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0. 08:32ㆍ詩.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그리핀시문학상 수상(종합)
시인 김혜순(64)이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시문학상'(The Griffin Poetry Prize)을 받았다.
도서출판 문학과지성사와 문학실험실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표된 올해 그리핀시문학상 국제부문에서 김혜순 시집 '죽음의 자서전'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고 7일 전했다. 이 문학상은 기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인 스콧 그리핀이 2000년 창설했다. 국내와 국제 부문 각 1명에 수여하며, 상금은 각 6만5천 캐나다 달러(한화 약 5천750만원)이다.
죽음의 자서전은 문학실험실에서 2016년 출간된 시집이다.
지난 2015년 시인이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몸이 무너지며 쓰러지는 경험을 하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메르스와 세월호 사태를 비롯한 사회적 비극 속에서 죽음의 시 49편을 '미친 듯' 써서 묶었다.
이를 영역한 최돈미 씨도 함께 상을 받았다. 영어 제목은 'Auto biography of death'(2018).
김 시인은 토론토 현지시간 6일 밤 열린 시상식에서 "오늘은 대한민국의 국경일"이라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많은 불쌍한 많은 영혼들에게 이 수상의 영광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2년 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호스피스 병동에서 병마와 싸우고 계신 우리 엄마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올해 13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을 펴낸 김 시인은 가부장적 논리에 갇힌 여성을 독창적 상상력과 새로운 미학으로 해석해 노래했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 가을호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 외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시집으로 '죽음의 자서전', '또 다른 별에서', '피어라 돼지',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고,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6. 5, 24 초판 1쇄 발행
2019. 5. 31 초판 4쇄 발행
책소개
2015년, 김혜순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몸이 무너지며 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삼차신경통’이라는, 뇌 신경계의 문제로 그녀는 매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병원을 찾았으나,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중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세월호의 참상, 그리고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 속에서, 그녀의 고통은 육체에서 벗어나, 어떤 시적인 상태로 급격하게 전이되면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49편의 죽음의 시들을 써내려갔다. 바로 그 결과물이 여기, 이 멀쩡한 문명 세상에 균열을 불러오며, 문학적으로는 고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지독한 시편으로 묶였다.
49편 중 대부분이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미발표 신작 시로, 이 시집은 그 자체로 ‘살아서 죽은 자’의 49제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김혜순
저자 김혜순은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여, 『또 다른 별에서』부터 『피어라 돼지』에 이르는 11권의 시집과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현대시작품상·소월시문학상·올해의문학상·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목록
* 시집
『또 다른 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1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문학과지성사, 1985
『어느 별의 지옥』, 청하, 1988 [신판: 문학동네, 1997]
『우리들의 음화』, 문학과지성사, 1990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4
『불쌍한 사랑 기계』, 문학과지성사, 1997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문학과지성사, 2001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당신의 첫』, 문학과지성사, 2008
『슬픔치약 거울크림』, 문학과지성사, 2011
『피어라 돼지』, 문학과지성사, 2016
*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동네, 2016
*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문학동네, 2002
목차
출근-하루
달력-이틀
사진-사흘
물에 기대요-나흘
백야-닷새
간 다음에-엿새
티베트-이레
고아-여드레
매일 매일 내일-아흐레
동명이인-열흘
나비-열하루
월식-열이틀
돌치마-열사흘
둥우리-열나흘
죽음의 축지법-열닷새
나체-열엿새
묘혈-열이레
검은 망사 장갑-열여드레
겨울의 미소-열아흐레
그 섬에 가고 싶다-스무날
냄새-스무하루
서울, 사자의 서-스무이틀
공기의 부족-스무사흘
부검-스무나흘
나날-스무닷새
죽음의 엄마-스무엿새
아 에 이 오 우-스무이레
이미-스무여드레
저녁메뉴-스무아흐레
선물-서른날
딸꾹질-서른하루
거짓말-서른이틀
포르말린 강가에서-서른사흘
우글우글 죽음-서른나흘
하관-서른닷새
아님-서른엿새
자장가-서른이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든 까마귀-서른여드레
고드름 안경-서른아흐레
이렇게 아픈 환각-마흔날
푸른 터럭-마흔 하루
이름-마흔이틀
면상-마흔사흘
인형-마흔나흘
황천-마흔닷새
질식-마흔엿새
심장의 유배-마흔이레
달 가면-마흔여드레
마요-마흔아흐레
시인의 말
感 / ‘죽음’이 쓰는 자서전_조재룡
출판사서평
김혜순 시집 『죽음의 자서전』
2019 그리핀시문학상 수상 시집!
여성詩 최전선 지킨 김혜순… 그의 목소리, 세계 보편이 되다 _서울신문
아시아 여성 첫 수상…"내 이름 불려 너무 놀랐다” _경향신문
“산 자가 말하는 소멸과 죽음… 49편에 녹여내”_세계일보
“산 자로서의 죽음 쓴 감수성 통한 듯… 노벨상 말하는 건 詩 그만 쓰라는 뜻... _문화일보
"죽음에 버금가는 삶의 고통… 어머니 떠올리며 노래했죠" _조선일보
“죽음과 소멸을 선험적으로 느끼는 게 시인의 감수성”_한겨레신문
한국 현대 시의 쾌거! 『죽음의 자서전』에 쏟아진 세계 언론의 관심과 찬사
“『죽음의 자서전』은 김혜순 시인이 구축한 놀라운 건축물이다. 사회적 참상과 개인의 죽음, 그 둘 사이의 연관을 구조적으로 직조해내고 있다.” _Publishers Weekly
“김혜순 시인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시인이다. 미국 독자들의 배타성과 번역에 대한 거부감을 감안하면 김혜순 시인의 위상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혜순 시인이 영어권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협업에 가까운 번역을 해낸 최돈미 번역자의 능력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형식과 깔끔한 형식주의를 거부하는 김혜순 시인의 천재성과 생뚱맞고 거북한 것들을 다루는 기교와 유머감각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에서 각 개인과, 쓰러진 신체는 자신만의 죽음을 경험하지만, 김혜순 시인이 표현한 죽음(대문자D의 Death)은 복수적이고 집단적인 죽음이며, 정치적 비극과 방지할 수 있었던 참사에 의해 희생된 총합적인 죽음이다.” _“A Ghost of Collectivity: Kim Hyesoon’s Autobiography of Death,” Denver Quarterly 53, no. 2 (Spring 2019), 106?12.
김혜순의 감각적 시들은 육신과 영적 세계에 뿌리를 둔 채 분노와 붕괴를 통과시키며, 죽은 자가 되어 말한다. 죽음 그 자체가 되어 말한다. 49편의 시들은 죽은 망자가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세상을 헤매는 49일 동안의 시이다. 이 죽음의 시들은 세월호 비극으로 목숨을 읽은 아이들에게 쫓긴다. 또한 이 시들은 전사자들, 정부의 진압으로 사망한 시위대원들, 점령의 천 년이 주는 고통에 쫓긴다. 점령의 위협과 더욱 강력한 권력을 위한 온갖 예속이 주는 고통이다. _Galatea Resurrects 2018 (A Poetry Engagement): Autobiography of Death by Kim Hyesoon By Judith Roitman
초현실적인 시구들과 새롭고 감성적인 날것의 언어들, 영혼이 육신을 떠난 후 배회하는 날짜를 세는 차가운 마술은 독자들을 숨죽이게 한다. 이는 절로 우러나는 비가(悲歌)이자 집단의 비가이다. 김혜순의 시는 인간의 오랜 두려움...인 죽음과 썩음, 매장과 맞닥뜨려 경이로움과 함께 떠나는 여정이다. _The Ophra Magazine: 17 of the Best Poetry Books, as Recommended by Acclaimed Writers for National Poetry Month By Michelle Hart
김혜순 시인은 경이로울 만큼 흥미롭고 실험적인 시인이다. 그의 시는 자극적이고 재미있지만 어렵지도 않다. 시다우며 훌륭한 시들이다. _Three Percent: The 2019 Best Translated Book Award Longlists
김혜순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은 불의로 끝난 생명의, 소용돌이치는 공간을 향해 목소리를 건넨다. 이 시집에 실린 49편의 시들은 돌진하고 펄럭이며, 마치 나방처럼 세상을 만지는 망자들을 흉내 낸다. 이 시들은 죽음이 선언한 경계를 향해 몸을 던진다. 이 시집이 말하는 죽음은 우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저승사자같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우리의 잘못된 행로가 초래한 결과이다. _KENYON review: March 2019 Micro-Reviews By Tyler Green
애초에, 망자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김혜순 시인은 자신의 죽음에 시적 목소리를 허용해야 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노래들을 들을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이 시집 『죽음의 자서전』을 읽는 것이다. 슬프고 부드러운 톤으로 가득 한 시구는 공포로 가득한 산문시와 섬뜩한 자장가와 뒤섞인다. 슬픈 추억의 노래는 어느덧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노래로 변한다. 이 죽음 이후의 여정을 통과해가는 것은 기이하고 강렬한 경험이다. 동시에 이 경험은 절묘하기도 하다. Roughghosts: Forty-nine days of the spirit: Autobiography of Death by Kim Hyesoon By Joseph Schreiber
『죽음의 자서전』 화자들은 존재와 신념이 만들어내는 분쟁의 틈새에서, 화장실과 버려진 교실, 부서진 백화점의 잔해에 비명을 휘갈기며 살고 있다. 이곳은 모두 부재로 가득한 공간이다. 이 시집은 죽음이 얼마나 살아 있는 신체와의 근접성에 의존하는지 탐구한다. 살아 있는 신체는 공간, 즉 우리가 그 장소를 떠나게 될 때 남겨질 틈새를 표명하는 존재이다._The Ploughshares Blog: “I Refuse to Review”: Literary Criticism and Kim Hyesoon’s Autobiography of Death By Lotte L.S.
2014년 세월호의 끔찍한 여파 속에서, 한국의 시인 김혜순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 이 재앙에 내몰린 아이들의 원혼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비극적인 작품을 써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환생을 기다려야 하는 매일 1편씩, 총 49편으로 이뤄진 한 편의 시를 구성했다. 최돈미의 탁월한 번역을 통해 우리는 샤머니즘, 모더니즘, 페미니즘이 초국가적으로 충돌하는 김혜순의 시가 “이전 그 누구도 노래한 적 없는 음울한 톤”으로 아우성치는 기록을 듣는다. 죽음 너머의 음색은 삶 자체로 들릴지도 모른다고, 심지어 “죽음조차도 내 안에 깊이 들어올 수 없어서” 시인은 노래한다. _2019 Griffin Poetry Prize Judges Citation
** 그리핀시문학상 소개 **
캐나다의 그리핀 트러스트가 주관하는 국제적인 시 문학상. 2000년 캐나다의 기업가 스콧 그리핀이 제정한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 시의 대중화와 시 문화를 알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번역 시집을 포함, 전년도에 영어로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매년 캐나다와 인터내셔널 부문 각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시상한다. 그리핀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은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상으로,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노벨문학상을 비롯, 영국의 National Poetry Competition 등과 함께, 시 부문이 있는 단일 또는 복수 장르의 세계 주요 문학상(International Major Awards)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문학상이다.
내겐 너무 어려운 시다. 이핼 못하겠다.
펌글))
김혜순 시인의 시세계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시인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2000년 일곱번째 시집[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이래로 4년 만에 발표되는 김혜순의 신작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특유의 감각적 언어와 시적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여성 시인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한 김혜순은 이번 시집에서도 변함없이 “끔찍하고 적나라하고 아름다운” 시적 세계를 창조하는 탁월한 감성을 빛낸다. “얼음의 담요를 싸안고 폭염의 거리를 걷는 것” 같고,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한 줄기 차디찬 핏물이 신발을 적실 것” 같은 순간을 살아가는 시인은 현실을 무자비하게 삭제하고, 대신 그 자리에 수많은 프리즘으로 만들어진 만화경을 통해 바라본 새로운 개체를 위치시킨다. 그 개체란 결국 ‘기댈 기둥’도 ‘방’도 ‘벽’도 ‘집’도 없는 현실의 어느 구석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질병’처럼 위태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의 각광에 다름 아니다.
그녀의 이 시집은 숨은 그림 찾기와 흡사하다.광대무변한 시적 상상력이 주는 난해함 속에 현실과 삶의 편린들이 그 끝자락을 얼핏얼핏 내비친다.독자들은 그 내비쳐진 현실이나 삶의 구체적 단어가 지칭하거나 상징하는 바를 요모조모 궁량하게 된다.그러다보면 날것으로 드러난 여성성이나 삶의 비의,존재의 허탈,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된 현대인의 삶이 나타난다.때론 그 난해함으로 짜증이 일기도 하지만,구사된 상징과 은유를 통해 ‘독자 수효만큼의 버전을 갖는게 작품’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계속 시첩을 넘기게 된다.
‘또 머리를 바짝 잘랐어/더 이상 나날이 길어지는 머리카락에 새겨진 이름들을 잡아뜯긴 싫어…불 밝힌 저 장미여인숙의 조바는/밤마다 4천만개의 정자를 내다버렸어/숲에서 떼지어 날아 나오는 모기떼들이/꺼져들어가는 빈약한 앞가슴을 파고 들었어/20세기에 태어나 세기말을 살다가/21세기에 죽으러 가는 길이었어’(김포 쓰레기 매립지로 가는 길).시인은 쓰레기 매립장에서 시대의 부조리와 천박함,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 과잉을 폐기처분하고 있다.
‘임종의 입회자는 선풍기뿐/바람이 그녀의 몸 위를 두리번거리네 어젯밤/이 방안에서 움직이던 두 개의 장난감 중에 하나는 멈추고/하나만 남아서 여전히 심벌즈를 두드리듯…냉장고 안에선 생선이 썩고/그녀의 입속에선 혀가 썩네…몸속에 플러그처럼 박힌 아기를 잘라버리자/이제 열린 책 처럼 알몸으로 펄럭거리는 그녀…전력회사와 아직도 연결된 불쌍한 선풍기만/벙어리 증인처럼 그녀의 뺨을 이쪽 한 번/저쪽 한 번 밤새도록 갈기고 있었을 뿐’(선풍기의 살인).신문 사회면의 1단짜리 기사 ‘선풍기 틀고 자다 사망’이 연상되기도 하고,존재 의미를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소진돼가고 있는 어느 무기력한 오후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의 압권을 고르라 치면 표제작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를 들 수 있다.‘이 음악은 이제 너무 들었어요 지겨워요/열두 곡이 다 흐른 다음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잖아요?/스위치를 누르면 눈이 휘날리지요/다시 누르면 벚꽃 축제,아니에요?/윤전기는 쉴새없이 돌아가고/비키니 입은 여자들이 공장 가득 쌓여 있지요…자고 나면 언제나 월요일이었어요 날마다 출근을 서둘러야 했어요…왜,이 윤전기 앞에선 한 번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요/왜,나는 매일 아침 새로운 형량을 시작해야 하나요?…그러나저러나 나한테서 뭘 더 찍을 게 있다고 윤전기는 쉬지 않고/자꾸만 같은 숫자만 찍어대는 거예요?’.기계 처럼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이름의 족쇄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의 운명을 서글픈 유머로 일갈하고 있다.
이 점은 ‘단감을 반으로 자르고/그 속의 씨앗을 또 반으로 자르면…’으로 시작하는 작품 ‘숟가락’에서도 극명하게 보인다.쪼개고 또 쪼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인 원자를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듯,삶의 여러 모습을 추궁하듯이 파고 들며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캐묻는 시인의 연필은 사무라이의 날 선 검(劍)처럼 섬뜩하게 벼려져 있다.김혜순의 이번 시집은 삶을 파고드는 예리한 비수다
꿈의 동굴과도 같이 한없이 깊고 괴이한 내면 풍경을 특유의 감각으로 그려내는 데 있어서 강렬한 색채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던 시인 김혜순은 이번 시집에서 시원(始原)의 ‘붉은색’을 시적 상상력의 다양한 국면에 대입시킨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과 상상이 대면하는 접점에 존재하는 이미지로 시인은 붉은색을 채택했다. 이번 시집에서 유난스럽게 붉은색을 끌어 올리고 꽃피우는 김혜순의 힘을 이인성은 ‘술’에서 찾고 있다. 전혀 새로운 개체인 ‘너’를 창조하는 힘의 원동력이 된 ‘붉은색’ ‘술’ ‘취기’ 등의 심상은 삶에 대한, 시 세계에 대한 시인의 열정의 표백이라 할 수 있다. 숨이 턱에 찰 만큼 분출하는 자신의 열정의 힘에 못 이겨 끝내 시인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헐떡거리며 서 있는/김혜순을 잊지는 말아줘”라며 소리친다. 자신의 시 세계를 무한대의 프랙탈 도형으로 설명하곤 하는 시인 김혜순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상상력을 극한까지 몰고 가서 “우리는 사랑처럼, 疾病처럼, 그리고 이 詩들처럼 이렇게 세상에 있다가 간다. 아니 없다가 간다. 그러니 모두 잘 있”으라며 작별을 고하고 극기(克己)의 의지를 다짐한다. 시인 김혜순이 이번 여덟번째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을 기점으로 명멸하여 거듭나서 새롭게 출발하리라 다짐했다면, 이 시집을 더더욱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의 놀랍고 신기한, 끔찍하도록 적나라하고 처절하게 아름다운 세계는 현실의 무자비한 삭제로부터 시작한다. 상상력에 의한 부분 부분의 뒤집기, 비틀기, 비교하기가 아닌 전반적인 무(無)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이 없다면 언어도 없고, 이 시집도 이 시집의 세계도 없는 것. 결국 이 시집의 세계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평면거울이 아닌 수많은 프리즘으로 만들어진 만화경 같은 거울. 그리하여 이 시집을 통과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온전한 하나의 유기체에서 낱낱이 분해되고 뒤섞여 완전히 새로운 개체로 다시 태어난다. 이 믹서 같은 시집이 만들어낸 새로운 종의 개체는 시인의 무의식과 우리의 다채로운 감각의 표정과 감정의 저 밑바닥에서 분출하는 언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개체와 사랑에 빠질 것인가, 맛볼 것인가, 바라만 볼 것인가?
아직도 여기는 너라는 이름의 거울 속인가 보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고독이라 것이 알고 보니 거울이구나
비추다가 내쫓는 붉은 것이로구나 포도주로구나
[……]
나는 붉은 잔을 응시한다 고요한 표면
나는 그 붉은 거울을 들어 마신다
몸속에서 붉게 흐르는 거울들이 소리친다
너는 주점을 나와 비틀비틀 저 멀리로 사라지지만
그 먼 곳이 내게는 가장 가까운 곳
내 안에는 너로부터 도망갈 곳이 한 곳도 없구나
- 「한 잔의 붉은 거울」 부분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과 상상이 대면하는 접점에 존재하는 이미지로 시인은 붉은색을 채택했다. 이번 시집에서 유난스럽게 붉은색을 끌어 올리고 꽃피우는 김혜순의 힘을 이인성은 ‘술’에서 찾고 있다.
이 시는 ‘나’의 고독과 취기가 새로운 ‘너’를 상상해냈음을 명증하게 보여준다. 취기에서 깨어나면 다시 고독으로 내쫓기더라도, 취기가 ‘너’를 창조한다. 이미 지적했던바, ‘너’는 실체가 아니어서, 창조된 것이 “너라는 이름”뿐이긴 하다.
- 이인성, 해설 「‘그녀, 요나’ 붉은 상상」에서
전혀 새로운 개체인 ‘너’를 창조하는 힘의 원동력이 된 ‘붉은색’ ‘술’ ‘취기’ 등의 심상은 삶에 대한, 시 세계에 대한 시인의 열정의 표백이라 할 수 있다. 숨이 턱에 찰 만큼 분출하는 자신의 열정의 힘에 못 이겨 끝내 시인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헐떡거리며 서 있는/김혜순을 잊지는 말아줘”라며 소리친다. 시인은 몸을 한없이 확장시켜 세계를 몸의 보자기로 싸안거나,몸을 샅샅이 뒤져 세계의 흔적을 발견해내는 특이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수사적 상상력이 아니라 자신의 몸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는 욕망과관련된, 상승이나 하강이 아닌, 수평적 번짐의 상상력이다. 우리는 그의 시의이미지를 통해 붙박임과 초월만이 아닌 수평적 확장과 축소의 세계가 있다는것을 새롭게 발견한다.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언어의 피상성이 가로막는 두터운 벽을뛰어넘으려는, 그래서 부닥치는 삶의 원초적 비극과 존재에의 충동과 맞서려는,그렇기 때문에 빚어지는 상승과 하강의 몸부림으로 심화되고 있다. 우리가그의 시에서, 세계에로 침투해 들어가려는 자아의 강렬한 욕망을 발견하는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의 시 세계를 무한대의 프랙탈 도형으로 설명하곤 하는 시인 김혜순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상상력을 극한까지 몰고 가서 “우리는 사랑처럼, 疾病처럼, 그리고 이 詩들처럼 이렇게 세상에 있다가 간다. 아니 없다가 간다. 그러니 모두 잘 있”으라며 작별을 고하고 극기(克己)의 의지를 다짐한다. 시인 김혜순이 여덟번째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을 기점으로 명멸하여 거듭나서 새롭게 출발하리라 다짐했다면, 이 시집과 더불어 시인 김혜순을 더더욱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습적 자살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 끝에
마침표를 달 듯 무덤을 달고 있다
나는 어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는 모션을 취했다
양쪽 다리를 난간에서 떼었을 때
비명 소리가 먼저 산으로 가고
다음, 내 영혼이 뒤따라가는것을 보았다
이제 곧 내 몸도 무덤으로 가게 되리라
사람들이 말을 할 때가만히 눈감고 듣고 있으면
목소리들 속에서
무덤들이 굴러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 목소리 속 무덤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시시때때
공동묘지를 펼쳐놓고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오늘 무덤으로 먼저 떠난
내 말들로부터 사약을 받았다
문득, 구만 리 침묵의 무한 공중에서부터
희디흰 사약 사발이 내게로 두둥실 떠왔다
내가 두 손에 사약 사발을 받고
꿀꺽꿀꺽 마셨을 때
목젖을 타내리던 소리들이 먼저
산으로 갔다
다음, 영혼이 항문을 빠져 달아나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제 곧 내 몸도 무덤에 이르게 되리라
시집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중에서
출처 : 비공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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