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딕스(1891-1969)

2017. 12. 17. 19:48미술/서양화

 

 

 

출처.

이현애, 『독일 미술가와 만나다』발췌

 

 

 

 

 

 

프라우엔 키르헤를 바라보고 동쪽으로걸어가면 "근대거장미술관'이 나온다. 그곳에서 딕스가 남긴 생애 역작이라고 할 만한 <전쟁>을 볼 수 있다. 1929년부터 시작해 1932년에 완성한 <전쟁>은 세 폭짜리 제단화 ..... 읽는 순서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따른다.

 

 

 

 

"나는 전쟁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노력했어요. 연민을 자극하거나 선전 선동할 생각은 없었어요. 나는 어떤 과장된 황홀경을 원하지 않았어요. 나는 사태를 그렸습니다. 전쟁이 일으킨 사태를, 전쟁의 결과로서 벌어진 사태를요."

 

딕스는 군대에 자발적으로 입대한 이유를 1962년에 이렇게 밝혔다.

 

"나는 옆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쓰러져 죽는지 지켜봐야 했습니다. ....... 나는 그 모든 것을 아주 정확하게 체험했어야 했어요. 그건 내 의지였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전혀 평화주의자가 아닌 거예요. 그렇죠? 아마도 나는 호기심이 많았던 인간이었겠죠. 나는 모든 것을 내 두 눈으로 봐야만 했습니다. ....... 나는 리얼리스트입니다. 나는 삶에 깃든 심연을 몸소 체험해야 했어요."

 

 

 

 

<오토 딕스, <Flanders>

 

]

오토딕스, <진군하는 병사들>

 

 

 

 

전쟁은 총 50점으로 이루어진 동판화 연작이다.

 

 


 

"전쟁은 짐승 같은 일이에요. 배고픔, 득실대는 이, 진창, 머리를 돌게 만드는 소음……, 엣날 그림을 보면, 현실에 존재하는 한 부분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에 깃든 추함이지요. 전쟁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데가 있었어요. 나는 그것을 어떤 경우에도 놓쳐서는 안되었지요. 인간에 관하여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그토록 고삐 풀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되는지 봐야만 했어요."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학살에 가담해서는 안되고, 적이 대량학살 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된다고 가르친다."

 

딕스는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었고 두 번 다 살아남았다. 1946년 전쟁이 끝난 후에는 드레스텐과 베를린에서 교수직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고, 1949년부터 매년 드레스텐 아카데미에 있는 작업실에 들러 석판화 작업에 주력하다가 78세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많은 화가들이 추상화를 그리면서 유행을 따를 때에도 우직하게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냈다.

 

 

 

 

"누군가를 초상화로 그린다면 그를 알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알지 말아야 해요. 나는 그를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보고자 합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고자 합니다. 내적인 것은 저절로 나와요. 그것은 눈에 비쳐요. 누군가를 너무 오래 알고 지내면 헷깔리지요. 시선의 순수함이 사람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얻은 첫인상이 맞는 거예요. 그 첫인상을 생생하게 포착해야 합니다."

 

 

 

 

신여성과 더불어 딕스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목했다. 그는 자칭 '플로레타리아 예술가'로서 바이마르공화국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인간 군상을 보여줌으로써 독일 사회가 지닌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군인은 영웅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신체를 절단당한 인간들은 시민생활로 복귀하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황금의 1920년대'에 가려진 현실의 그림자다. <프라하 거리>는 그 현실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국가는 전쟁부상자를 상이용사로 치켜세웠지만 그들은 기피당하고 외면받는 신세로 밀려났다.

미용 성형은 원래 전쟁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의 신체를 고쳐서 사회로 돌려보내기 위해 개발된 의학기술이었다. 독일은 패전과 함께 의수 및 의족 제작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대도시>는 딕스의 절정기 작품 중 하나다. 그림은 사회에서 중심을 차지한 이들과 가장자리로 밀려난 이들을 한눈에 보여준다. 화가가 보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양극으로 나뉜 세계였다.

<대도시> 또한 드레스텐의 <전쟁>처럼 세 폭짜리 제단화 형태를 취했다.

 

"그래요, 그것도 그로테스크를 향한 욕망이지요. 늘 그렇듯이 세상만사는 변증법으로 굴러가니까요. 모순되는 것들이 병존하듯이요. 여기서는 점잖을 빼는데, 바로 그 옆에서는 코미디예요. ...... 인생이 그런 거라는 게, 세상만사가 사탕처럼 알록달록 달콤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게, 나한테는 재미가 있어요. 인간을 짐승처럼 볼 수도 잇죠. 그것이 세상만사가 보여주는 완전함입니다."

 

 

 

 

 

 

 

 

 

 

 

 

 

 

 

 

 

 

 

 

 

 

 

 

 

 

 

 

 

 

 

 

 

 

 

 

 

 

 

 

1

 

 

 

오토 딕스(Otto Dix. 독일 화가,판화가1891~1969)

극적인 전쟁 장면을 그리기 위해 실제로 참전한 화가

 

 

Otto Dix - 자화상 1913

 

오토 틱스(Otto Dix. 1891~1969)는 독일출생의 화가로 전쟁을 직접 알고, 가능한 한 가장  사실적 방법으로

이를 전달하기 위해 전쟁에 자원 참전하여 벨기에와 프랑스 전선에서 포병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이후 그 경험은 이 화가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강박관념이 되었다.

이리하여 신객관주의파에 대표되는 당시 40대의 오토 딕스의 창조적 상상력은 전쟁이 몽땅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Verwundeter(부상병)

 

 

Zerfallender Kampfgraben (무너진 참호)

 

 

 

 

 Sturmtruppe geht unter Gas vor (가스 아래로 전진하는 돌격대원)

 

 

 

Mahlzeit in der Sappe (Lorettohohe) (Loretto 언덕에서의 식사)

 

 

 

성냥팔이

 

손발이 잘린 퇴역군인은 가련한 인물이다.

전쟁은 그의 손발과 눈을 앗아갔다. 그의 불구는 잘린 발목을 향해 오줌을 누는

닥스훈트 강아지를 통해 겨우 주의를 끌 뿐이어서  더욱 극명하게 비춰진다.

 

 

 

 

 

  ▲  유화 ‘저널리스트 실비아 폰 하르덴의 초상’*1926년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Otto Dix는 초상화를 그릴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초상화를 그릴 때, 그 모델과 많은 대화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모델의 얼굴생김새와 그 모델의 손이 지금까지 그 모델이 살아온 인생여로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Otto Dix의 초상화는 손이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구나 하는 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위 그림믄 아주그냥 저 여자가 Journalist 구나! 라는 생각이 팍팍 든다.

나 신경예민해요!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입술모양 하며..."  

 

 

기사 관련 사진
▲ 여성반신상 오토 딕스의 그림으로 전쟁으로 여성들이 겪는 고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눈앞에서 남편이 살해되고 어린 딸은 강간당했으며 잠시 후 자신도 강간을 당한 뒤 죽임당할 것을 알고 있는 여성의 표정을 혹시라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오토 딕스는  <여성반신상>에서 공포와 절망으로 파랗게 질린 채 가슴을 드러내고 서 있는 여성

반신상에서 짓밟히고 유린당한 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 그림을  모티브로 삼은  '독일, 파랗게 질린

어머니'라는 영화가 1980년 서독에서 제작되어 일본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1915] Self Portrait as Mars 

 

 

[1920] Prager Street

1차세계대전을 겪은 뒤 그린 그림. 신즉물주의적 표현이 그대로 나타난다. 각 인물이 시점이 흩어져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잘 먹어서 얼굴이 발그레한 앞의 남자의 다리는 바퀴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반하여, 잘 못먹어서 얼굴이 누렇고 전쟁 때 다친 다리를 하고 있는 상이용사는 걷기조차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잘 먹은? 신사가 불쌍한 이를 무관심하게 빠른 속도로 휭~ 하고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 이게 전쟁 후 모습이었다니... 뒤에는 코르셋을 입은 여자모형이 보인다. 자기 몸을 고통스럽게 압박하면서까지 코르셋을 입는 여자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귀퉁이에는 다 그려지지 않고 잘려진 인간들이 있는데, 이는 전쟁 후 사회의 익명성을 보여준다.      

       

 

[1920] Skat Players

 

 

 

[1924] 전쟁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왜냐하면 이것도 자기 인생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토 딕스는 전쟁을 찬미하는 나치를 항거하며 전쟁의 비극을 그리고, 아름다운 부인을 그리는 대신에 추한 매춘부를 그린다. 전쟁 영웅의 개선 행진이 아니라 상이 용사들의 절뚝 발이 행진을 그리고 루터파 그리스도교의 성화를 그리기 보다 그들의 위선과 추악함을 고발한다. "          

         

 

[Skull해골, 1924]

 

여자1

 

 

 

 

 

 Portrait of the Dancer Anita Berber   1925 

 

 

 Dix, Otto
Kupplerin (Procuress)여자포주
1923
color lithograph
47.8 x 36.1 cm (image); 59 x 46.6 cm (sheet)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 여자3

 

여자를 비판적이고 심지어는 혐오하기까지 하는 화가가 몇몇 있는데, 대표적으로 뭉크와 오토딕스를 꼽는다. 오토딕스는 여자는 '어머니 아니면 창녀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 오토딕스는 여자는 육체적 원칙을 따르고, 남자는 정신적 원칙을 따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창녀를 많이 그려서 창녀화가라고도 불린다고...                                           


 [1877] Die Eltern des Künstlers

 

 

 [1928] Metropolis

 

 

 

 

 

Dix, Otto
Self Portrait
1912
Oil on paper mounted on panel
73.66 cm x 49.53 cm
 The Detroit Institute of Arts
Michigan, USA

 

 

 

Dix, Otto

Self-portrait, head and shoulders, facing left
 lithograph
1922

 

 

 

Dix, Otto
The celebrities: Constellation
1920
woodcut on laid paper
9 7/8 x 7 7/8 in. (25.08 x 20 cm); Sheet: 16 5/8 x 13 13/16 in. (42.23 x 35.08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California, USA

 

 

 Dix, Otto
1932
metalpoint on prepared paper
57.6 x 46.8 cm (sheet)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California, USA

 

 

 

Dix, Otto
Matthaus Evangelium
1999
Lithograph on Bütten paper
11 7/16 x 9 in. (29.05 x 22.86 cm); Sheet: 11 7/16 x 9 9/16 in. (29.05 x 24.29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California, USA

 

 

Dix, Otto
Lovers
1921
 woodcut on laid paper
 9 7/8 x 7 7/8 in. (25.08 x 20 cm); Sheet: 16 9/16 x 13 11/16 in. (42.07 x 34.77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California, USA

 

 

Dix, Otto
French Cemetery
1916
Charcoal on light brown wove paper
34 x 28.1 cm (13 3/8 x 11 1/16 in.)
Museum of Fine Arts, Boston

 

 

Dix, Otto
Apotheosis
1919
 woodcut on laid paper
16 11/16 x 13 3/4 in. (42.39 x 34.93 cm); Sheet: 16 5/8 x 13 11/16 in. (42.23 x 34.77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California, USA

 

 

Dix, Otto
Portrait of Dr. Otto Klemperer
1923
lithograph
44.5 x 43 cm (image); 58.8 x 45.4 cm (sheet)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California, USA

 

 

Dix, Otto
Scherzo
1920
woodcut
23.4 x 16.8 cm (image); 42 x 30 cm (sheet)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California, USA

 

 

Dix, Otto
Louis and Vonse
1923
lithograph
56 x 42.5 cm (image); 62.2 x 48.9 cm (sheet)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California, USA

 

 

Dix, Otto
Street noise
1920
woodcut on laid paper
11 x 9 3/8 in. (27.94 x 23.81 cm); Sheet: 16 3/4 x 13 1/16 in. (42.55 x 33.18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California, USA

 

 

 

Dix, Otto
Seen at Clery-sur-Somme
1924
Creation Place: Germany
etching
27.3 x 20.2 cm (image)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California, USA

 

 

Dix, Otto

Mutzli
etching
1924

 

 

 

Dix, Otto
Selbstbildnis (mit Zigarette) (Self-Portrait with Cigarette)
1922
drypoint
34.6 x 27.4 cm (image)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California, USA

 

 

 

To Beauty  1922

 

 

 

Self-Portrait as a Target

1915
Otto Dix Foundation, Vienna
 

 

 

Self-Portrait as a Soldier, 1914

 

 

  

Dr. Mayer-Hermann
Portrait
Otto Dix   1926

 

 

Souvenir de la galerie des glaces ?Bruxelles
Sc?e int?ieure
Otto Dix   1920

 

 

 

Old Couple   1923

 

 

 

Portrait of Poet Ivar von L?ken  1926

 

 

Dr. Paul Ferdinand Schmidt  1921

 

 

 

Pregnant Woman

1930

 

 

Hugo Erfurth con un perro

1926
Óleo sobre tabla. 80 x 100 cm.
Museo Thyssen-Bornemisza
Aut. Otto Dix

 

 

Left Panel

 

Central Panel

 

Right Panel

 

 

 

 

The Salon  1921

 

 

<모피 위의 여성>(1932)

 

 

 

 

 

 

 

 

 

 

 

 

 

 

 

 

 

 

 

Dix, Otto (German, 1891-1969)

Self Portrait with Easel
1926
oil on panel
Leopold-Hoesch-Museum, Düre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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