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9. 00:08ㆍ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1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카라바조」입니다.
왜 좋아하느냐? 시대를 앞서가는 자의 좌절에 대한 공분(共憤)입니다.
무엇으로부터의 좌절이냐?
종교권력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세력의 반동, 어처구니 없이 공중분해되어버린 이성과 시대정신,
- '춘래불사춘', 르네상스의 좌절... 종교의 타락과 왜곡과 횡포, 그리고 무지한 민중,
종교권력에 기생하는 예술가로서의 자괴감.........
그러니까 일차적으로는 그런 좌절과 분노에 대한 동정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화가로서의 천재성입니다.
당시에도 물론 독보적이었지만,
카라바조의 그늘은 후기 인상파 화가가 등장하기까지, 거의 250년 간이나 드리웠습니다.
빛을 이용한 순간 포착과 대상을 강조하는...... 렘브란트도 그 아류입니다.
거기에다 사실성의 추구를 넘어서 사유(思惟)를 이끌어내는......
카라바조의 고뇌와 깊이를 넘어서는 화가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2
저는 당시의 화가들이 광학을 이용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 광학을 이용했다는 것,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 많지요.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이 책에서 그 비밀을 보고나니깐 그동안의 고전 명화에 대한 경외감이 다 날라가버립니다.
명화 감상하는 방식을 앞으론 바꿔야겠단 생각까지도 듭니다.
3
「지은이가 말하듯이 광학을 이용했다고 해서 작품이 폄하되는 것도 아니고, 렌즈를 쥐어준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가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크게 보면 그것은 미술사에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했다. 거울과 렌즈의 기법은 사진이 발명됨으로써 철퇴를 맞았고, 회화의 위기를 맞아 세잔과 고흐는 발상 의 전환으로써 타개책을 찾아냈다. 그런점에서 광학기법은 회화의 흐름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TV와 영화 등의 매체로 계승되었다는 지은이의 관점은 신선하다.」(옮긴이. 남경태)
☜ 과연 이것이 다일까?
현업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이 책을 쓴 것이 2,000년 이후입니다.
그러니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말도 성립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만일 광학을 이용하여 베끼는 행위를 사기라고 한다면 그들은 모두가 공범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잔은 왜 고발을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건 일종의 동업자 정신입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울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미술품 수집가들도 마찬가집니다.
'광학을 이용한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작품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 말이 됩니까?
하긴, 달인,, 누구나 못하죠.
"카라바조, 앵그르, 베르메르, 할스, 렘브란트, 부게로,, 그대들을 그림의 달인으로 인정하노라!"
세잔이나 고흐는 달인이 아니라 화가입니다.
4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겠지요.
그런데 또 하나의 의문은 과연 이것이「일본 회화」에만 한정된 것이겠냐 입니다.
아미타게 폭포
마네, 모네, 세잔, 고흐가 이런 그림을 봤다면 어땠을까요? 까물어쳤을 거예요.
만일 우리 조선시대의 그림을 보여주었더라면 또 어땠을지.
위에서부터 강세황 <영통동구도>, 정선 <박연폭포>, 김홍도 <주상관매도> 입니다. 중국 그림도 마찬가지죠. 뭐.
6
저는 여태 서양 그림 앞에만 서면 위축이 되곤 했습니다. 카라바조, 앵그르, 베르메르가 활약하던 1600년대초라면 언젯적입니까? 임진왜란 끝나고 어수선할 때였죠. 겸재 정선이 몇 년도 사람입니까? 김홍도는 몇 년대 사람입니까? 한마디로 껨이 안되는 거죠.
그런데 왜? 1800년대 중 후반의 인상파 화가들이 1600~1700년대의 우키요에에 깜박 죽었을까요?
- 우키요에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겁니다. 인상파 이전의 그림이 사물이나 대상으로부터 이미지를 이끌어냈다면, 우키요에는 그런 과정을 건너뛰어서 직접 이미지를 그려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죠. 다시말해서 자기네는 덧셈의 그림을 그린 반면에 우키요에는 곱셈의 그림이더라,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그림 주문자의 요구와 취향을 반영한 - 즉 피사체인 대상물이 중요했지만, 이젠 관찰자인 화가 자신과 일반 고객인 감상자가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림의 수요자도 특정인에서 불특정 다수로 바뀌었고요.
'내 그림 내가 그리는데, 네가 뭔 상관이냐?' '살테면 사고, 말테면 말고' 식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렇게 보이고, 느끼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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