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7. 13:17ㆍ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칸딘스키 말(馬)
칸딘스키 <청기사> 1903 캔버스에 유채. 55 x 65cm
칸딘스키 <트럼펫을 부는 기사가 있는 풍경> 1908 .16.5 x 20.9cm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책 맨 앞부분에서 소개한 작품인데,
이 말(馬) 그림을 딱 보는 순간, 김점선의 말이 떠오르지 뭡니까. 그래서 후딱 뒤져봤습니다.
………… 좀 다르긴 하군요.
<트럼펫을 부는 기사가 있는 풍경>는 ‘종이에 잉크, 붓, 파란 색연필’로 그렸다고 합니다.
김점선도 파스텔 ·크레용 ·볼펜 같은 걸로 많이 그렸습니다.
하지만 직감, 육감이란 게 있잖습니까? 김점선 말이랑 칸딘스키 말이랑……
김점선 말(馬)
어느 작가, 뭔 작품 끼리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도,
미술작품을 보다보면 구도, 대상, 표현, 착상 등이 서로 연결 된다 싶은 것들이 꽤 있습니다.
피카소 작품에 아프리카 가면을 연상시키는 게 많듯이.
‘예술의 본질은 모방’이라는 말처럼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없어요.
그래서 저도 모방을 나쁘게만 보진 않습니다.
어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히면 돼요. 그러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가 쉽죠.
제목을 무제(無題)라느니, 감상자의 몫이라느니..... ㅠㅠ.
가장 오래된 관점은 모방설이다. '모방설'이란 예술의 본질이 모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시대의 예술가들은 모두 예술이 모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방을 잘하고 가장 비슷하게 모방하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러한 관점에 반기를 들었다. 그가 보기에 이런 '모방 예술'은 진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술은 진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지도 않다. 예술은 진선미뿐만 아니라 가악추(假惡醜)도 모방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은 쓸모도 없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예술에 관한 관점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의견을 반박했다. 그는 예술이 진실하다고 생각했으며, 예술뿐만 아니라 그것이 모방하는 대상인 현실 또한 진실하다고 보았다. 사물은 모두 이데아와 현실, 개념과 실체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여기서 한 가지 전제 조건을 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진실하게 대상을 모방해야만 예술'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단순히 진실할 뿐만 아니라 현실보다도, 역사보다도 진실하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이데아를 직접적으로 모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 발생한 일만을 기술한다면 역사학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발생할 수 있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을 예술이 기술하기 때문에 예술은 역사보다 더 중요하며 진실한 것이다. 사물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모양에 따른 모방은 사실 창조이다. 예술은 창조이기 때문에 피동적인 모방이 아니며 유치한 표절은 더욱 아니다. 예술은 사물의 표면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본질적 법칙과 내적 연계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생각은 현실주의와 '전형론', '본질묘사론' 등을 위한 튼튼한 미학적 기초를 닦았다.
하지만 그의 이론에도 여전히 문제점은 있다. 모방설의 핵심은 '진실한 대상을 진실하게 모방하는 것'일텐데, '진실한 대상'이 과연 무엇이라는 점이다. 신화 속의 인물도 포함이 될까. 이것은 결국 엥겔스가 언급했던 '상상의 진실'일 뿐이다. 이른바 '진실하게 상상하다'는 것은 거짓을 진짜처럼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사실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창조의 산물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모방은 곧 창조였지만, 창조가 곧 모방인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이 '진실한 모방'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가장 진실한 모방은 이데아를 직접 모방한 것이고 사물의 본질을 모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물의 이데아 혹은 본질일까? 개연성이나 필연성을 구현할 수 있는 대상만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물과 현상들이 개연성이나 필연성을 구현할 수 있는 '진실한 대상'일까?
중국 철학자 이중톈은 예술의 진실을 '대상의 진실'도, '모방의 진실'도 아닌 '정감의 진실'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도 이 점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음악을 가장 전형적인 모방 예술로 간주한 것이 그 증거이다. 음악이 가장 전형적인 모방 예술인 이유는 음악이 '인간의 정감을 직접 모방'하기 때문이다. '직접 정감을 모방하는 것'과 '직접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은 정말 서로 다른 개념이다. 이데아는 객관적이고 정감은 주관적이다. 마찬가지로 '본질 묘사'라는 이 길은 객관 미학처럼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서히 모방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으며 표현이 모방을 대신하게 됐습니다.
(어디선가 베껴온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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