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3. 18:28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아버지 어머니 꺼 가묘(假墓)해 논 거다.
비석까지도 해세웠다.
다 아버지가 하신거다.
울 아버지 보통 꼼꼼하신 분이 아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바지가랭이 걷고 물에 들어가서 뒤집어 보고서야 건너시는 분이다.
엊그제 벌초했다.
이번에 예초기를 처음 메봤는데,
그거 하고 났더니 손이 덜덜 떨려서 밥숟갈도 못 들겠더라.
이 날, 카메라를 안 가져갔다.
폰카 렌즈에 습이 낀 건지, 먼지가 낀 건지,
상태가 많이 안 좋다. 양해하시라.
저 비석에 쓴 글씨는 아버지가 직접 쓰신 거다.
그런데 내가 바로 얼마 전에 양구에 있는 조상 산소에 금초를 하고 오지 않았냐.
그때 봤던 비문의 잔상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이번에 아버지 생분(生墳)에 세운 비석 글씨를 보니
바로 비교가 되더라.
"아_,, 아부지 그렇게 사시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증조나 조부모 비석에 쓴 글씨를 별 세개라면
아버지 꺼 쓴 거는 별 여섯 개다.
아버지꺼는 한 눈에 봐도 지극 정성으로 썼다는 것이 금방 표시가 난다.
내, 아버지한테 따질래다가 모르는 척하고 넘어간다.
큰아버지도 한문을 배우셨으니까 붓글씨를 못 쓰시지는 않았는데,
아버지가 그래도 두메산골에서는 명필 소리를 들으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울 아버지, 강원 도시사한테 효자 표창까지 받으신 분이다.
술 이빠이 마신 다음날에도 초하루 삭망 잘 지킨다고.
몇해전 한식 때였을 거다.
아버지랑 형이랑 나랑 그렇게 셋이서 여기 가묘 해논 델 벌초 왔었는데__ ,
산 밑 잣나무 숲에다가 베이스캠프를 치고는 각기 역할 분담을 했다.
나는 봉분 주변의 풀을 뽑기로 하고, 형은 뒷쪽으로 난 입구길의 나뭇가지를 치기로 하고,
아버진 스스로 리베로로 뛰신다면서 산 위에 올라가서 뭔가를 하셨다.
나는 농사고 뭐고 간에, 일딴 노가다 일이라고 했다 하면 후딱해치우고 보는 스타일이이다.
내가 가장 먼저 일을 끝내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와서
혼자서 막걸리 서너 바가지 마셨을까?
다들 임무완수하고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어이쿠! 어이쿠!" 소리가 난다.
보니까 아버지가 잠바를 휘휘 내둘르면서 내 쪽으로 막 뛰어내려오시는 거다.
( "벌이다!" )
내게 오신들 낸들 방법이 있나?
모기약도 안 가져왔으니 속수무책이다.
전우애를 발휘했다간 공연히 벌의 분노만 더 할 터,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그래, 희생을 줄이자. 운전하고 갈 놈은 살아있어야 한다.'
벌들한테 들킬까봐서 앉은 자리서 고개도 안 쳐들고 입도 작게 벌려 속삭이듯 일러드렸다.
"차 문 열려있어여~ 빨리 차로 뛰세여~"
*
*
집에 와서 약을 발라드리려고 웃통을 벗기고 보니까
모두 여섯 방을 쏘이셨더라. 쏘인 자국이 버얼겋게 붜 올랐다.
약 바를 때마다 아이구 아이구 하시는데,
나는 무릎을 번쩍번쩍 세우며 도망가시던 아버지 뒷 모습이 떠올라서
약 바르면서도 막 소리내서 웃었다.
나중에 식구들 모였을때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면
다들 아뭇소리 않고 나를 뱀눈으로 째려본다.
내가 왜 의리없는 놈이여?
그럼 뭐 아부지는 논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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