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얘기

2009. 5. 6. 16:36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리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부가 있는 학교가 전국에 몇 개 되지 않았다.

지방에선 명문고로 치던 부산고, 경북고, 대전고, 광주일고, 인천 제물포고가 대표적이었고,

그밖에 세광고, 대구상고, 부산상고, 경남고, 광주 진흥고, 대전 대성고, 마산제일고, 동산고, 

서울에선 용산고, 휘문고, 배명고, 배재고, 충암고, 중앙고, 신일고, 선린상고, 동대문상고 등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전국 명문고였던 경기고나 서울고 경복고에는 야구부가 없었다.

 

 

야구부를 운영하자면 당시로선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야 했다.

아닌게 아니라 합숙비용은 고사하고 야구공 값을 대주는 것만해도 만만치가

않았는데, 그래서 재학생들이 천원 이천원씩 거둬서 주기까지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고,

결국은 야구부 운영을 졸업한 선배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유로 商高라거나 재단이 단단한 사립학교에 야구부가 많았던 듯하다.

지방의 명문고는 어느 도시고 마찬가지였을텐데,

사회적 기반이 닦였을만한 나이의 선배는 대개가 다 일본인이었다.

다시 말해서 세칭 명문고는 여러가지 여건상 일본인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었고

조선인 중에서 공부 꽤나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거리가 멀건 어쩌건 간에

사범학교로 다녔단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청주, 전주, 춘천, 어디고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원로 선배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개가 일본인이다.

우리나라 70년대의 경제형편으로 볼때 공립고등학교에서 야구부를 운영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따라서 일본인 선배의 후원이 절대적인 조건이었던 셈인데, 

사실 야구부 창단도 따지고보면 '일본인'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만해도 일년에 한번씩 여름방학 즈음에 일본인 선배들이

재일 동문회대표 자격으로 여나뭇 방문해서

야구용품은 물론이고 방송장비처럼 돈이 많이 소요되는 학교의 비품들을

마련해주고 가곤 했다.  

母校를 생각하는 마음은 일본인이라고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모교를 쉽게 방문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오히려 모교에 대한 사랑을 더 키우지

않았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교감선생님 말씀이 그 일본인 동문들에게 야구공까지 사달라 소리는 차마

못하겠더란다.

우리도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그게 바로 야구공값만이라도 선생님과 재학생이 십시일반으로 감당해보자는

안(案)으로 나온 것인데, 당시로선 정말 야구공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때는 고등학교 시합은 물론이고 실업팀 경기에서도 관중석에 떨어진

파울볼을 반드시 회수했다.

관중이 공을 안 돌려주기라도하면 장내방송을 하면서 경기를 중단했으니까.

TV중계에서는 공 주운 사람을 민망하게 계속 비추면서, 올바른 관중 태도가

어쩌니 저쩌니 하고... 그러면 관중들은 공 빨리 돌려주라고 야유 보내고...

진짜로 그랬었다. 

   

 

4월인가 5월인가였으니까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돼서였는데,.

담임 선생님이, 야구공 후원금으로 몇 구좌를 낼 것인지 집에 가서 허락을

받아오라는 거다. 말하자면 교회에서 헌금 약속 받아내는 식이다.  

그러자 뒷 줄에 앉았던 친구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발적 모금이어야 할 후원금을 반강제로 걷는 것은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묻는 거였다.

말인즉 옳지만 1학년 갓 들어갔을 때니까 선생님 입장에선  싸가지 없고 당돌한 놈으로 보였을테지만 그렇더라도, 

그렇다고 다짜고짜 따귀를 올려붙인 건 누가 봐도 선생된 도리가 아니었다. 아마 세 댄가 네 댄가 맞았을 거다.

반박할 마땅한 말이 없으니까 "버르장머리! 버르장머리!"만 외치며 패더라. 

 

그 친구, 휙 돌아서 책가방 들고 집으로 가버렸다.  "어? 저 녀석이! 저녀석이!"

아버지가 검찰청인가 교육청에 꽤 높은 공무원이라고 들었다.

학생인 우리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명문고에 뽑혀왔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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