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가 투르게네프에게 보낸 편지 外

2008. 4. 28. 20:36책 · 펌글 · 자료/문학

 

 

 

 

 

 

 

 

 

 

 

 

 

 

 

 

 

 

 

가장 친절하시고 가장 존경받으시는           

이반 세르게예비치(투르게네프) 선생님,      

  

한 달 전 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생님을 뵈었을 때,

저는 어떤 값이든 주는 대로 받으며 제 작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제 책임으로 떠 맡은 잡지의 빚 때문에 저는 당장이라도 채무자 감옥에 처넣어질 것 같았습니다.

 

제 작품은 스텔로프스키 씨가(2중 칼럼 판) 3000루블에 샀습니다.

돈의 일부는 약속어음으로 지불됐지요.

3000루블 중 일부로 저는 채무자들을 잠시동안 달래였고, 나머지는 제가 책임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적어도 조금이라도 건강을 회복하고 약간의 집필이라고 할 요량으로 해외로 떠났습니다.

3000루블 중 제게 남겨진 돈은 해외여행 경비로 쓸 175루블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마련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었습니다.

 

2년 전, 저는 비스바덴에서 한 시간 만에 1만 2000프랑을 땄습니다.

이번에 저는 도박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그래도 1000프랑 정도 딴다면 적어도 한 3개월 버틸 돈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겨우 닷새 전에 비스바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제 시계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말입니다.

게다가 저는 호텔에 빚까지 졌습니다.

 

제 사정을 가지고 선생님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제 자신이 싫습니다.

그러나 당장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시므로 선생님에게 의탁하는 것이 제게는 도덕적으로 더 용이하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청하듯 선생님에게 100탈러를 청합니다.

저는 러시아에서 약간의 돈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서 문고』라는 잡지에서 제가 떠날 때 돈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를 '반드시 도와주어야만 하는' 한 신사에게서 돈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3주 내에 돈을 갚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지만 물론 그보다 더 이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최대한 한 달이면 됩니다.

제 심정은 정말 끔찍합니다(저는 실제로 더 나쁜 것을 예상했습니다만.)

더욱이 저는 이렇게 선생님을 방해하는 것이 창피해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한테 더이상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제 주소는 Viesbaden [sic], hotel Vicroria, a Theodor Dostoiewsky입니다.

하지만 만일 선생님이 바덴바덴에 안 계시면 어쩌지요?

 

당신의 충실한,

F.도스토예프스키 올림

1865년 8월 3일

 

  

 

 

 

소년 시절부터 돈을 청하는 편지를 수천 통 써온 작가의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글이다.

편지의 달인에게 이 정도의 '아부성' 편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런 편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으레 감동하기 마련이다.

이 눈물겹고도 어딘지 수신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편지를 읽고 투르게네프는 그에게 50탈러를 보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달 내에 그 돈을 갚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갚은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사실 두 사람은 외모부터 얼마나 차이가 났던가.

투르게네프는 타고난 신사였다.

가솔의 영지, 세련된 매너, 유럽 귀족 사회와의 연분, 번듯한 외모에 부티가 줄줄 흐르는 디자이너 양복…….

반면 우리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전신에 가난이 흠뻑 밴 후줄근한 중년 사내였다.

병색이 완연한 안색, 쑥 들어간 볼, 싸구려 양복…….

그러나 아무리 이런저런 심리적 상처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후 도스토예프스키가 보여준 행동은 고결함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빚진 놈이 큰소리친다는 말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로 이 '빚진 놈' 의 행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도스토에프스키는 1875년에 마침내 50탈러의 빚을 갚았다.

이자는 그냥 접고 딱 원금만을, 그것도 직접 채권자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라,

파벨 안넨코프라는 유명한 평론가를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투르게네프에게 전해주라면서 내 동댕이치듯이 건넸다.

물론 잘 썼다든가, 너무 늦게 갚아 미안한다든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수슬로바에게                                   

   

"만약 당신이 파리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꿀 수 있다면 내게도 보내주오.

150굴덴이면 되오. 아니, 당신이 보낼 수 있는 만큼만 보내도 좋소.

150굴덴이면 이 돼지 같은 놈들에게 돈을 지불한 다음 다른 호텔로 옮기고 돈을 기다릴 수 있거든. ( ...... )

 

움직이면 식욕이 생길까봐 앉아서 내내 책만 읽는다오.

당신을 포옹하오.

아무에게도 이 편지를 보여주지말고 이야기도 마오. 너무 싫소."

 

"내 수중에는 한 푼도 없소.

계속 점심을 못 먹었고, 아침과 저녁을 차로 때우며 지낸지 벌써 사흘이 되었소.

이상한 것은 먹고 싶은 욕구가 없다는 것이오.

매일 3시에 호텔을 떠나서 6시에 돌아온다오.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걸 보이지 않기 위해서요."

   

 (그가 『죄와 벌』을 쓰던 시절 비스바덴에서 온갖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석영중 I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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