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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용문은 宋明鎬 譯,『禮記集說大全』1券 (p198)에 나오는 내용이다.
生與來日이오 死與往日이니라
산 자의 일은 다음 날부터, 죽은 자의 일은 죽은 날부터 센다.
☜ 與는 猶數也이니 成服杖은 生者之事也이라
數死之明日爲3三日하고 殮殯(염빈)은 死者之事也이라
從死日數之爲三日하니 是三日成服者가 乃死之第四日也이라
'與(여)'는 셈한다[數]는 뜻이다.
成服(성복)하고 喪杖(상장)을 짚는 것은 산 자의 일이니, 죽고 난 다음 날부터 세어 3일만에 한다.
殮殯(염빈)은 죽은 자의 일이니, 죽은 날부터 세어 3일만에 한다.
이처럼 <生者의 일에 해당되는> 三日成服 (삼일성복)은 곧 죽은 날부터 계산하면 4일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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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장례식을 치루는 걸 보면 너나없이 3일장인데,
그 3일이란 것이 죽은 날부터 매장하는 날까지 다 합쳐서 3일이니까,
저녁 늦게 죽기라도 한다면 실상은 1박3일 밖에 안되는 셈입니다.
(지금 저 위에 한 얘기는 아마도 7일장 이상을 예상하고 한 말일 겁니다.)
그런데, 옛날 공자 맹자 시절에 ─
예컨대 자식은 낙양에 살고, 부모는 장안에 살았다면,,
訃告야 말타고 달리는 우체부를 통해서 받을 수도 있었다치지만,
자식이 訃告를 전해 듣고서 걸어가자면 1년도 더 걸렸을텐데.
........
그러니까 임시로 가매장했다가 자식이 도착하면 그제야 제대로 장례를 치루는 문화였을 겁니다.
(※ 실제로 집 뒷켠에 가매장을 했었답니다.)
다시 本文으로 돌아가서,,
장례식을 치루는 사람은 喪主 즉 산 사람이니까, ‘산 사람의 일’로 계산해야지요.
허면 3일장의 경우란 내일부터 계산해서 3일간이어야 하니깐, 우리 계산으로 4일이 되는 겁니다.
말 나온김에 <제삿날> 얘기도 한번 해봅시다.
사람들이 제사는 죽기 전날 밤(亥時~子時)에 지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삿상>을 차리는 건 돌아가신 분, 즉 죽고 난 후의 혼령(魂)이 오셔서 잡수시라는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죽기 전 날, 즉 살아있을 시각을 제삿날로 정해서 상을 차린다는게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보통 제사 모시기를,
12월 5일 아침 9시에 사망했다면 제사를 12월 4일 밤 9시~11시쯤에 지내잖습니까?
즉, 그 시각은 아직 죽기 전이란 말이죠. <--- 잘못된 제삿날인 겁니다.
12월 5일 저녁에 지내야 맞습니다. 자정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죠.
그리고 제삿상에다 음식을 올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亡者가 살았을때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덮밥를 좋아한 사람에겐 회덮밥을, 소머리국밥을 좋아한 사람에겐 소머리국밥을,
얼큰한 칼국수를 좋아한 사람에겐 얼큰칼국수를, ......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살아서는 입에도 대지 않던 음식을 잔뜩차려놓고서 먹으라?
열받지요. 죽으면 입맛이 변한답디까?
술도 그렇습니다. 왜 정종입니까?
살아서 소주나 양주를 마시던 사람은 각기 소주나 양주를 놓고 지내고,
평소 막걸리나 맥주를 즐겨 먹던 사람은 막걸리나 맥주를, ,
시간이 없어서 제사를 빨리 끝내려면 폭탄주를 부어 드릴 수도 있는 겁니다.
살아 생전에 마누라나 며느리가 만든 음식을 싫어했다거나
늘 외식을 즐겼던 망자라면. . . . . . 간편하겠군.
.
.
덤으로 '티벳 死者의 書' 한 두 대목만 소개하겠습니다.
1. 죽음은 '영혼 복합체'가 육체를 벗는 것이고 탄생은 육체를 입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죽음은 마지막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다른 형태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입문식일 뿐이다.
'죽음이라고 부르는 붕괴 과정이 임종자의 정신에 영향을 미쳐' 어떤 소리들이 그에게 들린다는 설명이다.
그 소리? 윙윙, 우르릉, 딱딱 하는 소리로 임종자의 마음에 들리는데, 임종 전과 후 15시간까지 들린다고 한다.
2.
죽는 순간, 대상을 경험하던 의식이 사라진다.
이것을 흔히 기절(실신) 상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초월 의식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적인 결과이다.
초월 의식은 공의 세계로부터 나오는 투명한 빛으로 상징된다.
그렇다면 공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다.
그것은 논리의 영역을 넘어서 있으며, 이름과 모습의 세계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음으로 사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지나간 삶의 기억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아직도 전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육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이 지상에서 가졌던 육체가 아니라 일종의 '꿈의 육체'이다.
우리가 꿈 속에서 보는 그런 몸인 것이다.
3.
'죽은 자가 자신이 죽었음을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죽어서도 지상의 삶을 계속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이 육신을 떠난 영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의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다.
신들과 영들의 세계는 사실 내 안에 있는 '집단무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장을 뒤집어 읽으면 다음과 같다.
"집단무의식이 곧 신들과 영들의 세계이다. 거기에는 어떤 지적인 곡예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인간의 전생애, 어쩌면 완성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무수히 많은 생들이 있을 뿐이다."
4.
<티벳 사자의 서>는 과학적이고 명상적인 방법으로 인간 존재를 탐구한 책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나는 이곳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탄생은 왜 있으며 죽음은 왜 있는가?"
--> 이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질문이다.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티벳 사자의 서>는 간직하고 있다.
<티벳 사자의 서>는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이 책이 '죽음의 기술'에 관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은 이 책이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영적 치료 교과서이고,
죽음의 세계를 통과해 다른 세계로 가려는 인간 영혼을 정화하고, 가르치고, 위로하고,
강한 정신력을 갖게 하는 하나의 정신요법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후세계의 중간 사태에 있는 동안에
사자가 겪게 되는 체험을 묘사하고거기에 대해서 가르치는 책이라는 점이다.
p.s
知生者는 弔하고 知死者는 傷이니,
知生而不知死이어든 弔而不傷하고
知死而不知生이어든 傷而不弔이니라
초상집에서 ─
산 자를 아는 사람은 조문하고,
죽은 자를 아는 사람은 슬퍼한다.
산 자를 알고 죽은 자를 알지 못하면 조문할 뿐 슬퍼하지 않으며,
죽은 자를 알고 산 자를 알지 못하면 슬퍼할 뿐 조문하지 않는다.
☜ 不知生而弔之則其弔也가 近於諂(첨)하고
不知死而傷之則其傷也가 近於僞라
산 자를 알지 못하면서 조문하면 그 조문이 아첨에 가깝고,
죽은 자를 알지 못하면서 슬퍼하는 것은 그 슬픔이 거짓에 가깝다.
─ 송명호, 禮記集說大全 1券 (p 198~199) -
☜ 이치엔 맞는 얘기이지만 현실에는 안 맞는다.
상주(친구의 자식)를 모르면 조문하지 말란 소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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