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머 남촌에는'

2009. 3. 16. 10:42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나는 이른 봄철에 흙냄새 맡으면서 나물을 캐는 걸 참 좋아한다.

남자가 무슨 나물이냐고 할런지도 모르겠는데,

나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

 

근래엔 낚시를 안한다마는 십여년 전만해도 봄이면 안달을 했다.

내 경우는 대물을 낚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산란철인 봄낚시였기 때문이다.

이른 봄에는 어느 저수지를 가더라도 가둬논 물이 만수(滿水)다.

그러다보니 논이나 밭에 까지도 깊숙히 물이 들어차서 경계가 없을 정도다. 

고기가 잘 잡힌다면이야 당연히 낚시에 집중하겠지만 십중팔구 헛탕일 때가 많다.

그럴 땐 낚싯대 그냥 걸어둔 채 어슬렁 나물이나 뜯으러 나선다.

내가 붕어같은 물고기를 즐겨 먹지도 않거니와, 잡아온대도 또 집식구가 질색을 하기 때문에

잡아온 물고기는 오히려 골칫거리만 되기 일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낚시라는 어로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채비할 때의 들뜸, 그리고 낚싯터의 분위기,

특히 저녁물게의 잔잔한 수면위에 드리우는 산 그림자,

칠흑 같은 캄캄한 밤에 야광찌 올라오는 거, 그리고 새벽녘의 휘부연 물안개……

 

그러나 봄나물은 그게 아니다.

나물을 잔뜩 뜯어가면 집식구도 좋아하고 그걸 본 동네 아줌마들이 다 부러워한다.

그보다도 내가 봄냉이와 달래 향(香)을 엄청 좋아한다. 

즉, 실속면에서도 그러하지만, 그보다도

나물을 캐다보면 무아지경에 들어 정말로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흔히 세속의 번잡함과 고민에서 벗어나는 취미로 낚시를 들곤하는데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건 전혀 아니다.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있으면 평소엔 생각지도 못했던 오만 잡생각이 다 떠오른다.

심란한 머릿 속을 비우는 데는 나물 캐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속초에 사는 큰누나가 나물 캐는 걸 무척 좋아했다. 

원래 꼼지락거리는 걸 아주 싫어하는 양반이라서 (나이 들면서부터 그렇게 변했다.)

친정인 우리 부모님집에 몇 일간 다니러 와도, 왼종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수다만 떨다 가는데,

내가 나물이나 뜯으러 가재면 딴 사람이 돼서 호들갑을 떨며 나선다. 

 

누나만 그런게 아니라 아마도 나이 든 여자들은 거의가 나물 캐러 가는 걸 좋아하던데,

그 시절 여자들에겐 해방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런가 싶기도 하다.

 

큰누나가 좋아하는 노래는 내 알기론 딱 두 곡이다.

「박재란, 산너머 남촌에는」 / 「김상희,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산너머...’ 는 봄나물 캐러 갈 때나 강가에서 양잿물 빨래할 때 불렀던 듯하고,

‘코스모스...’ 는 나나 동생을 업고 가을 들녘에 벼이삭 주우며 불렀을 게다.


누나가 이 노래를 부를때면 나는 정말로 고갯마루 너머에는 딴세상이 있는 줄로 알았다. 

샹그릴라 같은 세상이.................................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은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그리 고~ 울까
아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떼
버들가 실개천에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안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은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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