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푸르 / 시티 팰리스

2009. 2. 10. 14:04북인도

 

 

 

AD 4~5 세기경의 굽타 시대에 이르러 인도의 색을 가지게 된 라자스탄은 그곳의 전통과 특색의 바탕이 되는 무사족 라지푸트(Rajput)가

천여년 동안 지배자 계급으로 이어오면서 라자스탄의 역사를 만들었다.

왕가의 자손들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분을 지칭한 라지푸트들은 지배계급과 영합하거나 자체세력을 형성하는 등으로

발전하며 라자스탄의 역사를 이루어 왔다.

이들은 회교세력과의 격렬한 전투를 지속적으로 벌여 왔으며 무굴제국 이전까지 델리의 술탄들과도 끈질긴 전쟁을 벌여왔으나

무굴왕조를 시작한 제국의 왕들과는 타협의 관계로 돌아섰다.

이 때의 시대적 조류를 가장 잘 탄 라지푸트들이 암베르에 근거를 두었던 왕조이며 자이푸르를 건설했던 만싱이다.

 

무굴제국의 황제인 악바르(Akbar)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냄으로써 혼인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어 많은 혜택과 평화를 누렸던

암베르(Amber)성의 자이 싱(Jai Singh) 2세가 무굴제국이 무너져가던 1727년말 주 무대를 암베르 포트에서 자이푸르로 옮기면서

이곳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자이 싱은 벵갈출신의 젊은 건축가와 함께 힌두 특유의 건축 양식인 Shilpa Shastra스타일로 도시를 설계했다.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는 이 곳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함과 훌륭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영국통치시절에도 영국인의 인도 통치에 대한 좀 더 쉬운 접근책으로서 라자스탄의 라지푸트들에 대한 기득권 인정을 통하여

라지푸트들은 여유있는 생활을 구가하였으며 독립후에도 중앙정부와의 협약을 통하여 자신들의 돈과 특권이 보장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인드라 간디 수상의 조치로 자신들의 특권이 상당 부분 사라짐으로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라지푸트들의 후예들은 그들의 성을

관광객들에게 숙소로 개방함으로써 경제적인 타격을 모면하고자 했다. 

 

 



 

 

 

  

 

시티 팰리스(City Palace)는 건물 외관보다 내부 실내장식이 호화찬란하다는데

지금 현재 왕족이 살고 있는 관계로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는다더구만. 

 

 

 

 

 

 

 

 

 

기가 막혀서.

이걸 사진 찍으면 저 양반한테 1$을 줘야된다누먼. 내가 짱구여? 왜 줘?

피리 사면 코브라는 덤으로 끼워준디야. 

 

 

 

 

 

위에 <마하라자 스와이 만 싱Ⅱ>라고 했는데 마하라자는 '위대한 왕'이란 뜻의 보통명사인데,

이 라자스탄주에서는 왕을 지칭하는 말로 고유명사를 겸했던 듯하더구먼.

안에 들어가보면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줄러리 걸어놨지. 꽤 여러명이여.

이름을 보면 맨 <만싱> <자이싱>이라서 누가 누군지 엄청 헷깔리데. 

지금처럼 스와이 만싱이니 뭔 만싱, 뭔 자이싱, 그런 식이지.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여기 입장료 수입은 마하라자(왕족)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것인데,

그 얘기나 잠시 해보자고-,,

 

대체로 외국인이 많은 편인데, 입장료를 내 외국인 할 것 없이 대충 1인당 5천원으로 잡자고.

허면, 하루 1,000명 정도가 입장한다고 치고,  500만원Ⅹ30,  한 달이면 1억5천 만원.

온갖 경비를 다 뺀다고쳐도 떨어지는 게 얼마여?

솔찮은 정도가 아니지. 그런데 재산이 이것뿐이것어?

거기다 또 따로 벌이는 사업도 있을테니까 다 합치면 상상을 초월하는거지.

인도 왕족은 전부 세계갑부여.

 

그런데 이것 좀 보더라고__,,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걷고 보니까 이런 풍경이더란 말이여. 

 

 

 

 

 

 

 

저 사람들 밤 8시경 되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해서 함께 몰쳐서 자는 건데,

이 때가 낮 기온이 10~15도였으니까 한밤중에 체감온도는 3~5도쯤 됐을 겨.

아스팔트 맨땅에서 자다가 지금은 人道로 물러난 거지.

누더기같은 모포 한 장으로 깔고 덥고를 다 하는겨. 그것도 배 쫄쫄 굶고 잘 거 아니냔 말여.

그리고 저 도로도,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대로(大路)여. 지금 목숨을 내놓고 자는 겨. 

인도 사람들이 얼어죽는다는 얘기를 나는 여태 기상이변 때문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여, 진짜 말 그대로 얼어죽는 겨.  

이걸 인도본색(印度本色)이라고 하면 지랄하겠지만, 아니라면 이 광경을 뭐라고 설명할 겨?

이런 개판인 세상이 천연덕스럽게 굴러간다는 것이,

 

"에이~ 아주 드런놈에 나라여!"

 

이번에 인도 가기 전에 동네 도서관에서 인도에 관한 책을 대여섯권 빌려보고 갔구먼.

그 중에 헤르만 헷세의 『인도기행』이란 책이 있었는데, 읽을라고 보니까 정작 인도 얘기는 없고

엉뚱하게 동남아를 다녀온 얘기를 쓴 거더라고. 그래서 관뒀는데.... 

그리고 반룬의 『예술사 이야기』는 내가 하두 인용을 해싸서 다시 꺼내들기가 면구스럽긴 한데,

거기에 보면 인도 문화에 대해서 뭔가 '무시' 내지는 '멸시'하는 듯한 느낌이 오더란 말이여.

난 그 이유를 '이 양반이 공부가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하니까 그게 아녀.

헷세나 반룬도 인도의 이런 혐오스런 모습에 학을 띠었을 거란 생각이 들더란 말이여.

이건 '미개'도 아니고 '야만'이여. 이 꼴을 보고 정내미 떨어지지 않을 사람이 있겠냔 말여.  

이 얘기는 나중에 한번 더 할쳐.

 

 

 

 

 

 

 

 

 

  

 

 

 

참, 또,  이 왕궁이란 거-,,

왕조시대를 마감하고 백성국가 민주국가가 됐어도 여전히 왕실의 사유재산인 겨?

영국, 일본이나 태국 같은 나라는 제쳐놓고, 입헌군주국이 아닌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어떻게들 처리했는지 모르겠구먼. 

잡다부리 너절한 재산들이야 큰 돈이 되거나 말거나 그려려니한다손 쳐도, 왕궁(궁궐)에 대한 소유권이 문제될 수 있거든.

성격상 사유재산으로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공적 재산으로 보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단 말이여.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사회주의 국가에서야 당연히 논외지.

하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게 간단치가 않단 말이여.

우리나란 일찌감치 뭔 법으로 규정을 해놨을겨. 총독부 시절에 했나, 해방 이후에 했나는 몰라도.

문제 처리하는 방식이 나라마다 각기 달랐을테지... 나는 이걸 통 생각을 못했었구먼.

 

연관 지어서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옛날에 왕실 재산을 관리할 때, '내수사'인가를 두고 내시나 궁녀들을 시켜서 관리를 맡겼다고 들었는데,

(내시 끗발이 쎘던 이유가 바로 그거지.)

땅세를 받아먹는 땅주인을 세종대왕이니 고종황제가 직접 할 수 없었을테고,

분명 누군가의 이름으로 차명관리 했을텐데,,

고려가 조선으로 바뀔때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연산군 광해군때처럼 반정이나 큰 정변이 있을 경우엔 왕실재산관리가

풍비박산이 났을 거란 말이야. 밑에 있는 놈이 관리장부만 갖고 튀면 그걸로 끝나는 거 아니냔 말여.

물론 뒤에 정권 잡은 놈들이 다시 색출해 내기야 했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또 중간에 가로채는 놈이 왜 없었겠냐고? 

결국 왕실로 되돌아온 재산은 반에 반도 안 됐을 겨.

조선왕조때 보면 내내 왕실 살림이 곤궁하니 어쩌니 했는데, 이유란 것이 바로 그런게 아니었나 몰라.

세상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결국 돈이 문제거든.

그러니까 돈이 어디로 들고나는지, 돈줄을 뭘로 잡는지, 그런것만 잘 연구해도 역사 선수가 될 겨.

정치뿐이여? 종교도 마찬가지지.  

 

 

.

.

 

 

   

그래도 왔응께 구경은 하고 가야제?

저긴 마차 전시관이여. 아니 <말 릭샤> 전시관이구만.

 

 

 

  

 

 

  

 

 

 

  

사암인데 안료를 섞은 거 같더만. 저렇게 선명할 수가 있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단 얘기겠지. 원래 곱게 갈아서 바르면 저렇게 되나도 몰라.

이 <시티 팔리스>는 무굴양식에 라자스탄 양식이 가미된 거라고 하더만.

아닌게 아니라 스타일이 확 틀리네 그랴.

 

 

 

  

 

 

 

저 항아리, 金 항아리 같지만 銀 항아리여.

자이싱인가 만싱이가 영국 유학갈 때 저거 두 개에다 갠지즈강 물을 받아갔디야.

그래서 썩지 말라고 부러 은으로 만들었단겨.

물론 배로 싣고 갔지.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라자스탄 왕족인 야네가 아주 영악한 놈들이여.

악바르한테 착 기대서 몇 대 잘 살다가 영국애들이 들어오니까 이번엔 그 쪽에 잽싸게 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린 애들이거든.

다가오는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잘 대처했응께 그럼 진보세력인 겨?

우리네랑 비슷한 구석이 있지.

 

 

 

 

 

 

저 뒤에 보이는 베이지색 건물이 지금 왕족이 살고 있다는 집이여.

진짜 볼거리는 저 안에 다 들어있다더만.

여기는 사실 박물관으로 개조했다곤 하지만 개털이여.

만싱인가 자이싱인가가 폴로 경기대회 나가서 상탔다고 지 사진 걸어놓고... 뭐 그런 것들 뿐이여. 

 

 

 

 

 

 

 

 

 

이거저거 전시해놨지만 별거 없고, 무기 전시관 하나는 볼만하더만.

순 총하고 칼만 있는데 수 만 종류 잘 되겠데.

꼭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 같은 것들인데 웬 게 그리 많디야?

특이한 것은, 꼭 전정가위로 생겼는데, 그걸로 배를 푹 찌르고 잡아빼면 밸창자가 딸려 나온디야.

암살할때 매조지 확실하게 할려고 만든 칼이리야.  

내부에선 절대 사진 못 찍게 혀.

 

 

 

 

 

 

웬일로 여긴 이런 시스템이 다 되어있더군.

  

 

 

    

 

 

  

 

야네들은 경비서는 애들인데 투쟙이여.

저렇게 폼 잡아주고서는 함께 찍고나서 돈 달라는 겨. 이 짝에 있는 놈 손 좀 봐.

실실 쪼개면서 삐끼질 까지 하더라니. 

 

 

 

 

 

다 본겨.

 

여기서 5시간 정도 가면 사막이 나온디야. 

어느 여행사인가는 사막에서 하룻밤을 자는 체험관광도 들어있다더군.

거기서 잘라믄 겁내 추울 겨.

 

 

 

 .

  

 

 

 

 

 

 

 

버스타고 지나가면서 여학교를 봤는데, 학교는 아주 근사하게 지었더만.

터도 넓고 잔디밭이 좍 깔린게 그럴듯혀. 물론 부잣집애들만 다니는 학교겠지.

적어도 대학교에서는 신분차별이 없디야. 공부만 잘하면 된디야. 

 

 

 

 

 .

 

 

 

 

 

'북인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나문신  (0) 2009.02.16
자이푸르 암베르 城  (0) 2009.02.16
자이푸르  (0) 2009.02.09
아그라를 떠나며  (0) 2009.02.08
파테푸르 시크리  (0) 2009.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