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2. 17:45ㆍ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九소環佩琴 - 伏羲式 - 唐代 길이 124cm
1.
초정 박제가에게 많은 물건을 준 인사 가운데 손형(孫衡)이란 사람이 있다.
호는 운록(雲麓)으로 절강 총독을 지낸 손사의의 아들이다.
그는 유독 박제가를 만나고자 늘 목을 빼고 기다렸고, 늘 선물을 주려고 안달이었다.
그 손형이 1790년에 초정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했다.
다름 아닌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황제 의종이 황궁에서 사용하던 현금(玄琴)을 선물한 것이다.
거기에는 '숭정 무인년(1638) 칙명을 받아 태감 臣 장윤덕이 감독하여 만들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이렇게 대단히 귀중한 물건을 박제가에게 선물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잇었다.
박제가의 친구 성해옹이 이 현금을 직접 보고는 명나라 황제의 물건을 집에 두기엔 꺼림칙했을 것이라 했는데,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추정이다. 손사의는 건륭제 치하에서 한족으로서 가장 높은 벼슬에 오른 인물이다.
따라서 숭정제의 유물을 소지한다는 것은 청조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박제가는 1790년 선물받은 숭정제의 유물을 가지고 귀국하여 2년간 보관하다가,
삼학사로 청나라에 잡혀가 죽은 윤집의 자손인 석재 윤행임에게 주었다.
윤행임은 현금을 <숭정금>이라 명명하고, 얻게 된 자초지종을 <숭정금기>란 글로 썼으며,
오랫동안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행임이 사사(賜死)된 이후에 추사 김정희에게 건너갔다가
오랜 후에야 윤행임의 아들 침계(枕溪) 윤정현이 돌려받았다.
불행히도 그 이후에 숭정금 실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추사가 쓴 글씨 <숭정금실>이란 네 글자가 간송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 이 글은 안대회 성균과대 한문학과 교수가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에 쓴 글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읽고나서 좀 더 알아보려던 중에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글을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본문은 깁니다만 해당부분만 소개합니다.
2.
[황봉구 시인 음악칼럼]
2002년 6월 3일 칼럼에 올린 글 - "琴和尙의 새 古琴 "龍吟"을 축하하며"
금화상의 소식을 듣고 집에 있는 '중국악기도감'을 다시 펼쳐보았다.
당나라 때 고금만 해도 현재 내려오는 것이 160개가 넘는다 하니 부럽다 못해 시샘이 날 정도다.
당나라 성당시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무려 1300년 전이 아닌가.
바이올린은 그 악기가 형성된 것이 16세기이고 앞서 이야기한 명기들의 제작년대도 기껏해야 삼사백년을 넘지 못한다.
그 중에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盛唐시기에 만들어진 "구소환패九소環佩(하늘 높이 떠있는 둥근 패옥)"라는 금이다.
천년이 넘은 아주 오래된 악기라 하지만 멀쩡하다.
오동나무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대손손 사람들이 아끼고 다듬었으니 어디 썩을 겨를도 없었으리라.
모양은 복희식伏羲式이라 한다.
허리의 잘룩한 부분의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仲尼식, 連珠식, 落霞식, 月型식)으로 부르는 것 같다.
앞면은 붉은 칠漆로 되어 있고 뱀무늬(소사복단문小蛇腹斷紋)가 보인다.
고금은 자고로 뱀무늬가 나타나야 최고로 하던가.
우리를 더욱 질리게 하는 것은 뒷면이다.
용지(龍池)와 봉소(鳳沼 - 고금 뒷면에 아래 위로 구멍이 뚫려 있어 공명효과를 내게 하는 것)의 주위에 쓰여진 글씨들이
우리의 눈을 놀라게 한다.
'구소환패(九소環佩)'라는 악기이름이 전서(篆書)로 쓰여있어 고색창연하고
그 밑에 산곡 황정견의 행서 "초적창소(超迹蒼소) 소요태극(逍遙太極) 정견(庭堅)"
- 푸른 하늘을 초연히 디딛고 우주에서 노닌다 - .
황정견은 유명 시인이고 또 미불 등과 더불어 송나라 명필이 아닌가.
이 뿐만이 아니다.
"애애춘세풍(靄靄春風細 ) 낭낭환패음(琅琅環佩音) 수렴신연어(垂簾新燕語) 청해노용음(蒼海老龍吟) 소식(蘇軾)"
- 부드러운 봄바람 여리고 낭낭한 옥패소리 드리운 발 너머 문득 제비 소리 푸른 바다에 거룩한 용의 노래 -
동파(東坡) 소식이라니. 그렇다면 이 고금은 古今의 천재 소동파와 그의 문하 황정견이 즐겼던 악기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지금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니 북경에 가게 되면 한번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참말로 옛 사람들은 시詩, 서書, 화畵, 악樂에 모두 능통하였단 말인가.
그러한 경계境界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이 안 간다.
위엣글을 쓴 안대회 교수가 2002년에 씌어진 황봉구 시인의 글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황봉구 시인도 착각하신게 있습니다. 고궁박물관은 북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대만에 있습니다.
자, 다음엔 글씨를 볼까요?
'崇禎琴室', 글씨 한번 멋들어지게 썼다고 생각하면서,
전문가의 평(評)을 들어보려고 검색을 해봤는데, 단지 민간인 두 분의 말씀만 올라 있더군요.
1) '숭정금실(崇禎琴室)'은 추사의 공부방 편액입니다.
도연명과 전설적인 '줄없는 거문고' 얘기가 떠오르는데,
추사가 숭정(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 시절의 거문고를 자신의 서재에 들여다놓고
'숭정금실(崇禎琴室)'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는 '崇'자의 '山'이 '音에 흔들려 날아가려는 듯 보인다며 무척 기뻐하더군요.
( 출처 : '그림 좋아하고 글씨 좋아하는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오마이뉴스) )
2) 2층 전시실에서 본 글씨중 인상적인 작품이 있었습니다..
'숭정금실(崇禎琴實)' , 추사가 무슨 의도를 그 글자를 썼는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만,
崇자와 禎자가 너무나 예술적으로 그려져 있더라구요..
다른 작품에서도 파격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긴 하는데.. 崇자의 山은 거의 날아가기 일보직전이고..
禎장의 貞의 두 삐침인 八자는 마치 다리인양 어디로 뛰쳐갈 자세였습니다.
( 출처 : cafe.daum.net/adelle/ASZ/4397 | 우리 미술관 갈까? )
두 분이 우연하게도 같은 느낌을 받았군요. 숭(崇)자 머리에 山이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요.
저는 견해가 약간 다릅니다.
가야금(琴) 이름이라니깐 '띵띠딩띵띵'하면서 어깨춤 추는 듯한 모습을 글씨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위엣글을 감안해서,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운명을 은유했구나,라고도 생각하였습니다.
왜냐면 산(山)이 자빠진다는 것은 종묘사직이 무너지고 목숨이 끊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나머지 글자까지도 감안해서 보니까 역시 먼저 해석이 맞는 것 같습니다.
'숭정금실(崇禎琴室)' 네 글자는 흥이나서 춤을 추는듯한, '음률을 형상화 했다', 이게 제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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