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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밤기차

 

  

 

  

  

밤기차를 혼자 타는 사람중에 신이 나서 타는 사람은 없을게다.

뭔가가 일이 뜻대로 풀리질 않고 결국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않고 말겠다는 불안, 

자신에 대한 분노와 연민, .... ,

당시의 심리상태를 딱히 뭐라고 짚어내진 못하겠지만 그런게 아니었나 싶다. 

 

서대전역에서의 마지막 기차는 11시 반인가 50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물론 통금이 있던 시절이니까 하행선 얘기다. 대략 10시 전후의 기차를 탔던 것 같다. 

서대전역을 주로 이용했는데, 종착역은 광주 송정역이었지만 중간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낯선 도시에서의 며칠간 여행도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엔 그럴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내가 야간열차를 타 버릇한 건 대학원 다닐 때로 기억하는데,

이참 저참 생각이 많았을때니까 그때가 맞을 것이다.

밤기차를 타고 차창을 내다보면 실내 불빛의 반사 때문에 밖은 볼 수가 없다.

어디쯤 가고있는지 어림이라도 할라치면 눈알을 유리창에 붙이다시피 하고 봐야한다. 

그러니 밤기차를 타게 되면, 제 얼굴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들게 될 수밖에 없는데......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물론 윤동주 시인의 생각과  나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저 시를 쓰던 순간만큼은 나와 같지 않았을까.

미워지고 불쌍해지고, 미워지고 불쌍해지고, 미워지고 불쌍해지고...., 

 

모든 좌절과 허망하게 보내버린 시간들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에 귀일하고

거기엔 어떤 조그마한 구실도 붙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기가 꺾인 언제가부터 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응대를 위해서나 한 두마디 건넬뿐 거의 말을 안하고 사는 편이다.

내가 글을 써버릇한 이후론 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니 말도 어눌해지고....  이젠 점점 누구와 말하기조차 싫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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