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도살된 황소> (1643년) 94x69cm 루브르박물관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는 소의 육신, 소의 뼈와 살을 마치 실물처럼 물질감· 육질감· 생동감이 매우 넘치게 표현한 그림이다. 소의 이미지는 참혹하고도 장엄하게 다가온다.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직면한 듯 느끼게 한다.
샤임수틴, <가죽이 벗겨진 황소> 1925년 캔버스에 유채, 140 x 82
Chaim Soutine, Carcass of Beef, 1926
수틴이 도살된 가축을 그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주제를 가지고 1925년에서 1929년 사이에 열 점이 넘게 그렸다.
푸른색 배경에 검붉은 황소의 死體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거친 터치와 짓이겨진 물감, 충돌하는 색채로 삶을 향한 황소의 강렬한 투쟁이 느껴진다. 더불어 그런 생명의 열정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는 죽음의 절대적인 힘도 느껴진다. 비장한 장송곡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Francis Bacon, Head Surrounded by Sides of Beef,(도축 소에 둘러싸인 교횡) 1954
Painting(회화) 1946
베이컨의 그림이 수틴의 그림과 차이가 있다면, 수틴은 대상에 깊이 몰입해 대상 자체만을 부각시킨 반면, 베이컨은 대상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서도 치밀한 구성을 시도해 마치 연극 무대처럼 묘사했다.
<회화 1946>의 공간은 투시원근법적인 구성으로 시선을 대상에게 집중시킨다. 검은 우산의 그림자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고 옷마저도 검어서 그 존재가 부자비한 권력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뒤에 내걸린 소의 死體는 권력의 위세를 드러내는 듯하다.
이 존재의 이미지는 독재자 무솔리니로부터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베이컨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며 사악한 힘에 대한 증오심과 거부감을 이런 형식으로 묘사했다.
출처
도살된 황소를 위한 시간
김옥성
피처럼 노을이 퍼진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쌀 씻는 소리
밥 짓는 향기
화인(火印)처럼 이마가 불탄다
누군가의 육체로 연명하는
이 도시는 절대로 유령들에게 점령당하지 않는다
방금 전생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피 묻은 육체가
악몽이 열리는 나무처럼 펼쳐져 있다
저 죽은 육체는 왜
이승에 정박한 닻처럼 무거운 것일까
심장을 파헤쳐 보니 너의 슬픔은 한 송이
영산홍이었다
마지막 울음을 뱉어낸 너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후생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꽉 들어찼다
어쩌면 나는 그가 전생에서 도살한 짐승이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는 내가 전생에서 도살한 짐승이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는 수천수만 번의 생 동안 수천수만 번 자신을 살해한 자들을
도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아무도 알아선 안 되지
순항하는 목숨들은 없는 것일까
그러게 순항하는 슬픔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다
여기는 좌초한 목숨들이 흘러들어오는 곳
그는 빛바랜 일지에 오늘
도살된 육체의 이름을 기록한다
목숨이 갈라질 때마다 저절로 새어나오는 비명의 기록은 생략한다
삼생을 몇 바퀴 돌고 온 듯 파리가 허공을 휘젓는다
썩은 살점을 찾는 것일까
남아 있는 온기를 찾는 것일까
아니면 피의 기억을 더듬는 것일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괴롭혀 왔기 때문에
그는 평생 외롭고 슬펐다
한때는 초식동물의 피에서 초원의
풀냄새를 맡기도 했다
싱싱한 생피를 마시고 옷소매로 피 묻은 입술을 닦고
초식동물처럼 초원을 내달리고 싶었다
풀처럼 거센 바람 속에서 아무렇게나 춤을 추고 싶었다
피 속에 적멸보궁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잠들 수 있을까
잠에서 깨어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까
눈을 뜨면
피의 울음이 고인 하늘에 태어나 있지 않을까
월요일엔 산사에 들러 천수경을 외우리라
그는 너의
뛰는 심장을 기억한다
심장 속에서 끊임없이 붉은 영산홍이 피고지고 또 피었다
피에서 피로, 피에서 꽃으로, 꽃에서 꽃으로 펼쳐지는 피의 연대기에 대해 생각한다
석양으로 떠나간 사람들은 붉은 꽃으로 태어났다
짐승들도 사람들도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왜 너의 붉은 육신을
먹어야 하는가
나는 언젠가
너를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순식간에 공기가 바뀐다
하늘에서 불타고 있는 구름 조각들을 올려다보며
피 묻은 시체들에 대하여
부유하는 것에 대하여
흩어지는 것에 대하여
탄생하는 것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하려다 그만둔다
곧 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므로
우우 진군해 오는
어둠의 자식들
울부짖는 짐승들의 형형한 눈동자와 나는
테오도르 제리코 <절단된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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