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2. 12:23ㆍ미술/한국화 현대그림
이쾌대
913년 1월 16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서 태어난 이쾌대는 대지주의 가문 출신으로 부유한 가정환경 덕분에 어린시절은
유복하고 평화로웠다. 그런 이쾌대가 미술을 접하게 된 것은 휘문고보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1932년 고보 5학년
이었던 이쾌대는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을 했으며, 그 해 가을 제3회 전조선 남녀학생전람회 중등회화부
에서 삼등상을 받으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다. 이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근대 화단의 역사
를 한 단계 끌어올릴 만큼 주목을 받은 화가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40여 년의 시간 동안 월북 화가라는 이유만
으로 근대 화단의 역사에서 가리워져 있었다. 40여 년이 지난 뒤에 그의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의 아내의 힘이 누구보다도 컸다. 아내와는 학생시절 결혼하여 월북으로 생이별을 하였지만, 그의 아내는 언젠가
빛을 보게 될 남편의 작품을 눈물겹게 보존해 왔으며, 1991년 열린 전시회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
게 되었다.
이쾌대의 작품 중에는「군상」이 유명하다는데 저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1위 「봄처녀」
2위 「봉숭아」
3위 「부인도」
여기 게시물 말고도 검색을 해보면 이쾌대의 작품이 더 있긴한데,
위의 세 작품을 빼고는 썩 마음에 드는 걸 못 봤습니다.
[군상-4(1948)].
[해방고지.(1948)]
"해방고지(告知)"로 알려진 <군상1>은 이미 해방 전부터 구상해 온 작품이었다고 한다. 왼쪽의 달려오는 두 처녀는 해방 소식을
전하고 있고, 이들을 맞이하는 군중은 혼돈 속에서도 밝은 하늘을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다. 한편 오른쪽 아래에는 시체로 변해
가는 지난 날의 비운과 고난이 누워있다.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조감하고 있다.
[봄처녀. 1940년대 말]
그의 학생시절의 작품인 <상황>(1938)은 그가 인식한 식민지 조선의 실상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깨어진 밥그릇을 앞에 놓고서도 춤을 추어야만 하는 무희, 뚜쟁이의 농간으로 옷을 벗어야만 하는 여인,
무표정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며 지나가려는 남녀의 모습들은 식민지 조국의 표정들이었다.
작품 <봉숭아>를 통해서는 민화의 화조도 영향을 보이며,
단순히 소재 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법 면에서도 동양적인 선묘를 느끼게 한다.
부인도 (1943년)
[걸인. 1948]
베이징국제미술박람회의 수많은 전시 작품 중에서 단연 이채로운 것은 조선 만수대창작사 미술관이 내건 작품들이었다.
만수대창작사 미술관은 2005년부터 올해까지 여섯 차례 이 전람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거의 매번 금상 수상작을 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북한의 미술은 추상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모두가 극사실화이며 생활화이다.
아이디어가 아니라 갈고 닦은 소묘 실력으로 승부한다. 한 작품 한 작품에 작가의 뼈저린 노동이 서렸다.
길정태 대표에 따르면 북한 그림들은 특히 중국 관람객과 에이전시에게 인기가 높다.
만수대창작사 베이징 미술관은 베이징의 유명한 798거리에 운집한 전 세계 유명 화랑 400개 가운데 규모가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
북한 그림이 유명해지자 베이징에서 이제는 발길에 차일 정도로 흔해진 '급부자(벼락부자)'들은 아예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날아가 그림을 마구잡이로 사들인다고 한다.
요즘 베이징에서는 문화대혁명 시대의 그림이 하도 귀해 당나라·송나라 때의 그림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
그래서 북한 그림도 언젠가는 그처럼 희귀해질 거라는 계산에서 중국 졸부들이 '묻지마 투자'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의 그림은 특정한 시대와 분위기 속에서 나오는, 앞으로 다시는 나오기 힘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길 대표에 따르면 북한 작품이 인기가 높은 진짜 이유는 돈 냄새가 나지 않아서이다.
돈에 물든 작가의 작품에는 경매나 에이전시의 보이지 않는 눈을 향한 적극성이 넘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의 그림은 지극히 정적이고 순수하다.
급격히 자본주의화하는 중국인의 눈에는 북한의 그림이 신선하게 비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북한 수묵화의 특징은 농채담묵(濃彩淡墨), 즉 색을 '세게' 쓴다는 점인데 이 또한 중국인에게는 매력으로 비치는 듯하다.
베이징의 한 중국인 미술대 교수는 길 대표에게 "잘못 쓰면 가벼워 보이는데도 조선화는 정말 적절하게 색을 잘 쓴다.
조선의 그림을 보면 중국 그림의 갈 길이 보인다"라고까지 얘기했다고 한다.
북한 작가들은 아주 오랫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치기 때문에 특히 인물화에 능하다.
평양의 만수대창작사에서는 4000여 명이 일하는데 그중 1000여 명이 예술가이다.
조선화·유화·판화·도안설계·보석화·공예·수예 등 10여 개 창작반으로 나뉘어 있다.
문정우 대기자 / woo@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