다. 서민들의 가장 친근한 벗이 됐다. 내가 그것을 캔버스에 옮겼고, 이제 우리 것이 됐다. 일본 문화 정복의 의미도 있다.

조영남은 그의 책을 통해 에두아르 마네가 현대 미술의 시작이라고 했다. 마네가 그린 <풀밭위의 식사>를 ‘감히 어느 누구도 상상 못할 발칙 위대한 개념’이라고 표현했다.

-정장 입은 신사들 사이에 벌거벗은 여인이 앉아 있다. 당시 마네가 그린 이 그림은 공모전에서 딱지 맞았다. 이 그림을 보고 흉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상에 친근한 화투를 소재로 삼았다. 이제 시리즈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화투를 그리면서 사이사이 다른 소재를 찾을 예정이다.

그는 ‘재미스트’로 불린다. 일상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자유인이라는 인상을 대중에게 준다. 하지만 그를 숨막히게 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숨막히도록 감동받은 적이 있나?”

-딱 두 번있다. 한번은 이상의 시를 읽고 숨이 막혔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그리고 최근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했다. 특히 말러의 교향곡 3번 마지막 부분은 들어본 음악의 최고였다.

 


◇ 두번 이혼한 엄용수 또 결혼 준비…부럽다

 
“이혼을 두번 했다. 여성에게 숨이 막히도록 감동한 적은 없나?”

-콤플렉스가 있다. 이성과의 사랑에 불감증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여성이 아닌 다른 분야에 많은 신경을 쓰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는 이혼을 두번 한 것에 대해 자신에게는 그것이 정상적인 일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앞으로는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나?”

-개그맨 엄용수는 나처럼 두번 이혼했는데, 또 한번 결혼할 것 같다. 부럽다. 나도 가능하다면 한번 더 하고 싶다. 조카나 딸이 해주는 밥을 먹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잘 살고 싶다. 책 쓰고, 그림 그리고, 열심히 사는 이유도 그런 여성을 만나고 싶어서다.”

“평소 고독함을 느끼며 사는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조물주는 나와 일가다. 같은 조씨니까. 조물주는 인간을 창조하며 반반씩 주었다. 기쁨과 슬픔, 전쟁과 평화, 용기와 부끄러움, 그리고 외로움과 안 외로움도 반반. 외로움을 알아야 어울림의 행복을 안다. 인간의 고독은 숙명이고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혹시 그런 비호감을 보이는 이들에게 자신을 변명하거나 설명한다면?”

-기자가 만나보니 그는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말해주라.

“전혀 평범하지 않다.”

-음, 나에 대해 오해가 있는 이들을 만나 이해시키면 짜릿한 감동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안되면…그럼 조금 기다려달라고 할 것이다. 나도 죽을테니까,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달라고 해라. 방법이 없다.

“묘비명은 지어 놓았나?”

-유언장에는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묘비로 세우지 말라고 썼다. 하지만 내가 죽은 뒤 후배들이 굳이 묘비를 세운다면 이렇게 써주길 원한다. ‘나철 단군 세우다말다/이상 시 쓰다말다/조영남 노래 부르다말다.

그는 남이 자신을 화수(畵手)라고 부르길 바란다. 화가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화가와 가수를 합친 그가 만든 조어다. 번안곡 <딜라일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던 그는 결국 가수로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것 같다.




kichen85@news1.kr

 

 

 

 

 

 

 

 

 

 

맨처음, 화툿장을 가지고 그림 그릴 걸,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화툿장만 보고 그리면 되니 그리기도 쉽고,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고,

이번 재판으로 인해서 앞으로는

그 누구도 화투장을 가지고서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됐으니,

48장 화툿장이 미술적으론 조영남 저작권이 되어버렸네 그랴.^^

대한민국의 현싯점에서 미술적 이론과 재능은 조영남이 최고다!!!

천재까지는 모르겠으되, 수재임에는 틀림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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