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는 구라다》 外

2009. 8. 27. 20:04책 · 펌글 · 자료/종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 聖母子 (1472) /

목판에 템페라 / 248ⅹ170 /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장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위한 중보기도(: 다른 사람을 위해 신의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는 실험이었는데요, 피험자(被驗者) 집단을 셋으로 나눴습니다.

그중 두 집단에 대해서는 중보기도를 하고, 한 집단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중보기도의 대상이 된 집단에서도 한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자신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다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중보기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때 중보기도는 한 곳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미국 곳곳에 흩어져 사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중보기도를 받은 집단과 받지 않은 집단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프레시안 2008. 5. 23) 

결과는 아주 싱겁게 끝났습니다. 양자 간에 아무런 차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중보기도를 받고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집단에서 건강이 악화된 사람이 더 나왔습니다.

부담감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지요."  

 

- 송상호『모든 종교는 구라다』 

그런데 이 내용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도 나왔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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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매매, 신도 두당 200만원!"

 

러한 일련의 사회현상을 두고 '종교의 타락'이니'종교계의 황금만능주의'니 하며 떠들지만 과연 그것이 종교의 타락일까.

이를테면 종교는 본래 그러한 부분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세상의 풍조에 물들어 세속주의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그래서 자신이 속한 종교를 걱정하며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것처럼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거나 첫사랑을 회복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인가.

원래는 종교가 아름다웠는데 타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래부터 그러한 속성이 있었던 건 아닐까.  

  

버트런드 러셀 "권력이란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힘이다"라고 했다.  

세상에 권력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권력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 

러셀은 "모든 복종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고 잘 통찰해 주었다.

인류 초기에 발생한 종교의 배경이 자연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의 안녕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 이후에 생겨난 종교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안정을 구하기 위해서이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사람들은 이 모든 두려움을 홀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권력과 종교에 기대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권력의 시작은 인간의 두려움에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종교를 튼튼하게 만들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에게서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 권력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든 종교 또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것은 보류하더라도,

엄연히 종교라면 다 가지고 있는 '권력현상'이라는 것은 솔직하게 인정해야 되지 읺을까.

그러한 권력이 유지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구라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러한 세계 종교 지형에 릴케가 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신을 대상이 아닌 하나의 방향'으로 본다는 것은 더 이상 신의 존재 유무에 관심이 없어진 현대인들의 풍토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며 이 세상을 창조한, 그래서 인간의 삶을 지배해 왔던 신은 이제 필요없다는 인류의 바람인지도 모른다.

신은 존재 여부를 따져야하는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가 살아야 하는 삶의 방향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선포인 것이다.

인간의 삶의 방향 자체가 신이라는 것이다.

"신이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 최상의 선'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프롬의 말과 어쩌면 이렇게도 상통할까.

이 둘을 합하여 결론을 내린다면 "신이란 결국 '최고의 가치, 최상의 선' 또는 그것들을 향하는 방향 자체"인 것이다.

 

프롬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을 숭배하는 사람의 정신적인 상태나 성격 구조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것이다. 

신에 대한 개념은 결국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프롬은 시원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는 "각자가 모두 자신의 신을 만든다."라는 구약성서의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앞서 말한 바대로 "하나의 인간이 어떤 신관(神觀)을 가지고 있느냐는 결국 어떤 세게관을 가지고 있느냐와 구분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또한 프롬은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를 통해서 '권위주의의 종교'와 '인본주의적 종교'를 대비시킴으로써 신이 진화한 양상을

뚜렷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권위주의적 종교는 지나간 시대에서 강조되었던 전통적인 신이었다.

그 전통적인 신은 인간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절대적인 존재였기에 그런 종교가 성행한 사회도 자연히 '권위를 강조하는 사회'

였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종교'의 사회에서 최고의 미덕은 '복종'이었고, 가장 큰 죄는 "불복종과 반역"이었다.

이에 반해 인본주의적 종교에 대해 프롬은 "죄란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며,

결국 죄란 신이나 외적인 권위에 대한 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죄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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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종교가 되어야 하는가, 어떤 종교가 필요한가 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종교 본연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종교 생활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다시 전일성(Wholeness)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종교란 단어는 다시 연결하고, 원천과 하나 되는 상태로 돌아가며, 분리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라는

로버트 A.존슨 이야기와 상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말한 "모든 종교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겨난 어떤 균열들을 치료해 주고자 한다"(≪융의 심리학과 기독교≫)는

견해와 일치한다. 그래서 융에게 있어서 종교란 무의식과 의식과의 대화의 과정이며, 전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며,

대극의 대통합의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마음에 생겨난 균열들을 이어 주는, 바꿔 말해서 인간을 근본과 우주로 끊임없이 연결

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종교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뿐 아니라 우주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에리히프롬과의 대화≫)라는 프롬의 설명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며,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가 말한 것처럼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본질적으로 모두는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다"라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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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 지구별에 필요한 종교는 명확해졌다. '근본과 연결시켜 주는 종교, 세상이 둘이 아님을 역설하는 종교, 세상과 세상을

소통시켜 주는 종교, 우주와 인간을 하나 되게 하는 종교'인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말한 것처럼 '우주적인 종교'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 '우주적인 종교'가 우리에게 설득력이 있는 것은 지금 지구에 닥친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생존의 문제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구별이 환경의 재앙으로 멸망한다면 지구의 멸망과 함께 종교도 사라질 것은 분명하다.

아인슈타인은 분명 이것을 염두에 두고 '우주적인 종교'를 말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수식어를 하나 덧붙인다면 '간소한 우주적 종교'라고 할수 있겠다.

종교의 번영을 추구하고, 종교 집단의 발전을 추구하는 식의 종교는 간소한 게 아니다.

종교가 권위적이며 복종을 강조하는 것은 간소한 게 아니다.

소속된 종교인에게 자유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종교는 간소한 게 아니다.

자신의 종교를 최고라고 여기고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종교는 간소한 게 아니다.

교조를 섬기고 절대화하는 것은 간소한 게 아니다.

조직을 만든 후 조직의 충성이 곧 종교에 대한 충성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간소한 게 아니다.

하지 말아야 될 것과 해야 될 것을 규정하여 사람들의 삶을 간섭하는 종교는 간소한 게 아니다.

 

간소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종교의 번영을 추구하지 않는 종교'를 말한다.

"종교의 궁극적 기도는 종교 자체가 없어져도 인간의 삶이 생명의 깊이와 통일 연합되고

생명의 충만 속에서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폴 틸리히 말처럼

언제든지 자신의 사명만 다한다면 스스로 없어져도 좋다고 다짐하는 종교인 것이다.

"종교는 존재의 깊이, 거룩의 높이를 지시해 주는 매개체인 것이지 종교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대로 종교 자신은 단지 매개체이며, 거룩한 존재가 아님을 자각하는 종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에게 올 종교는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종교,

특정한 교조가 없거나 교조가 있더라도 절대시되지 않는 종교,

일정한 날을 정해서 기계적으로 모이지 않고 융통성 있게 모이는 종교,

피라미드식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가 지향되는 종교,

타 종교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경계가 느슨한 종교,

경전이 없거나 있어도 절대화되지 않는 종교,

모임 장소는 언제나 유동적인 종교,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이 여기는 종교,

지구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나눔과 실천이 있는 종교,

일정한 형식과 조직이 없거나 느슨한 종교'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미래는 '종교 아닌 종교'가 대세이며 '종교 아닌 종교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들이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간의 대화를 거부하는데에는 몇가지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불편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

  

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린스턴 대학에서 '과학과 종교'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인 종교일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神, 도그마와 신학을 초월해야 한다.

자연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아우르면서 모든 존재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하는 종교적 관념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불교는 이런 점을 만족한다. 현대 과학의 요구에 부응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불교일 것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 聖母子 (1472) /

목판에 템페라 / 248ⅹ170 /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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